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속도 높이기
비포장 도로, 차 한 대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폴폴 나는 시골길을 탈탈거리는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집 앞까지 오는 버스를 놓치게 되는 날은 어린 걸음으로는 대략 40분 정도 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있다.
( 왜 이리 몽실이 언니 같은가..)
비포장이 포장도로가 되고, 느릿느릿 걷던 아이는 어느새 분주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자라면서 점점 빨리 걷고, 더 빨리 뛰지만 정작 마음의 속도와 크기는 세월의 무게 탓인지 아이의 가벼운 발걸음보다는 더 느려지고 무뎌진 것 같다.
어릴 적엔 40분이 걸리던 길을 힘들어하면서도
길가의 코스모스, 민들레를 들여다보고, 흙먼지가 올라오는 소리를 그리고 냄새를 맡았다.
작은 키의 어린이는 자연을 가득 심은 눈동자로 저 멀리 지붕이 보이는 집까지 부지런히 걸어갔다.
지금은 비교적 짧은 거리도 자동차를 끌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한다.
달리전에는 내가 매번 하던 고민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쯤이 고민이 되질 않는 것이 신기하다.
강릉해변에서 바라보던 바다와는 사뭇 다른 양양의 작은 남애바닷가.
커피 한잔이 필요해 잠깐 주차를 하고 하염없이 바라보며 네이버 지도를 찾아 숙소까지 찍어본다.
달리기를 하면서부터 생긴 버릇이다.
얼마 전 황영조 전 마라톤 선수가 영상에서 한 말 중에
" 달리기에 과학이 어디 있어? 그냥 뛰는 거야... "
고대 인류가 넓은 초원을 달리던 시절, 달리기는 선택이 아니라 삶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던 것처럼..
지금 현대도 달리기는 원초적 본능이라 생각한다.
물론 지금의 달리기는 생존 이상의 의미를 갖고 그저 빠르게 이동하는 행위를 넘어,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정리하는 의식이 되었다.
지친 일상에서 숨을 돌릴 틈이 필요할 때, 나는 본능처럼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달리기는 인간이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온 가장 오래된 위로의 형식일지도 모르겠다.
고대에도 현대에도 형태야 어떻든 살기 위해 달린다는 말 정말 딱 맞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원시의 기억을 품고 달리고 있을지도..
인류의 역사 전체가 인간 DNA에 흐르고 있기 때문일지도...
지금은 네이버지도, T맵이 있어서 헤매지 않고 원하는 장소에 도착하는데 본능적으로 뛰었던 고대인류들은 수많은 맹수들과 위험한 요소들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그때의 나라면 몇 살까지나 살다 죽었을까...
수렵채집인이었다면 분명 뛰어다니며 조개와 꽃게 잡으며 해변을 하루 종일 누볐을게 분명한 내 원초적 D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