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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아프면 어때, 생각보다 괜찮아.

비록 마음은 서럽지만.

by 꿈을꾸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병원에 자주 가는 편이었다.


눈이 간지러워도 가고, 콧물이 줄줄 흘러도 가고, 피부가 뒤집어져도 갔다. 알레르기도 있고, 아토피도 있고, 수시로 감기에 걸리곤 했다. 오죽하면 학창 시절 친구는 나에게 걸어 다니는 종합 병원이라며, 이런 사람이 오히려 병원에 자주 가기 때문에 오래 살 거라며 놀리곤 했다. 2019년에는 봄에도 독감, 임신 중이던 가을에도 독감이 걸리기도 하고, 그 외에도 신종플루나 코로나 등 남들 다 걸리는 유행성 질병은 대체로 걸리고 넘어가는 저질 면역력 보유자였다.


이렇게 병원 방문이 잦은 나에게 미국으로 가는 일은 불안과 초조 그 자체였다.


어디선가 주워듣기만 하던 그 시기, 미국은 아파도 병원에 가기가 힘들다, 가봐야 딱히 해주는 것도 없다, 별 거 해주지도 않고 엄청 비싸다 등 미국 병원 및 의료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는 괴담처럼 들릴 정도였다. 거기다가 아직 두 돌도 되지 않은 아이와 가야 하니, 혹여나 아프면 어찌해야 하나 두려움이 정말 컸다. 그런 불안함과 두려움이 무색하리 만큼 미국 병원 및 의료 서비스에 생각했던 것보다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는 요즘이 재밌게 느껴질 정도이다.


미국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주치의가 필요하다.


우리 집에는 아이, 나에게는 주치의가 있다. 아직 미국 병원 진료를 받은 적이 없는 남편은 주치의 지정이 되어 있지 않다. 와중에 내 주치의는 무슨 사정이 있다며 최근에 바뀌어서 다시 방문하여 주치의를 만나야 한다는 연락이 왔었다. 주치의를 만나서 몸이나 마음의 아픔이나 불편함을 이야기하면, 약을 처방해 주거나 안과, 피부과, 산부인과 등으로 진료의뢰를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과정이 하루 만에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예약 날짜도 상당히 먼-날짜가 잡히기도 한다. 한국에서 병원을 쉽게 가던 것을 떠올리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각 과별 건물들이 차를 타고 한참 가야 하는 거리에 있는 것도 은근히 불편하다. 올해 1월에 아이 피부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알레르기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였는데, 가장 빠른 날짜가 4월 중순이라고 했을 때는 조금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차후 우편으로 날아온 고지서에 적힌 비용도 당혹스러웠다. 한국의 알레르기 검사 비용 자체도 잘 모르긴 했지만, 달러로 들으면 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까. 의외로 병원에 갈 일이 많지 않아서 생각보다는 불편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서 신기하기도 하다.


derek-finch-zkrPU_1AwdU-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Derek Finch


어쩌다 보니 현재까지 우리 집에서 미국 병원을 가장 많이 방문한 사람은 나다. 초음파와 피검사 진료를 받으러 가기도 하고, 치아 신경치료도 하러 가고, 생리 주기 조절을 위한 피임약 처방받으러 가기도 했다. 보험 처리를 해도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한국에 가고 싶어 지다가도, 불안과 초조 그 자체였던 것보다는 괜찮다 싶기도 한 진료들이었다. 감사하게도 통역해 주시는 분과 동행해서 가기도 하고, 가끔 혼자서 간 날에도 여차하면 전화 통역도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전화 통역은 아직 이용해 보지 않았지만, 보험에서 그런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또한, 괴담처럼 들리던 병원에 가봐야 해주는 게 없다던 말은 겪어보니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새끼발가락이 퉁퉁 붓고 멍이 들어서 한참 아팠을 때, 아이 선생님이 자기도 같은 증상으로 병원에 갔었다며 가지 말라고 권했었다. 가봤자 알아서 붕대로 지지하고 찜질하라고만 한다고. 그래서 정말 그렇게 했다. Walgreens에서 발가락 지지해 주는 붕대를 사고, 집에 있는 찜질팩으로 버텼다. 자연 치유라고 하기도 웃기지만, 어쨌든 그렇게 버티다 보니 낫는 경험을 하고 나니 병원에 갈 일은 더욱 사라졌다.


아이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발을 동동 구르던 때, 새끼발가락 자연 치유하면서도 이게 맞나 불안하던 때, 이것저것 신경 쓰여서 병원 가서 진료받고 싶다가도 그냥 넘겼던 때, 그런 때는 아프면 어때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낯선 타국에서 아이가 아픈 것도 나나 남편이 아픈 것도 서럽게 느껴졌다. 아플 때 도와줄 이가 없는 것도 서러웠다. 시간이 흐르면 낫겠거니 버티는 생활이 익숙해지면서도 서러운 마음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돌아보면, 아파도 괜찮은 순간도 있었다.


아파도 괜찮은 순간이 어딨겠냐만,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다. 정말. 걱정해 주는 이웃들이 있었고, 감사하게도 식사를 걱정하며 음식을 챙겨주는 이웃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시스템이나 비용은 한국과 많이 다르긴 했다. 하지만 보험 처리를 하면 생각보다 비용이 괜찮았고, 의료진은 세심했다. 전체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나 불안했던 것보다 나을 뿐이긴 하지만.


여전히 아플 때면 한국에서 가득 챙겨 온 상비약부터 떠올린다.

무엇보다도 아프지 않게, 다치지 않게, 건강하게 지내고 싶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아프거나 다친다 해도,

생각보다 괜찮아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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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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