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시절에 존재하는 가장 친한 친구, 내 동생
"언니, 나 떡볶이 한 개 더 먹어도 돼?"
나에게는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 가장 친한 친구가 있다. 그녀는 착하고 어여쁜 모습으로 나를 사랑하면서도 아주 가끔은 나를 약 올리기도 하며 화를 돋우기도 한다. 그녀와 다투면서도 나는 절대 그녀를 미워할 수 없다. 그녀는 내가 가진 모든 사랑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도 받아갈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니까. 그녀는 나의 동생이니까.
나의 동생이 태어난 후, 나는 이 세상의 재미들을 나누어 가질 사람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이미 네 살이 되고 또다시 열두 달이 지나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나의 동생은 여전히 동그란 눈으로 찬장만 바라볼 뿐이었다. 동생이 걷기 시작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이미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연예인이 꿈이라며 카메라를 바라보며 춤을 추는 동안에도 나의 동생은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춰내기 바빴다. 내가 만든 놀이의 규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동생에게 매번 짜증만 났다. 그 작은 아이는 나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내가 혼을 내면 축 늘어진 어깨로 나의 화를 받아주기만 했다. 그 작은 아이의 작은 세상 속 나의 존재는 꽤나 대단한 사람이었기에. 그 아이의 시선 끝에 닿아있는 나의 모습은 언제나 그 아이의 연예인이었기에.
작은 아이의 세상이 우주가 팽창하듯 서서히 커지면서 그 아이는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떡볶이 하나의 몫은 언제나 내 것이었지만, 언젠가부터 그 아이는 내가 먹은 개수를 세며 말하곤 했다.
"언니, 언니 5개 먹었어. 나는 4개 먹었어. 그러니까 남은 한 개는 내 거야."
우리는 틈만 나면 싸워댔고 엄마와 아빠는 한숨을 쉬기 바빴다. 우리를 어르고 달래며 저녁 시간을 다 보내곤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없어서는 안 될 '우리'였다. 겨울방학이 되어 서울로 일주일간 이모집을 가는 날, 동생은 가지 말라며 나의 옷자락을 잡았다. 처음에는 손가락 두 개로 잡았다가, 한 움큼 나의 옷을 잡아댔다. 한 움큼 잡은 작은 주먹 위로 물방울들이 떨어졌다. 동생의 눈물이었다. 나보다 한참 작은 체구의 동생이 떨어뜨리는 귀여운 눈물방울들이 나를 울려버렸다. 엄마는 어이가 없다면서 웃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엄마의 그 웃음은 우리를 너무 귀여워해서일지도.
우리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며 엄마 아빠는 더욱 바빠졌다. 오후 6시 전에 들어온다며 아침에 새끼손가락 약속을 했으면서도 엄마 아빠는 오지 않았다. 창문 사이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옆집 반찬 냄새가 들어와도 엄마 아빠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좋아했다. 엄마 아빠가 늦는 시간 동안에 우리는 재미난 공연을 준비하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가 팀이 되어 여러 가지 이벤트들을 준비하곤 했다.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소리가 들려오면 터지는 심장을 애써 누르며 리허설을 하곤 했다. 엄마 아빠가 없는 시간에도 나는 외롭지 않았다. 내 동생이 언제나 함께 있었기 때문에. 겨울의 해가 이른 잠을 청해버려 주변이 어둑해져도 나의 세상은 언제나 환했다. 그 아이가 언제나 나와 함께 했기 때문에.
내 손을 잡던 작은 손바닥이 나의 크기와 비슷해지며 우리의 대화는 줄어들었다. 그 아이의 작은 우주가 더 이상 팽창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거대한 우주 속 수많은 은하 중 하나의 은하에 숨어버렸다. 그 아이에게 사춘기가 왔다. 그 아이가 자랑하며 보여주던 우주에 나는 더 이상 놀러 갈 수 없었다. 그 아이의 세상에 초대되는 사람은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말다툼의 끝이 귀여운 포옹이었지만, 이제는 기나긴 침묵이 되어버렸다. 그사이 나는 어른이 되었고,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되었다. 우리의 시끄러웠던 추억들은 사진첩 사이사이로 숨어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리는 그 사진첩을 펴 볼 시간조차 없었다. 서서히 '우리'라는 단어는 흐려지고 있었다.
세상에 치이고 세상에 익숙해져 갈 때, 그 아이는 나처럼 어른이 되었다. 그사이 나에게 큰 사고가 있었고, 오랜만에 동생이 나를 보며 울었다. 왜인지 다시 그 아이의 세계로 초대된 기분이었다. 그 아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는 자주 그 아이의 세계에 초대되었다. 우리는 다시 '우리'가 될 수 있었다. 엄마 아빠의 생일이 다가오면 언제나 그랬듯 이벤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아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 아이의 세상에 문을 두드린다. 더 이상 초대 같은 건 필요치 않다. 서로의 문은 언제나 서로를 위해 활짝 열려있으므로.
그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나의 사랑을 받았으므로.
나의 문은 그 아이를 향해 언제나 열려있으므로.
그 아이는 나의 동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