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단단 Apr 18. 2024

테슬라, 루이비통, 아이폰을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물질이 만능열쇠처럼 여겨지는 세상을 경계했다.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되거나 값비싼 물건의 소유가 우월감을 뽐내는 수단이 되는 것을 꺼렸다. 물질의 힘이 인간사를 지배할 수 없다 믿었고, 세상의 끝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어떤 인간다운 가치들이라고 굳게 믿었다. 자본주의 절정을 이룬 시대에 누군가는 참 어수룩한 생각 한다며 난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인간성, 도덕성, 사랑, 양심,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열정과 노력 따위를 칭송했다.



그 굳은 믿음에 처음으로 금이 간 것은 스무 살,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다. 동네를 벗어나 전국의 수많은 또래들이 모인 장소에서 그들과 친해지며 나는 이유 모를 괴리감을 느꼈다. 그들이 누려온 어떤 혜택들, 자연스레 몸에 배어 있던 문화들, 배경지식의 폭과 남다른 경험의 깊이에서 부의 가치를 처음 느꼈다. 그것은 마치 나서서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레 발산되는 것이었고, 피할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세상의 진실이었다.



다행히 나의 대학은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는 곳이었고, 비교나 경쟁보단 동행을 우선시했다.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금방 잊혔고, 가치관은 다시 회귀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학교를 옮기면서 아주 오랜만에 그 위화감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교사는 5년마다 한 번씩 익숙함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전 학교에 사고방식과 습관을 맞춰왔는데, 별 수 없었다. 겹겹이 쌓인 추억 뒤로 하고 새로운 곳생활이 순탄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익숙함은 관성과 같아서 쉽게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지난 5년간 살았던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나는 마치 성직자 같은 교사가 되어있었다. 경제적 어려움, 불우한 가정환경, 무방비한 노출, 거친 말과 행동이 익숙했던 아이들과 학군의 분위기가 어느새 투철한 소명의식과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가진 교사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새로운 아이들은 평온한 눈빛과 표정 가졌고, 설렘과 호기심의 감정이 충만했지만 나는 이유 없이 조급했다. 공부보단 관심과 사랑을 주고, 가정에서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법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나 자신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가르침'보다 아이들의 복지에 치중할 수밖에 없던 무의식은 새로운 학교에서도 불쑥불쑥 드러나곤 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던 정체성의 균열은 예상보다 빠르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참 우습지만, 그 시작점은 바로 '테슬라'였다. 맞다. 일론 머스크의 그 '테슬라'다.






새로운 학교에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중순, 아이들과 한참 서먹하던 시기였다. 항상 첫 번째로 등교를 하던 붙임성 좋은 하늘이가 무심코 질문을 했다.   



"선생님, 주차장에 테슬라요. 혹시 선생님 차예요?"



"어, 아닌데?"



"아, 그래요?"



별 이유 없었다는 듯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할 일을 하는 하늘이를 보며 방금 들은 질문을 곱씹기 시작했다. 이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고민도 잠시, 나는 '테슬라'라는 단어를 들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테슬라?' 전임지의 아이들는 이런 범주의 이야기를 단 한 번도 은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5학년 아이에게 테슬라 차를 타냐는 질문을 받다니.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위화감을 누르고 생각했다. 그래, 하늘이가 유독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아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은 '루이비통'이었다. 우리 반을 상징하는 로고 만들기라는 주제로 미술 수업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가장 투표를 많이 받은 작품을 학급 밴드 메인에다 올려준다고 하니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때, 유찬이가 질문을 하나 했다.



"선생님, 저 인터넷 참고해도 되나요?"



"어떤 것?"



"아, 루이비통 로고처럼 문양이 여러 개 들어가면 예쁠 것 같아서, 비슷하게 해 보려고요."



아뿔싸, 루이비통이라니. 이건 테슬라보다 더 예상할 수 없었던 단어였다. 간혹 아이들 중에 본인이 알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말을 꺼내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유찬이의 순진무구한 눈빛과 평소 태도를 생각하면 절대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의도 없는 순수한 질문이었다. 그렇게 교실에 내뱉어진 '루이비통'이라는 단어는 정체성에 선명한 균열을 냈다.



정점은 요즘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아이폰'이었다. 웬일인지 아침시간이 소란스러웠다. 혜성이가 새로운 아이폰을 샀다며 아이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슬쩍 보니 '나는 신제품이에요'라고 쓰여있는 듯 새것의 티가 물씬 나는 은색 아이폰이었다. 나는 당연히 아이들이 혜성이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혜성아, 이게 프로 맥스지? 나도 이번 주에 사러 가는데, 실제로 보면 무슨 색이 제일 예뻐?"



"아, 나도 기다렸다가 살걸. 이번에 나온 게 더 좋아 보인다"



자연스러운 반응 속에 부러움이나 시기, 질투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전임지에서 아이폰은 아이들의 간절한 소원 내지는 감히 올라갈 수 없는 높은 나무에 매달린 황금 열매 같은 것이었다. '그거 비싸서 못 사'가 되풀이 됐던 분위기가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아이폰을 갖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고, 실제로 가질 여력이 되는 모양이었다. 의문조차 실례일정도로 당연한 모습 압도됐다.



이 외에도 참 여러 가지 순간이 있었다. 수시로 해외여행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는 아이들, 악기를 다루고 무용을 하고 스포츠를 즐기는 아이들, 부모님과 시간을 맞춰 박물관, 미술관, 워터파크, 각종 문화체험을 즐기는 아이들까지. 이곳에서는 가능했고, 당연했다.



이전과 달리, 나의 도움과 관심은 부차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의 정체성은 재정립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곳은 투철한 소명의식과 헌신적인 봉사정신이 발휘될 필요가 없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테슬라, 루이비통, 아이폰에 익숙한 것이 뭐 그리 대수라고' 가벼이 생각하엔 체 격차가 실로 컸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들여다보면 살아온 환경과 체득한 경험들이 다르다는 것이 쉽게 드러난다. 이 차이가 묘하게 씁쓸할 때가 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그저 여유 있는 환경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많은 것을 보고 자랐을 뿐인데,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자랐음에도 마음속 동경심을 목격해 버렸던 나의 스무 살 시절이 떠올라 뒤숭숭하다.



가지고 싶은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아이들과 내색할 수 없는 아이들, 타고나길 기회가 많은 아이들과 학교가 전부인 아이들, 사랑과 관심에 익숙한 아이들과 마음의 틈이 있는 아이들. 나는 그저 환경에 따라 새로운 모습의 교사로 다시 태어날 뿐이다. 그리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되었다.



지극히 당연한 현실에 거창한 의미부여는 필요 없을 테다. 정도, 위로도, 격려도, 응원도 모두 위선으로 여겨질까 조심스럽다. 



그저 아이들이 세상에 펼쳐진 무한한 차이의 굴레 속에서 불행해지지 않기를, 세상의 불공평함에 매몰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며 살 수 있기를, 스스로 한없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며 살기를.



두 곳의 아이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전 16화 3년 후, 그 아이의 문제행동이 사라진 이유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