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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Nov 14. 2024

할멈이 허송세월하는구나

빛과 볕이 가득한 허송세월인 것을!

"경로당에서 저녁 먹고 간다." - "엄마, 반찬이 좋은가요?"

"된장찌개에 나물이지머." - "알았어요. 난 집에 갑니다."

오늘도 어머니 저녁환자식 고단백으로 준비하는데 나물에 된장찌개를 먹고 오겠다한다. 생선 한 도막, 육류 한 점도 없는 식단이라 말리려다가 참는다. 경로회 회장인 어머니가 오랜만에 회원들과 정을 나누겠다는데 어쩌랴. 덕분에 어둡기 전에 내 집으로 퇴근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 짐 없어 걷는다. 어머니 집에서 3천 보 걸으면 내 집이다. 오십천 다리를 건너와서 어머니 동네를 본다. 대게와 생선회를 파는 식당 간판이 강물에 어른거린다. 마을에 어둠이 내리고 하늘에 물새 소리가 듬성듬성하다. 꺄아악 까아악. 살이 오른 상현달구름 사이로 들락날락한다.


2천 보쯤 걸었나? 마을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멀리 다방 간판이 깜빡인다. 다방 앞에 작은 차가 대기 중이다. 노년의 낭만객이 배달을 주문하면 움직일 테지, 달달한 커피나 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를 싣고. 자전거를 탄 검정 옷이 천천히 지나간다. 그 사이 제법 높이 오른 상현달은 전깃줄과 어울려 밤 풍경이 된다.


소설가 김훈은 일흔을 넘기고 <허송세월>을 출간했다.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게 보인다'라고 한다. 교사로 바쁘게 살 때 내 몸과 마음에 빛과 볕은 가득 찼던가? 열심히 살았지만 빛과 볕이 가득하지 않았다.


바쁘지 않은 요즈음 내 일상이 허송세월인가 가끔 회의감이 든다. 2년째 어머니 도우미로 오고 가는 길에 오늘 살진 달과 다방 간판 정겹다. 빛과 볕이 가득한 허송세월다. 내가 김훈처럼 허송세월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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