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시다. 오늘은 화분이다. 화분들이 엎어지고 베란다는 흙으로 범벅이 된다. 집안에 흙먼지가 날리기 때문에 나는 분갈이가 싫다. 어지러운 바닥을 보니 슬그머니 한숨이 난다. 처음부터 큰 화분에 심으면 분갈이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해마다 화분을 엎고 담는 어머니가 나는 못마땅하다. 그러나 이제 하지 말라는 말은 안 한다. 어머니는 어차피 마음먹은 대로 할 것이니 편하게 구경하는 편이 낫다. 심부름이라도 할 마음으로 어머니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어머니는 연중행사 하듯 내 집을 구석구석 뒤진다. 덮어 둔 일거리가 들추어질 때마다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이 무안하다. 부산한 것을 피하고 싶어서 싫은 표정을 짓지만 소용없다. 당신이 딸네 살림을 눈치껏 정리해 주는 것이 자식에게 잘하는 것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어머니가 일거리를 찾아내는 것은 싫지만 살림이 정리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래서 어머니 작업에 동참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꽃 손질을 가장 신나게 한다. 해묵은 화분을 엎어 보면 화분이 비좁을 정도로 뿌리가 빽빽하다. 얽힌 뿌리를 성둥성둥 잘라낸다. 잔뿌리가 많아야 영양분을 잘 흡수하리라는 문외한의 생각은 어머니의 가위질에 잘려 나간다. 듣기 싫은 말을 적당히 무시하듯 곁가지도 미련 없이 잘라낸다. 뿌리를 자르고 펴서 큰 화분에 옮겨 심으면 팔다리를 편 꽃들은 생기가 돈다. 미장원에 다녀온 것처럼 단정해진다. 환자가 된 꽃을 만지는 어머니 표정이 놀이에 빠진 아이 같다.
어머니는 꽃을 잘 돌본다. 시들고 병든 꽃을 안고 갈 때는 게으른 생활을 들킨 것처럼 부끄럽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파트 환경 탓이라며 병들어 온 꽃도 반갑게 받는다. 병든 꽃과 건강한 꽃은 앞으로도 내 집과 어머니 집을 계속 오고 갈 것이다. 문득 이 일이 무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어머니가 꽃 살리기에 더러 실패한 때문이다.
오늘도 흙을 만지면서 어머니는 고향 소식을 부지런히 옮긴다. 얼굴을 모르는 고향사람 이야기에 나는 관심이 없다. 부러운 듯 전하는 이야기는 무언의 압력 같고 험담은 쓸데없는 잔소리로 들린다.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반복하면 덜컥 핀잔을 준다.
“그 이야기 저번에 했잖아요.” 칠순의 어머니가 입을 다문다. 계속 말이 없는 어머니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나와 눈을 맞추지 않는다. 내뱉은 말을 주워 담아야 할 분위기이다. 다른 어머니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는데 받아주지 못한 내가 잘못이다. 노인이 두 번 세 번 같은 말을 되풀이하더라도 젊은것이 적당히 걸러 들으면 편안하다. 그런데 불개미 같은 나는 그렇지 못하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따지고 막은 내가 부끄럽다. 꽃 뿌리랑 잔가지를 적당히 버리는 어머니처럼 말을 걸러 들어야 한다. 미안한 마음으로 흰 머리카락을 슬쩍 올려 드린다.
동생이 카드빚을 많이 진 일이 있었다. 가족에게 충격이었다. 어머니 얼굴은 한동안 멍했다. 빚도 큰 부담이지만 빗나간 행동거지가 창피했다. 나는 중년의 동생에게 말 폭탄을 퍼부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분갈이하듯 당신의 몸피를 줄여서 동생 문제를 해결했다. 말없는 가위질로 동생의 상한 뿌리를 싹둑 잘라 화분갈이를 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엔젤스윙’을 엎는다. ‘천사의 날개’는 잎이 천사의 양쪽 날개처럼 돋는다. 분홍색 꽃이 주렁주렁 열리면 집이 화사해진다. 꽃을 볼 기대로 정성을 더 들인다. 어머니는 꽃이 핀 천사의 날개를 내 집으로 보낼 때 화분을 어루만지면서 ‘가서 잘 살아라.’고 말했다. 물을 줄 때마다 어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가서 잘 살아라.” 시들해진 엔젤스윙을 분갈이하면서 어머니는 그동안 잘 있었느냐고 꽃에게 묻는다. 천사 날개는 어머니의 분신이었던가 보다. 허리를 천천히 펴는 어머니의 표정이 환하다. 말이 과격한 딸을 보며 웃는다. 웃어 주는 어머니가 고맙다.
(2008 등단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