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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배언니 Jan 04. 2023

뉴질랜드의 재야생화

회복력의 시대, 뉴질랜드는 재야생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뉴질랜드 남북섬을 4주 싸돌아 다니면서 자주 본 것은?  당연히 드넓은 목초지에 풀을 열심히 뜯고  있는 양 떼다. 남편은 머리가 보이지 않고 궁둥이와 몸통만 보이는 모습이 구더기를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나도 같이 느꼈지만  먹는 걸 가지고 경망스러운 표현을 쓰면 안 될 것 같아 참았는데.


또 자주 본 것은? 주택 담장에, 들판에 아무렇게나 무성하게 피어 있는 꽃들이다. 한국에는  화원 가면 돈 주고 사는 꽃들이 여기는 길거리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특히 남섬의  곳곳에는 루핀이  밭을 이루며 피어있다. 한국 가면 개당 만원 넘는데! 수억 원어치가 천지사방 굴러 다닌다. 여름이라 이런 장관을 본다.

뉴질랜드의 초화류(그림 윗쪽)과 루핀(아래의 꽃)

뉴질랜드에 없는 것은?  비데가 없다. 방충망이 없다. 오클랜드 제외하고는 높은 빌딩이 없다. 공장이 거의 없다. 자국의 환경보호 때문일까? 유제품 가공공장은 있으나 연기 풀풀 나는 공장은 없다. 거의 모든 공산품을 수입한다.


그래서 물가는? 당연히 비싸다. 관광지 햄버거가 이만 원이 넘는다. 마트의 야채. 과일도 비싸다. 적양파 달랑 하나가 2~3천 원이다. 생수 500미리가 5달러다. 수입관세가 붙어 비싼 건 아는데  낙농국에서 우유, 요구르트, 치즈가 비싼 이유는 무얼까?  야채가 비싼 이유도 알수 없다. 노는 땅이 사방에 있는데 채소농장이 거의 없다. 


후에 들어보니 뉴질랜드 정부는 채소,곡물생산량도 통제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격의 변동폭도 없고 늘 일정하게 비싸다. 우리처럼 한해 양파가 비싸면 다음해 다른  밭을 갈아 엎고 양파만 농사를 해서 결국 공급과잉으로 양파수확기에 밭을 갈아 업는 일은 없다. 그리고 농사짓는 땅도 적당량으로 통제하나보다. 그것도 토양보호의 차원일까? 확실치는 않다. 현지인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밖에서는 햄버거와 피쉬 앤 칩스 외에 별다른 것이 없다. 마트에서 양고기, 소고기 사다 해 먹는 게 최선이다.  가장 맛있게 먹은 것은 마오리 전통 음식인 '항이'이다. 고기와 각종 야채를 땅속에 묻어 서너 시간 찐 것인데 간이 쎄지 않고 심심하니 입맛에 맞았다.


뉴질랜드에서는 녹색 채소를 먹기 힘들다?  레스토랑에도 풍성한 샐러드 메뉴가 없다. 아니 있다 하더라도 공기밥 만한 그릇에 마요네즈 대충 비벼 나오는 퍼런 채소가 만원가까이 한다. 만원이면 서너가지 반찬에 뜨끈한 순대국이다. 아무리 관광지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이렇게 광활한 초원에 채소농장이 없단 말인가? 남섬에는 목초지외에 식물 경작지를 거의 못보았고, 북섬에는 옥수수와 감자밭을 간혹 보았다. 그 옥수수 또한 가축을 위한 것이란다. 광활한 목초지에 연신 돌아가는 자동관수 시설도 다 양떼들이 먹는 목초에 주는 거다. 역시 대지의 절대 사용자도 양과 소인 나라다. 


원래 여행초기에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쾌변여부이다. 가뜩이나 갱년기 들어 output활동에 빨간불이 뜨는데 푸른채소를 맘껏 먹지 못하니 여행 초반부터 여성 3명 모두 비상이 걸렸다. 아침마다 서로의 넘버2(넘버1은 당연히 소변)를 확인하며 안타까움과 축하의 인사를 나누는게 일상이 되었다. 수퍼에서 적지 않은 가격을 무릅쓰고 채소를 구매하여 날마다 야채 폭탄을 했는데도 여행중이라 그런지 시원치 않았다.  


급기야 친구 중 한명은 꽁꽁 막힌 출구에 가스가 점점 차서 배앓이를 해야 했고, 나는 누워있는 친구의 배를 우측에서 좌측으로 온힘을 다해 쓸어주어야 했다. 뉴질랜드 여행에는 섬유질 확보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뉴질랜드에서 현금의 필요성은? 없다. 비자나 마스터카드면 오케이다. 팁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호텔에 1.2불을 놓고 올 필요가 없고 식당도 팁을 원할 경우 계산에 포함하겠느냐 물어온다.


뉴질랜드에서 거의 보지 못하는 것은?   강을 건너는 다리와 산을 뚫은 터널이다. 이곳은 지진과  화산으로 생긴 호수가 많다. 그냥 호수가 아니라 파도가 치는 광활한 호수다. 그런데 호수를 마주 보고 있는 도시, 마을을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거의 없다. 우리의 한강에는 몇 개의 다리가 있을까? 여기는 맞은편으로 가려면 호수를 끼고 빙글빙글 몇시간 돌아야 한다.


남섬 서쪽에는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는 산맥이 압도적이다. 일명 써든 알프스다. 밀포드 사운드와  마운튼 쿡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산맥 사이에 두고 있는 테 아나우와 퀸즈타운을 오가려면 산  밑으로 빙 돌아가야 한다. 우리 같으면 효율을 위해 벌써 산맥 여기저기에 구멍을 몇 개 뚫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긴 산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냥 빙 둘러간다.


누군가의 버킷리스트인 마운트 쿡으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그 많은 사람들이 찾아 가는데 테카포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으면 바로 마운트 쿡인데 그 큰 호수를 빙글빙글 두어 시간 둘러가야 한다.


마운트 쿡에 도착해서도 또 한 번 놀란다. 남섬의 제일 높은 설산과 빙하가 있는 마운트 쿡 트래킹이 시작되는 출발점에 덜렁 목재건물 두세 개만 있다.  소박한 화장실과 백팩족을 위한 주방이 끝이다. 가벼운 요깃거리를 기대했던 우리는 결국 준비해 간 칼로리 바로 점심을 해결했다.

마운트 쿡의 시설물

정말 격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라, 뉴질랜드.

출발하기 전 읽은 제레미 리프킨의 인터뷰기사가 떠오른다. 종말 시리즈로 유명한 그는 이번엔 ' 회복의 시대 '를 들고 나왔다.


회복의 시대에는 무엇이 종말일까? 바로 효율성과 생산성의 종말이다. 인간의 필요라는 기준에 의해 겹가지는 잘라내고 최소시간과 최대결과만을 추구하던 지금 시대의 종말을 예견한다.


대신 다양성, 중복성을 통해 창의성과 연결성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지구는 지금 50%는 재야생화를 통해 회복력을 키워야 된다는 것이 요지인 듯싶다. 실제로 유엔보고서도 지구의 1/3을 재야생화  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인간위주의 효율과 생산성추구로 사람과 자연, 생물의 연결성을 끊어 버린 현대인이 이제 자연과 지구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요즘.


뉴질랜드는 미리 준비하는 것일까? 자국 내 자연을 격하게 건드리지 않으려는 그들.


이번 여행을 통해 이제 우리도 편리함 대신 다소의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함을 느낀다. 화장실에는 변냄새가 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의 주인이 우리가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낀다. 


영험하기까지 한 뉴질랜드의 수많은 트래킹 코스. 그곳의 거의 푸세식에 가까운 화장실.

지천에 형형색색으로 피어난 외래종 꽃들을 거두어 내고  이제는 뉴질랜드 본래의 황량한 초화류로 복원하려는 뉴질랜드의 재야생화 작업.


그래! 우리도 너무 멀리 가지 말자. 그러다 영 못 돌아갈지도 모른다.  

케플러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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