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재현이는 오른쪽 눈 수술을 받았다. 한쪽 눈에 안대를 덧댄 재현이가 마취가 덜 깬 채 간호사의 부축을 받고 비틀거리며 나오자 비로소 심장이 제 역할을 하며 온 몸에 제대로 피가 돌았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조금 복잡한 백내장 수술과 같은 거라며 의사는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나는 아직 안 했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지만 요즘 백내장 수술은 늙으면 모두가 하는, 삼십만 원에 삼십 분도 걸리지 않는, 끝나자마자 멀쩡히 집에 걸어갈 수 있는, 수술이라고 불리지만 수술 같지 않은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재현이라면 문제가 달랐다. 꼭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들이어서가 아니다.
재현이는 이미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겨우 오십인 남자에게 흔한 일이 아니다. 재현이는 젊어서부터 눈이 말썽이었다. 눈 빼고는 지나치게 건강했다. 신체 다른 부위의 남는 건강을 모아서 눈에게 좀 기부하고 싶을 정도였다. 해양전문대를 나와 외항선을 타는 일로 군 복무까지 퉁치며 월급을 두둑이 받을 때는 아무리 1, 2년씩 바다 위를 떠다닌다고 해도 행운이라 생각했다. 두 살 아래 재영이가 등록금이 비싼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재현이가 군대만 가 있어도 고마운 일이었는데 돈까지 벌게 되었으니까. 물 위에 떠 있을 뿐이지 배가 우리 동네보다 커서 땅을 밟고 서 있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실제로 자동차나 비행기보다 훨씬 사고율이 낮아서 거의 백 퍼센트 안전하다는 재현이 말을 믿었다. 재현이는 물 위에 떠서 번 돈으로 땅 위의 재영이 등록금을 보태고 땅 위에서 살아갈 밑천을 모았다.
군 복무 기간만큼 배를 타고나서 4주짜리 훈련만 받으면 제대라고 했다. 참 신기하고 좋은 제도였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선수들에게 버금가는 좋은 대우였다. 4주짜리 훈련은 식후에 마시는 믹스커피 같은 거였다. 정말 간단히 금방 끝났다.
4주 훈련을 마치고 재현이는 모처럼 집에서 쉬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목포까지 가서 대학을 다니고 졸업 후에는 2년 남짓 군대 대신 배를 타며 돈을 벌었고 마지막 항해 때 일곱 개의 나라를 거치며 듣보 보도 못한 꼬부랑글씨가 박힌 선물을 잔뜩 사 왔으니 그런 금의환향이 없었다. 계속 배를 탈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동네 사람들이 죄다 부러워했고 슬쩍슬쩍 중매를 넣는 이들도 벌써 있었다. 남편이 외항선 타면 아내가 바람이 날 만큼 팔자가 늘어진다는 중매의 이유는 탐탁지 않았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며칠 동안 재현이는 잠만 잤다. 소불고기며 사골국, 돼지갈비, 삼겹살 같은 육지 고기를 때마다 차려주면 걸신들린 것처럼 먹고는 다시 골아떨어졌다. 그러더니 어느 날 눈을 번쩍 떴다. 잠만 자다가 저주가 풀려서 깨어난 서양의 공주처럼. 그러더니 왼쪽 눈이 좀 불편하다고 했다. 안약을 사다가 넣었다. 나아지기는커녕 왼쪽 눈은 점점 빨개지더니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눈을 뜨는 일조차 힘들어졌다. 가슴이 덜컥했다. 안약 넣을 병이 아니구나 싶었다. 동네 사람들이 좀 크게 아프다 하면 가는 동인 병원, 서울에도 똑같은 병원이 있어서 서울 의사들이 로테이션으로 근무한다는 아산 병원을 거쳤다. 하는 말들이 자신이 없었다. 드라마에서나 듣던 대사를 들었다. 서울 큰 병원으로 가 보세요.
“재영아, 내일 열 시 차로 오빠 서울 간다. 그래, 평일이니까 제시간에 도착하겠지. 니 병원 가는 길 아나? 오빠는 서울 길도 모르고 눈도 잘 안 보이니까 니가 잘 데리고 가야 한다. 병원 끝나면 다시 오빠 터미널까지 데려다주고. 그래 그래, 니가 고생 좀 해라. 엄마는 멀미 때문에 갈 수가 없어서.”
재현이는 서울로 간 날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의사도 서울 병원 의사만 용한 건지, 젊은 여의사가 정확한 병명을 읊으며 빨리 수술을 하지 않으면 실명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실명이라니, 장님이 된다는 말인가. 재현이가, 눈 빼놓고는 온몸에 기운이 남아도는 스물다섯의 재현이가 평생 앞을 못 볼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엄마나 아빠가 와 봐야 되는 거 아냐? 큰 수술이래. 몇 시간은 걸릴 거라는데. 수술 끝나면 일주일 정도 입원도 해야 한대. 그건 학교 끝나고 내가 와 있으면 되는데 수술할 때 나 혼자 있는 건 좀 무서운데. 사인도 다 내가 해? 보호자 사인이 필요하대.”
그날 하루 재영이는 줄이 긴 공중전화에서 여러 번 전화를 했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이런저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전화, 수술비와 입원비가 얼마 정돈데 중간에 한 번 미리 계산해야 한다는 전화, 6인실이 없어 2인실에 입원해야 하고 2인실은 무척 비싼데 괜찮냐는 전화, 레지던트인가 젊은 의사가 대학생 여동생이 보호자인 것이 미덥지 않은지 부모님께 다 허락받았냐고 자꾸 묻는다는 전화.
재영이가 사인을 하고 재현이는 수술을 받았다. 재영이는 보고를 누락하면 다 책임져야 하는 말단 직원처럼 자주 전화를 했다. 수술 끝났다, 회복실이다, 입원실이다, 이제 정신은 다 돌아왔다...... 재현이는 사흘 동안은 이마를 받치고 엎드려만 있었다. 눈의 무슨 압력 때문이라고 했다. 옆으로도 똑바로도 눕지 못하고 사흘을 엎드려만 있었는데 밤에 재영이가 보호자 침대에서 자다 보면 재현이의 끙끙 앓는 소리 때문에 여러 번 깬다고 했다. 재영이는 병원에서 바로 학교로, 학교에서 바로 병원으로 다닌다고 했다. 멀미를 하다 쓰러져도 내가 갔어야 했다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왔지만 그때는 이미 퇴원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터미널에서 만난 재현이는 멀쩡했다. 눈이 아팠을 뿐 사지는 원래 멀쩡했는데도 두 다리로 걷는 것조차 대견해 보였다. 역시 서울 병원이 좋긴 좋구나 하며 바싹 가까이에서 보니 수술한 쪽 눈과 아닌 쪽 눈이 조금 달랐다. 그 차이가 밖에서 낳아 온 아이처럼 평생의 아킬레스 건이 될 줄은 모르고 당시에는 장님이 되지 않았다는 기쁨에 그깟 차이는 기꺼이 무시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가까이에서 눈만 뚫어져라 노려보지 않는 한 알아채기 힘들 정도였고 무엇보다 재현이가 무덤덤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약간 다른 두 눈 때문에 재현이는 도수가 없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고 양쪽 눈의 시력 차가 큰 채로 그럭저럭 살았다. 다행히 안경 기술이 나날이 좋아지면서 양쪽 눈의 시력 차이를 조절할 수도 있게 되었다. 다행히 세상에는 별의별 큰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안경으로 커버되는 약간 이상한 눈은 문제 축에도 끼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 멀쩡하던 오른쪽 눈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부자형이 가난한 동생네 가족까지 먹여 살리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듯 잘 보이는 오른쪽 눈이 안 보이는 왼쪽 눈을 오래 돕는 게 힘겨웠나 보다. 다행히 이번에는 처음에 간 병원에서 시원시원한 진단과 치료법을 내놨다. 그래도 미심쩍어 고만고만한 다른 병원에 가 보았는데 사전을 보고 읽는 것처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말을 했다. 조금이라도 말이 달랐으면 다시 서울 큰 병원으로 가려고 했는데 정말 불행 중 다행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재현아, 걸어갈 수 있겠나? 택시 탈까?”
“코 앞인데 뭔 택시. 엄마 집에 가 있어도 된다니까 뭐 하러 기다렸나?”
“한 시간도 안 걸렸는데 뭐. 안 아프나?”
“하나도 안 아파. 멀쩡해. 걱정할 거 없어. 지금 바로 출근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재현이는 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웃는 아들이라 새삼 찡했다. 나도 집에 가서 기다리려고 했었다. 끝나고 나서 제 손으로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수술이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수술실로 들어가는 재현이 뒷모습을 보자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술실 문 너머의 세상은 삼팔선 너머의 북한보다도 멀고 무서웠다. 그래서 재현이 뒤통수에다 엄마 기다릴 거라고 소리치고 수술실 앞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재현이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온갖 상상을 했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의사 선생님이 장갑을 벗으며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그래 주겠지?
재현이를 기다리면서 재영이가 생각났다. 머리가 다 빠진 재영이가 암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 문을 넘을 때 놈팽이 말고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나와 재현이와 재훈이가 수술 전날 서울에 갔지만 하룻밤도 자지 않고 돌아왔으니까. 재현이는 하루 자고 재영이 수술 끝나는 걸 보고 가자고 했지만 놈팽이가 있는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건 바람난 여자가 바람난 남자와 외박을 하는 것처럼 부정한 일인 것만 같았다. 재영이가 어서들 가라고 자꾸 재촉해 주어서 재영이 성화를 핑계로 돌아왔었다. 그날 재영이는 수술실 문을 넘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회사에서 하루 더 쉬어도 된다고 했다는데 재현이는 굳이 오늘 출근을 했다. 쬐그만 회사에 다니면서도 명절이면 사장님이 줬다는 선물을 산더미처럼 싸들고 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재현이는 장가를 못 간 거 빼고는 나무랄 데 없는 아들이다. 장가를 못 간 것도 갔다가 돌아온 아들 때문에 속 썩이는 친구들을 하도 봐선지 이제는 흠이라는 생각도 안 든다. 동창회에서 보면 한번 갔다가 애까지 달고 돌아온 아들을 둔 친구들이 제일 불쌍하다. 지역 명문인 여고 동창회에서는 다들 점잔을 빼며 좋은 말만 하지만 평생 알고 지낸 초등학교 동창회에서는 치부를 가리기보다는 맥주 한 잔 곁들여 내장 속 지방을 제거하듯 끙끙 앓던 속을 푼다.
“며느리가 애는 죽어도 자기가 키우겠다고 할 줄 알고 애는 못 내주겠다고 좀 골탕을 먹일 작정이었어. 그런데 웬일, 자기는 애 못 키운다고, 양육비 보낼 테니 어머니가 키우든지 알아서 하라고 딱 나가떨어지는 거 있지. 야, 진짜 깜짝 놀랐어. 깜짝! 어떻게 애 엄마가 애를 떼 놓고 살 생각을 하지? 나는 우리 며느리가 그렇게 독한 줄 여태 몰랐지 뭐야. 멍청한 아들놈은 찍소리도 못하고 애를 데려와서 하는 말이 엄마가 키워 주면 되지 않냐는 거야. 이제 좀 쉴 만하니까 뭔 생고생인지.”
“너도 이제 시작이구나. 나는 손자 키우다 무릎이랑 손목이랑 다 나갔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진 밥이라도 해줘야 하는데 까마득하다, 까마득해. 아들놈은 여자라면 넌덜머리가 난다고 재혼할 생각도 안 해. 하긴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닌데 애까지 달렸으니 재혼하고 싶어도 못하지. 애새끼는 나한테 떠맡기고 자기는 마누라 잔소리도 없지, 저녁마다 친구 만나 술 마시고 주말이면 등산도 가고 아주 홀가분하게 산다, 살아. 선배로서 말하는데 너, 아들한테 확실히 선 그어라. 손자 뒤치다꺼리 다 떠안았다가는 니가 제 명에 못 죽어. 나는 내 돈도 손자한테 꼬라박고 있어. 아들 형편 뻔히 아는데 돈 더 달라고도 못하고. 다 늙어서 이게 뭔 고생인지 몰라.”
처음에는 친구들이 아들 둘 다 결혼을 안 한 내 팔자가 제일이라고 부러워할 때 약이 올랐었다. 빈말로 나를 위로하는 척하며 자랑하는 것 같았다. 비록 이혼한 며느리가 떨구고 간 손자지만 그조차 부러웠다. 그런데 이제는 진짜 내 처지가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이혼을 당한 아들들 중 돈을 잘 버는 아들은 없다. 돈을 잘 번다면 어지간한 추위는 잠바로 막아지듯 웬만한 이혼 사유는 다 덮이지 않았겠는가. 그러다 보니 다 늙은 엄마가 이혼한 아들과 엄마 없이 크는 손주들에게 힘은 물론 돈까지 쏟아부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노후를 위해 꿍쳐 둔 몇 푼 안 되는 돈이 재영이가 대학 다닐 때 무너졌던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처럼 한순간에 헐어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나 역시 재현이가 생활비를 보태기는커녕 재현이와 그 아이에게 돈을 써야 하는 형편이 된다면 다시 된장찌개만 끓여 먹던 때로 돌아가야 할 테다.
바닷가 집을 판 돈에다 남편 퇴직금을 합쳐 지금 살고 있는 삼층 건물을 사고 나자 그래도 건물주 아들이라서 그런지 노총각의 마지노선에 딱 걸린 재현이에게 선은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다만 아가씨들이 재현이를 두 번은 보려 하지 않았는데 재현이의 마지막 맞선 상대였던 아가씨가 재현이와 내가 궁금해하던, 선이 진짜 한 번 선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이유를 알려 주었다.
“엄마, 내 차가 그렇게 낡았어?”
“중고 사서 한참 탔으니까 낡긴 낡았지만 잘 굴러가는데 뭐 어때. 차 바꾸고 싶나?”
“바꾸긴 뭘 바꿔. 아직 몇 년은 더 탈 것 같은데. 아니, 지난번에 왜 투다리 사장님이 소개해 준 아가씨 말이야, 영어 강사한다는.”
“어? 그 아가씨 계속 연락하고 지내나 보네?”
“아니, 연락은 무슨. 그런데 처음 만난 날 그러더라고. 선 많이 봤냐고. 그래서 많이는 아니고 주변에서 가끔 좋은 아가씨 있으면 소개해 주는 편이라니 매번 차이지 않았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그런 편이라고 하니까 차가 너무 낡은 거 아니냐고. 선보러 나오는데 차는 빌려서라도 좋은 거 타고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남자가 선보러 나오면서 나처럼 후진 차 몰고 나오면 여자가 기분 나쁘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결혼하면 학원 차려줄 수 있냐고 묻더라.”
학원 강사인 노처녀 아가씨와 결혼하려면 좋은 차에, 학원 차릴 돈까지 대동해야 하는 거였다. 노총각 노처녀가 선을 보러 나올 때 무슨 불꽃 튀는 사랑을 기대하는 건 아니더라도 첫 만남에서 노골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야속했다. 이상하게도 아가씨들은 노처녀여도 콧대가 높았다. 뭘 믿고 그러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재현이도 특별히 내세울 건 없었다. 한쪽 눈도 시원찮고 맏아들이고 결혼을 안 한 남동생과 결혼을 했다고 하기도 그렇고 안 했다고 하기도 애매한 여동생이 있었다. 대신 통장에 들어온 돈은 좀처럼 안 쓰고 집과 회사밖에 모르고 처자식이 없어도 투잡을 뛰는, 고기의 질긴 힘줄 같은 생활력이 있었다. 맏아들이라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볼품없는 건물이나마 우리 부부가 죽으면 다 재현이 거니까 좀 참으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내가 고슴도치라서 그런지 재현이와 선을 보겠다고 나오는 아가씨들이야말로 정말 내세울 건 없었다. 독신이니 골드미스니 하며 자신감이 넘치는 것도 서울의 큰 건물에 직장이 있는 여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일 아닌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지방대 나와서 고향에서 사는 아가씨들이 도대체 뭘 믿고 콧대가 높은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재훈이 말로는 형이 아가씨들에게 매번 차이는 것이 눈치가 없고 촌스러워서라고 했다. 재현이가 밥을 많이, 빨리 먹는 것부터 선 볼 때는 마이너스라고 했다. 아가씨들의 식사 속도에 맞춰줘야 하는데 재현이는 안 그럴 거라고, 대화고 뭐고 먼저 후루룩 뚝딱 먹고 멀뚱멀뚱 아가씨가 식사를 마치길 기다릴 거라고 했다. 재현이는 커피까지도 숭늉 마시듯이 후루룩 마시긴 했다. 양이 적은 파스타나 스테이크 같은 서양 음식을 싫어하는 식성, 면바지나 청바지는 안 입고 기지바지만 입는 옷차림, 삼대 칠 가르마로 빗은 온통 까만 직모 헤어스타일, 재미없는 이야기를 재미있는 줄 알고 하는 대화 스타일, 그리고 부모님이나 동생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재현이가 아가씨들에게 차이는 이유들일 거랬다. 신세대인 재훈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재훈이는 요즘 여자들 기준으로는 재현이가 아주 별로일 수도 있다고 진단해서 나를 고슴도치인 줄도 모르는 바보 고슴도치로 만들었다.
재현이에 대해서는 절대로 불만을 갖지 않는 나이지만 지금도 최 선생만 생각하면 아쉬움을 넘어 울분이 치솟는다. 얼마나 울분이 치솟는지 재현이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을 정도다. 최 선생은 재영이가 소개한 아가씨였다. 재현이가 마흔이 되기 전이었으니 그래도 신랑감으로 좀 괜찮을 때였다. 놈팽이 문제로 매정하게 연을 끊었지만 재현이는 재영이와 연락을 하고 지냈다. 나는 알면서 모르는 척했고 다행이다 싶었다. 재영이가 소개한 최 선생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엄마와 살았으며 나이는 재영이와 같았으니까 재현이보다 두 살 적었다. 주말에 이모가 하는 삼겹살집이 바쁠 때면 잠깐씩 와서 일을 돕는데 재영이가 그 집 단골이 되면서 친해졌다고 했다. 음식 솜씨가 좋고 성격도 싹싹하고 서글서글해서 민서가 이모 이모하며 따른다고 했다.
재현이가 서울에 가서 최 선생을 만난다고 했을 때 이게 될 일인가 싶었다. 여기 아가씨들한테도 차이는데 서울 아가씨라니, 전문대를 나온 재현이에게 4년제를 나온 아가씨라니. 그리고 무엇보다 재영이와 친하게 지내면서 재영이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여동생이 결혼식도 안 올리고 놈팽이와 애를 낳고 살면서 친정에서 내쳐진 상태라는 것은 재현이의 결혼에 남사스러운 걸림돌이었다. 며느리가 생긴다면 재영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내게는 최대의 고민거리였는데 최 선생은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는 흠이 있었다. 약간은 피장파장 아닌가 싶었다.
두 번째 만남은 여기에서 갖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최 선생이 차를 몰고 주말이면 대여섯 시간씩 걸리는 여기까지 재현이를 만나러 온다니, 그건 재현이가 정말 맘에 들었다는 뜻 아닌가. 멀리까지 오는데 집에 초대를 해서 밥이라도 먹일까, 김칫국을 사발째 마시는 건가. 괜히 부담을 줘 도망가버리는 것 아닌가, 여기까지 왔는데 모른 척하면 섭섭해하지 않을까. 그런데 모처럼 즐기던 행복한 고민을 박살 낸 것은 최 선생이 아니라 어이없게도 재현이었다. 재현이가 최 선생더러 여기에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단다.
재현이는 최 선생이 착하고 싹싹하고 알뜰한 것은 맞다고 했다. 자기의 고물 차를 보고 타박을 하기는커녕 오래 탄다고 칭찬을 해줬고 자기가 잘 아는 집이 있다며 스테이크나 스파게티가 아닌 닭볶음탕 집으로 가자고 했단다. 다른 집보다 싸면 쌌지 비싼 편은 절대 아닌 식당에서 재현이는 아가씨를 만난 중 처음으로 밥까지 볶아서 배부르게 실컷 먹었단다. 그러고도 커피값은 최 선생이 냈단다. 선본 아가씨들 중 그런 아가씨는 없었단다. 좋은 아내, 맏며느리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는 최 선생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이유가 뭐냐고 아무리 물어도 그걸로 끝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4년제든 2년제든, 아니 고등학교만 졸업했어도 관계치 않을 판에, 복권 당첨만큼 희박한 서울의 4년제 대학 나온 아가씨를 며느리로 맞을 기회는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그 후로도 한 번, 놈팽이는 노름에 한창 미쳤을 때라 재영이가 민서만 데리고 최 선생과 함께 평창 어딘가로 콘도를 빌려 놀러 간다고 재현이를 불렀다. 최 선생은 재현이에게 차이고도 미련이 남아 있었고 그걸 마지막 기회라 여긴 재영이가 어떻게든 최 선생과 재현이를 엮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별로 내켜하진 않았지만 내가 싸준 김치랑 양념 불고기를 들고 재현이는 평창으로 갔고 다음 날 오후에야 집에 왔다. 그날 밤 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잠이 다 안 왔다. 하지만 그걸로 최 선생과는 아주 끝났다.
살면서 재현이에게 진심으로 화가 난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 마흔을 목전에 둔 주제에 어이가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주제 파악을 못해도 그 지경일 수는 없었다. 다 늙은 엄마가 삼시세끼 꼬박꼬박 해다 바치고 빨래며 다림질이며 제 방 청소까지 다 해 주니 배때기가 한없이 불렀구나 싶었다. 최 선생 같은 아가씨를 다시 만날 가능성이 1%라도 있을까.
꽤 많이 본 선이 다 깨진 이유를 그때 알았다. 늘 그랬었다. 재현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아가씨는 재현이를 싫어했고 아가씨 쪽에서 넌지시 맘에 든다는 의사를 표해 오면 재현이가 싫어했다. 자기 외모는 도무지 꾸밀 줄 모르는 시골 총각 재현이는 알뜰살뜰 살림을 하며 아내와 맏며느리 역할에 충실한, 그러면서도 날씬하고 예쁜 외모를 가진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여자를 찾고 있었다. 설령 그런 아가씨가 있다고 해도 재현이한테까지 차례가 올 리는 만무한 일 아닌가. 날씬하고 예쁘면서도 살림에 충실한 아가씨가 자기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던 재현이는 최 선생 사건을 끝으로 선보는 일도 그만두었다.
점심때가 지나서 재영이가 전화를 했다.
“엄마, 오빠 출근했지? 오빠 어제 눈 수술 했다며? 어젯밤에 전화 왔었어. 하나도 안 아프다고 오늘 출근할 거라고 하더라고. 아주 일등직원이야, 일등직원.”
“그래, 그놈의 눈 때문에 평생 고생이다.”
어제 수술실 앞에서 네 생각이 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수술비 계산할 때 보니 꽤 나왔길래 밤에 봉투에 이백만 원 넣어서 줬더니 안 받더라.”
“수술비 얼마 나왔는데?”
“백팔십만 원 정도던데.”
“엄마, 그 수술 더 비싼 것도 있었대. 그런데 오빠가 싼 걸로 한 거래. 어제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딴 것도 아니고 수술비를 아끼냐고 뭐라 했어. 나한테는 전화할 때마다 고기 사 먹어라, 조금만 아파도 얼른 병원에 가라 하면서. 엄마아빠한테도 연실 뭐 사다 준다며? 그러면서 자기한테 쓰는 돈은 아까운가. 하여간 오빠도 대단해.”
“아이고, 그 짠돌이가 아낄 걸 아껴야지. 내가 진작 알았으면 비싼 걸로 받으라고 했을 텐데. 나는 또 그런 건 몰랐지.”
전화를 끊고 나니 하나 남은 눈에 드는 수술비까지 아끼는 재현이가 짠했다. 다달이 집 생활비를 다 대고 명절이며 생일이며 어버이날이며 제삿날까지 챙기는 재현이다. 민서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노트북은 아니고 뭐라드라, 강의도 듣고 필기도 하고 녹음도 할 수 있는 노트북 비슷한 쪼그만 걸 머리에 씌우고 듣는 것까지 해서 거의 삼백만 원 주고 사 주었다더니 제 눈 수술비는 아까웠나 보다. 아이고, 답답한 놈. 저녁에 해 줄 불고기도 재워 놨겠다 남편 새참 시간 전까지 유튜브나 보려 했는데 재현이 옥탑방 청소나 해 줘야겠다.
재현이가 옥탑방으로 독립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삼 층의 이상한 구조 때문이었다. 애초에 건물 주인이 살림집으로 쓸 요량으로 지었다는데 방이 두 개, 화장실이 두 개였다. 요새 새로 짓는 아파트에는 화장실이 두 개인 경우가 흔하다지만 그건 방이 세 개 이상인 큰 아파트일 때 아닌가. 방의 개수와 화장실의 개수가 똑같다는 건 아무리 봐도 요상했다. 가진 돈에 맞추어 건물을 사다 보니 그 정도의 흠은 그냥 넘겼지만 처음부터 이해가 안 되긴 했었다. 안방에는 나와 남편이, 옆의 작은 방에는 재훈이와 재현이가 살아야 했다.
좀 지나자 재훈이가 못 견뎌했다. 둘이 근본적으로 다르긴 했지만 그 정도의 이유로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사서 나가겠다고 재훈이가 선언했을 때 온 식구가 깜짝 놀랐다. 평소에는 잠만 자고 주말에만 좀 같이 있으면 되는데 그걸 못 참는단 말인가. 재현이가 주말에는 자기가 방에서 나가 주겠다고, 자기는 안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자도 된다고 했지만 재훈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대출은 빚 아닌가. 재영이가 서울 가서 방 때문에 고생고생 할 때도 빚을 내서 살 만한 방을 얻어줄 생각은 조금도 안 해 봤었다. 남편과 나는 병원비가 없지 않은 한 어떤 경우에도 빚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철칙을 평생 지켜 왔다. 서둘러 옥탑방을 올리고 재현이가 그리로 옮아갔다. 돈은 좀 들었지만 옥탑방이 생기니 좋았다. 재훈이가 독립 선언을 거두어들인 것도 좋았지만 제일 좋은 건 남편과 재현이가 덜 마주치게 된 거였다.
삼 층에서 같이 살 때 남편은 재현이에게 못마땅한 게 많았다. 재현이는 뭐든 끄지 않는 편이었다. 출근할 때 방의 불을 끄는 것과 화장실을 쓰고 나서 불을 끄는 것을 거의 잊었다. 겨울이면 보일러 끄는 것을, 여름이면 에어컨 끄는 것을 잘 잊었다. 가끔은 가스레인지 끄는 것도 잊어 기함을 하게 했다. 또 같은 방을 쓸 때 재훈이가 못 견딜 만큼 많이 지저분했다. 돈이 생기면 은행에 넣어 두듯 초코파이를 몇 개씩 먹다가 마지막으로 봉지를 뜯은 게 한 입이라도 남으면 꼭 어디 사이에 넣어 뒀고 먹다 남은 과자 봉지도 곳곳에 쑤셔 박아 뒀다. 마저 먹든지 버리든지 하라고 재훈이가 노상 잔소리를 하면 응응, 알았어 하면서도 늘상 그랬다. 재훈이가 보기 전에 치워 버리고 재현이에게는 남은 걸 내가 먹었다고 거짓말하기도 많이 했다. 재현이가 식탁에서 뭘 먹고 나면 반드시 흔적이 남았다. 음식 찌꺼기가 흘려져 있거나 행주를 꼭 짜지 않고 닦아 물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김치통 뚜껑도 신기하게도 아귀가 딱 맞지 않게 닫혀 있었고 잼통 뚜껑도 비뚜름하게 닫혀 있어 다시 열 때 애를 먹였다. 나는 그렇게 하려고 해도 못 할 재주였다.
방이야 남편이 어쩌다 한번 보는 거였고 식탁이야 주로 내가 다시 닦으니까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화장실은 달랐다. 안방에 작은 화장실이 붙어 있긴 했지만 명절 선물로 참치캔 세 개씩을 줬다는 뉴스처럼 화장실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수준이었다. 몹시 좁은 데다 환기가 안 되어 물기가 마르지 않아 남편이 양치질 용도 정도로만 사용했고 온 식구가 샤워를 하거나 용변을 볼 때는 거실 화장실을 써야 했다. 그런데 재현이가 샤워를 하고 나오면 화장실이 난장판이 되었다. 샤워 타월을 왜 똑바로 못 걸어 바닥에 흘러내리게 하는지, 멀쩡한 칫솔꽂이를 두고 칫솔을 왜 변기 물탱크 위에 올려 두는지, 바닥에 왜 치약을 질질 흘려 두며 치약 뚜껑은 왜 닫지 않는지 남편은 못마땅해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불만은 화장실 벽에 온통 튄 하얀 거품을 왜 물로 씻어낼 생각을 못하는가였다. 이 마지막 불만은 사실 나도 컸다. 곰팡이가 그 거품 때문에 생기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일 사이에 낀 곰팡이를 팔이 아프도록 박박 문질러 닦을 때면 재현이에게 부아가 치밀긴 했다.
그러나 나는 온갖 것을 안 끄고 온갖 데를 어지럽히는 재현이보다 그걸 다 지적질하는 남편이 더 미웠다. 내가 밖에서 낳아 온 자식도 아닌데 애들이 뭘 잘못하면 자기도 좀 감싸줄 생각을 해야지 다 내가 알아야 하는 것처럼 미주알고주알 고자질하는 것이 얄미웠다.
“재현이는 또 방에 불을 안 끄고 갔네.”
“그냥 끄면 되지. 그걸 뭘 매번 얘기해요. 아무리 말해도 안 되는데.”
“안 한다고 가만 놔두면 되나? 밖에 나가서 욕먹어. 자기만 모르지 다들 욕한다고.”
“밖에서 욕을 먹든 뭘 먹든 그건 재현이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리고 재현이가 욕먹는지 어떻게 알아요? 회사 사장님이 재현이라면 껌뻑 죽는 눈치던데.”
재현이는 하수처리 회사에 다닌다. 회사라고 하지만 택배도 배달이 안 되는 산속에 하수처리 시설이 있고 그 앞마당에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이 있다. 마당에는 영국 귀족이라나 하는 사냥개 여러 마리와 달걀을 잘 낳는 닭들을 키운다. 사장이 동물을 좋아한단다. 본사니 어쩌니 하지만 회사 구조는 내가 잘 모르고 여기 사장이 재현이 고등학교 동창인 것은 안다. 재작년부턴가 본사에서 구조조정 지시가 내려질 것 같다는 소문이 찔끔찔끔 퍼져 재현이와 우리 부부 모두 노심초사했지만 직원들이 거의 다 물갈이될 때도 재현이는 건재했다. 재현이는 그 소문이 처음 전해지자마자 전기기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사무실에 그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없어 매월 돈을 주고 자격증을 빌리고 있다며 자기가 그걸 따서 회사 경비를 줄여보겠다고 했다.
“야, 니가 맨날 제일 먼저 출근하면서 문 열고 제일 늦게 퇴근하면서 문 잠그는데 설마 너를 자르겠냐. 여태 쉬는 날에도 개들 밥 준다고 회사에 한 번씩은 꼭 나갔는데 다 잘라도 너는 못 자르지. 그렇게 맨날 책만 들여다보다 괜히 눈이라도 덧나면 어쩌냐.”
한 번은 개가 새끼를 낳고 얼마 안 돼 주말에 한파가 덮치자 재현이는 개 우리를 담요로 덮어줘야겠다며 한밤중에 차를 끌고 회사로 갔다. 그러더니 새끼 네 마리를 차에 싣고 돌아와서 박스 안에 헌 옷을 깔고 제 방에서 주말을 같이 보냈다. 개똥 냄새가 얼마나 진동을 하는지 월요일 하루 종일 창문이며 방문을 활짝 열어 두어야 했고 남편은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코를 싸쥐고 내려왔다. 처자식이 없어 부모며 동생들이며 심지어 회사 짐승들에게까지 지극정성인가 싶었고 처자식이 있다면 얼마나 잘할까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그런 재현이가 회사에서 욕을 먹을 리는 없다. 설사 욕을 먹을 일을 하더라도 상쇄시킬 만큼 회사에 충성을 한다는 걸 사장이 모를 리 없다. 그러니 명절이면 사장 앞으로 들어온 비싼 선물까지 재현이에게 죄다 들려 보내고 꼭 잠깐이라도 인사차 우리 집에 들르는 것 아니겠는가.
여태 묵묵히 집 생활비를 대 주고 뭘 해 줘도 밥을 한 고봉씩 뚝딱 해치우고 엄마가 해 주는 반찬이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을 척 세우고 술만 한 잔 들어가면 재영이며 재훈이에게 전화해서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 하나뿐인 조카 민서라면 대학 등록금도 다 대 줄 수 있다고 벼르는 재현이가, 불을 좀 안 끄고 방을 좀 어지럽히는 게 그렇게 대수란 말인가. 그냥 꺼 주고 치워 주면 되는 일 아닌가.
쓰레기봉투를 두 장 들고 옥탑방에 들어서니 한숨이 나긴 한다. 손바닥만 한 거실과 화장실의 불은 재현이가 출근하자마자 남편이 보기 전에 얼른 올라와 껐었다. 방문을 열자 바로 앞에 며칠간 샤워하고 쌓아 둔 수건과 속옷, 기타 옷가지들이 자그마한 산을 이루고 있었다. 매번 타 넘어 다녀야 할 텐데 왜 이걸 꼭 문 앞에 쌓아 둘까 궁금해하면서 빨래 더미를 일단 거실로 내놨다. 뭘 흘렸는지 찐득찐득해진 컴퓨터 자판을 닦았다. 물기 있는 수건으로 닦았다가 한 번 고장을 낸 후에는 칙칙 약을 뿌리고 마른 수건으로 갓난애 몸에 로션을 바르듯 살살 문지른다. 자판 사이는 닦기가 힘드니 비닐 커버를 딱 맞게 씌워 두든지 자판에서 좀 떨어져서 뭘 먹든지 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밥을 차린 쟁반도 막걸리 잔을 놓은 쟁반도 과자 봉지도 항상 자판 아래에 딱 붙여 놓고 화면을 보며 먹는다. 자판 양 옆으로 가득한 음료수병들 안에는 실뜨기하듯 가느다란 곰팡이 실이 여러 겹 쳐져 있었는데 걸쭉하게 변해 있는 남은 액체를 싱크대에 쏟아붓고 물을 한참 내린 후 싱크대도 박박 닦았다. 침대 아래에서 야구공 사이즈로 둥글게 말린 양말들을 꺼내 엉겨 붙은 먼지와 머리카락을 떼었다. 냉장고를 열어서 깨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핫바와 뚜껑이 열려 있는 보리차를 담은 물병을 꺼내 냄새를 킁킁 맡은 후 모조리 버렸다. 껍질이 약간 쭈글쭈글해진 참외와 자두는 꺼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뒀다. 드라이기 코드를 뽑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며 어째서 머리카락이 드라이기 근처가 아닌 방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일까가 또 궁금했다. 재현이 방에는 궁금한 점이 항상 많다. 걸레로 세 번을 닦고 나니 방이 말끔해졌다. 코딱지만 한 원룸 방 하나 치우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거실은 거실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코딱지만 해선지 재현이도 어지럽힐래야 어지럽힐 수가 없다. 최대의 문제는 화장실이다. 방을 치우느라 빠진 힘을 잠시 앉아 다시 끌어모았다. 아래층에 가서 물이라도 한 컵 마시고 올까 고민하는데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라온 남편이 컵에 물을 부어 왔다. 눈치가 많이 늘었다.
화장실 문을 열 때마다 항상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거의 천장에 닿을 듯이 높은 곳에 고정돼 있는 샤워 호스다. 굳이 고정장치를 높은 곳에다 옮겨 달아서 나는 뒤꿈치를 한껏 들어야 겨우 손이 닿는다. 나보다 키가 작은 재영이는 민서와 함께 처음 이 옥탑방에서 머물 때 샤워기 대가리까지 손이 닿지 않자 아래 줄 부분을 잡고 흔들어 샤워 호스를 꺼내다가 샤워기 대가리가 아래로 툭 떨어지면서 머리통을 얻어맞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재영이가 온다 하면 재현이가 미리 샤워 호스를 바닥에 내려 둔다. 조심조심 뒤꿈치를 한껏 들어 샤워기 대가리 밑을 겨우 잡고 호스를 벽에서 떼어 냈다. 바닥에 떨어진 치약 뚜껑을 주워 튜브에 끼우고 역시 바닥에 떨어진 샤워 타월과 세면기 위에 놓인 칫솔도 양치컵 속에 넣었다.
제일 힘든 건 사방 벽에 핀 곰팡이와 물때를 없애는 거다. 재현이는 샤워 호스를 제 머리보다 한참 위에서 틀어 놓고 사방으로 비누 거품을 튀기면서 사워를 한다. 옥탑방인데도 하필이면 수압이 좋아 힘찬 물줄기와 함께 바닥, 사방 벽, 천장까지 거품은 거침없이 들러붙는다. 거뭇거뭇해진 천장은 청소할 도리가 없어 일찌감치 포기했고 전등을 감싼 반투명 케이스가 물과 비누거품을 잘 막아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키가 닿는 데까지 벽과 바닥을 솔과 수세미로 문지르고 물 내려가는 구멍 속에서 진흙 같은 때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을 뽑아내고 쓰레기통에 씌워 둔 까만 비닐봉지를 꺼내고 새 비닐을 씌웠다. 마지막으로 화장실 슬리퍼를 깨끗하게 씻어 나란히 세워 두는 것으로 청소는 끝났다. 점심 먹고 시작한 청소를 끝내니 새참을 준비할 시간이 다 되었다.
삼 층으로 내려오면서 재현이가 옛날에 배를 탈 때도 배 안을 이렇게 어질렀을까, 지금 회사에서도 이렇게 어지르고 있을까 잠깐 걱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생각하지 말자고 고개를 흔들었다. 무사히 배를 탔었고 지금도 회사를 잘 다니고 있지 않냐고 서둘러 안심했다. 그러면서 이 낡은 건물을 빨리 팔고 아파트를 한 채 사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요즘 들어 부쩍 드는 생각이었다. 죽기 전에 아파트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은 소망도 없진 않았다. 지지리 궁상을 떨던 초등학교 동창이 네 딸을 모두 시집보내고 이사한 작은 아파트에 가 보니 그런 신천지가 없었다. 나도 그런 세련되고 깨끗한 신식 집에서 한 번은 살아보다 죽고 싶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내가 죽기 전에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옥탑방에 있는 재현이 옷장은 시어머니가 살아생전 쓰던 걸로 문짝 아귀도 잘 맞지 않는다. 그렇게 어딘가가 어긋나서 버려야 할 낡은 것들이 정상적인 것보다 많다. 마당이 넓고 수납공간이 널렸던 바닷가 집에서 이 건물로 이사 올 때 다 버렸어야 했는데 혹시나 하는 아까운 마음에 싸 짊어지고 오는 바람에 남는 공간이라고는 없는 깍쟁이 같은 집 안 곳곳에 쓰레기와 다름없는 살림살이가 가득하다.
또 남편과 내가 죽고 이 낡은 삼층 건물에 재현이가 혼자 살면서 건물을 건사하고 세입자들을 관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건물을 가지면 다 좋은 줄 알지만 그건 크고 삐까뻔쩍한 건물에 관리자가 따로 있을 때 이야기이다. 다이어트를 한다면서도 끊임없이 목구멍으로 넘기는 음식들처럼 이 코딱지만 한 건물에 고장 나고 수리할 데는 어쩌면 그리도 끊임없이 생기는지, 남편이 거의 매일 드라이버며 망치를 들고 소소한 것은 스스로 고치니 망정이지 매번 사람을 불러 고쳐야 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판이었다. 지금은 남편이 건물을 관리하고 내가 세입자들을 관리하며 그럭저럭 굴러가지만 어쩌다 계약을 맡기면 오만 원씩 월세를 깎이는 재현이가 혼자 남았을 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아파트를 사서 독립한 재훈이도 아파트 좋다고, 빨리 건물 팔고 이사하라고 성화인데 문제는 재현이가 꿈쩍도 않는 것이다. 자기는 이 건물이 좋고 옥탑방도 좋단다. 하긴 결혼하면 옥탑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릴 거라는, 아가씨들한테 뺨 맞을 소리나 하던 재현이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오면서 오늘 저녁에 다시 재현이에게 건물을 팔자는 이야기를 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새참은 막걸리 한 잔에 부침개 한 장이면 된다. 더운 날 남편 때문에 전을 부치진 않는다. 재현이가 수북이 쌓인 꼬챙이 산적을 사진까지 찍으며 좋아하니 그걸 하는 김에 마지막으로 남은 반죽에 부추만 숭숭 썰어 넣고 전 한 장 부치면 남편 새참과 재현이 저녁 반찬까지 한 번에 마련된다. 재현이는 오십이 될 때까지 내가 해 준 음식을 먹고살았다. 뱃고래가 커서 파는 음식으로는 성에 차지도 않을뿐더러 돈이 아까워서 뭘 사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치킨이 먹고 싶으면 배달비가 아깝다고 꼭 직접 가서 한 마리를 살까 반 마리를 살까 고민하다가 반 마리를 포장해 와선 라면 한 개를 끓여 같이 먹는다. 나이를 먹으니 뱃살이 는다고 걱정하면서도 고봉밥을 싹싹 비우는 걸 보면 아직 장정이다. 식탁에 앉아 맛살과 햄, 쪽파와 단무지, 버섯을 똑같은 길이와 두께로 썰어서 쌓고 이쑤시개에 나란히 꽂았다. 어차피 밀가루 뒤집어쓰고 기름 냄새 맡는 김에 잔뜩 해서 둘 작정이다.
머리카락이 떨어졌나 계속해서 살피고 또 살폈다. 반찬이나 국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되는 횟수가 늘었다. 젊었을 때는 좀처럼 없던 일이다. 머리카락이 힘이 없어져서 잘 빠지는 데다가 희끗희끗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남편과 재현이의 숟가락, 젓가락에만 머리카락이 걸렸다. 밥상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되기 시작했던 초기에는 먹던 반찬이며 국을 싹 버리고 다시 떠 줬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음식을 해도 그 횟수가 점차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밥상을 차리고 수저를 들 때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멀미를 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울렁했다. 특히 다 같이 먹는 저녁밥을 할 때는 음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음식을 하는 것이 두려웠다.
시장에서 쌓아 두고 파는 반찬들을 슬쩍 상에 늘어놓았다. 반찬 가게 앞을 지나며 옹기종기 모여 서서 반찬을 고르는 여자들을 볼 때마다 제 식구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하기 귀찮아서 사다 먹이냐며 속으로 흉보던 나였지만 도리가 없었다. 수십 가지 종류에 엄청 비싼 줄 알았던 가격도 재현이가 워낙 많이 먹는 탓에 해 먹는 것보다는 돈이 조금 더 들었지만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밥상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되는 일은 없어졌지만 남편과 재현이는 사 온 반찬을 귀신같이 남겼다. 할 수 없이 자나 깨나 머리카락 조심하면서 다시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었다. 다행히 밥상에서 머리카락을 집어내는 일이 저절로 줄어들었다.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어쨌든 안심이 되었다. 시장에서 반찬을 사는 일을 그만두었고 다시 접시들은 깨끗이 비워졌다. 음식을 하면서 살짝 신이 나기도 했다.
남편이 진종일 텔레비전을 보는 바람에 식탁 대신 안방에 밥상을 차리는 때가 많았다. 밥상을 내가고 설거지를 마치면 하루의 마지막은 자기 전에 방바닥을 닦는 거였다. 머리카락에 노이로제가 걸렸던 탓에 방을 훔칠 때도 머리카락만큼은 결단코 닦아내겠다는 결기로 방바닥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더 싹싹 닦는 습관이 생겨 있었다. 다시 신이 나서 반찬을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나서였을까. 며칠에 한 번은 꼭 같은 위치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위치가 밥상에 앉았을 때 남편과 재현이의 자리 근처라는 것도 불현듯 알아버렸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밥상에서 발견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좀 감동했던 것 같다. 가족이란 이런 건가 싶기도 했던 것 같다. 늙은 엄마, 늙은 아내가 한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와도 티 안 나게 슬쩍 감추어주는 것이야말로 애정인 것 같았다. 그 후로 음식을 주변에 나눠 주거나 손님을 초대해 밥을 먹이는 일은 힘에 부친다는 이유로 없앴다. 지금은 노이로제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음식을 할 때면 머리카락이 떨어질까 조심조심하지만 밥상 앞에서 멀미를 느끼지는 않는다.
한탄이 부글부글 끓던 내 마음이 좀 식은 것은 그 이후일 것이다. 팔십이 넘은 남편의 삼시 세 끼와 세 번의 새참을 챙겨 주고 오십이 된 아들의 아침저녁을 준비하고 주말이면 마흔이 넘은 막내아들까지 불러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이고 하는 부엌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한탄할 만한 정당한 사유였다. 명절이면 혼자 장을 보고 나물을 무치고 전을 부쳐 제사상을 차리는 것도 지겨웠다. 부엌일에는 퇴직금도 없고 정년도 없다는 것이 서럽고 암담했다. 나도 칠십이 넘었는데 죽을 때까지 밥 차리는 일에서 허우적거릴 것을 생각하면 까마득했다. 그런데 밥을 먹다가 발견한 머리카락을 슬그머니 집어내 바닥에 슬쩍 내려놓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밥을 먹는 남편과 아들들만큼 나를 위해 주는 이들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쩍쩍 갈라졌던 메마른 마음을 촉촉이 적셔 주었다.
이제는 늙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내가 주는 대로 먹고 텔레비전만 보는 남편이지만 근 사십 년 동안 돈을 벌어 홀어머니와 장모님을 모신 아들이자 사위였다. 비상금 한 푼 따로 챙긴 적 없고 오입질 한 번 한 적 없고 메이커 옷 한 번 사 입은 적도 없는 성실하고 반듯한 남편이다. 애들 키우느라 평생 오토바이를 타다가 정년퇴직을 사 년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차를 갖게 되자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으며 겨우 오 년 남짓 애지중지하다가 유지비가 부담된다며 그 아끼던 것을 없애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 애들의 아버지다. 자기를 위해서는 뭘 하려는 엄두를 내지 못하면서도 불평은커녕 더 해 주지 못해 미안해하면서 가족들을 부양한 지난날의 공로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
재현이도 오십이 넘을 때까지 장가 못 가고 눈 수술받은 것 빼면 속 한 번 안 썩인 아들이다. 이 년 터울인 재영이와 자기가 동시에 대학을 다닐 수는 없을 거라며 알아서 돈 안 드는 대학에 가고 졸업 후에는 배를 타며 재영이 등록금을 보탠 아들이다. 지금도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 통장에 돈을 넣어 주는 우리 집 가장이다. 작은 회사일망정 들어가서 이십 년 넘게 다니면서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 직원이다. 저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서 치킨도 반 마리만 사 먹지만 동생들 걱정이라면 끔찍이 하고 조카에게는 몇백만 원 쓰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는 외삼촌이다.
남편이 재현이 일로 투덜대면 잘 타일러야겠다. 앞으로 남편이나 나나 죽을 때까지 재현이 그늘에서 살 텐데 그만한 아들 둔 것도 다 복이라고 화내지 말고, 타박하지 말고 잘 알아듣게 타일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