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르신 제빵소
치킨 먹을 때 다리보다 가슴살을 더 좋아하는 사람, 고구마 중에 밤고구마만 먹는 사람, 그 사람이 나다. 나는 희한하게 어렸을 때부터 먹을 때 목이 뻑뻑하게 막히다가 물이나 음료를 먹을 때 시원하게 해소되는 느낌을 좋아한다.
주변에 소문난 딸바보, 다른 사람 말은 절대 안 들어도 딸 말은 들어주고 아들이 사면 돈 낭비지만 딸이 사면 그저 취미활동을 위해 산 의미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이 사람은 우리 아부지다. 아부지는 나를 정말 아껴주신다. 음식을 먹을 때 퍽퍽함을 좋아하는 딸과 딸바보에 제빵을 막 시작하신 아부지가 만나면 탄생하게 되는 빵이 스콘이다.
스콘은 밀가루 반죽에 베이킹파우더를 넣어 만드는 빵으로 영국에서 유래했다. 다른 빵들에 비해 비교적 만드는 과정이 간단하여 시간이 적게 걸린다.
나의 스콘에 대한 애정의 역사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대학시절 과외로 조금씩 돈을 모아 친구들과 생애 처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은 영국이었다. 같이 갔던 친구 중에 스콘을 정말로 좋아하는 친구 L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L이 영국에서의 여행 일정을 계획하게 되었다. 영국 여행을 가기 전에는 스콘이 뭔지도 몰랐지만 스콘 덕후의 가이드로 자연스럽게 영국의 여러 지역에서 스콘을 먹었다. 그중에서도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브라이튼이라는 해안도시에서 먹은 스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더 목 터틀(The Mock Turtle)'이라는 카페에서 파는 스콘이었는데, '스콘 덕후'인 L은 이 카페의 스콘을 먹기 위해 꽉 차 있는 일정에 브라이튼 방문을 욱여넣었다. 이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는 크림티 세트다. 크림 티 세트는 홍차-보통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나 잉글리시 애프터눈티-에 클로티드 크림, 딸기잼을 바른 스콘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림티 세트를 먹어봤는데, 갓 구워 나온 스콘에 달콤한 딸기잼을 얹어 먹었을 때의 달콤함과 파근파근한 식감, 목이 막힐 때 마셔주는 적당히 씁쓸하고 적당히 달달한 홍차, 너무 맛있었다.
그때 먹었던 크림티 세트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후로 나는 빵집에 가면 스콘만 사 먹는, L을 뛰어넘는 '스콘 덕후'가 되었다.
이런 스콘 덕후인 내가 "뭐 먹고 싶은 빵 있어?"라는 아부지의 물음에 0.1초의 고민도 없이 한 대답은 "스콘! 바질가루 팍팍 넣은!"이었다. 아부지는 바로 바질 스콘 연구에 착수했다. 바질 스콘을 만들기 전에 연습 삼아 가장 기본이 되는 아무 향을 첨가하지 않은 플레인 스콘을 먼저 만드셨다.
'첫 술에 배부를 리 없다'는 말처럼 아부지가 처음 만든 스콘은 아부지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 색이 좀 더 진하고 모양이 예쁜 사각형이어야 하는데 다 익었음에도 불구하고 색이 노르스름하고 잘 부서져 아부지는 매우 실망하셨다. 그럼에도 맛은 일반 베이커리에서 파는 것과 똑같았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퍽퍽해서 퍽퍽함을 좋아하는 나의 입맛에 딱 맞았다. 에어프라이어에 돌렸을 때 더 맛있었는데 그야말로 겉바속촉(겉은 바삭, 속은 촉촉)이었다.
첫 작품에 만족할 수 없었던 아부지는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을 수정하기 위해 바로 유 선생님(*유튜브)과 스콘 연구를 다시 시작하셨다. 이왕 다시 만드는 김에 내가 주문한 바질 스콘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셨다. 바질이 뭔지, 바질 스콘을 만드는 방법은 플레인 스콘과 어떻게 다른지 등등을 열심히 찾아보셨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바질 스콘에 도전하셨다.
바질 스콘은 대성공이었다. 색, 모양, 맛 세 박자를 모두 갖추었다. 이전의 파근파근한 식감은 물론 바질가루를 반죽에 듬뿍 넣어 바질향이 엄청 강하고 향긋했다. 거기에 노릇노릇한 색깔까지! 거의 10년째 스콘 덕후를 자처하며 다양한 곳에서 많은 스콘을 먹어봤지만 아부지의 바질 스콘은 그동안 먹어 본 바질 스콘 중 가장 맛있었다.
아부지는 스콘들을 냉동실에 얼려두고 직장에서 먹으라며 매일 아침마다 한 개씩 데워서 작은 통에 싸 주셨다. 직장에서 스콘을 꺼내 먹을 때마다 딸을 생각하며 스콘을 만드셨을 아부지의 애정이 느껴져서 온갖 힘들었던 일들이 그 순간만큼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