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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에 대하여

(변명과 다짐) 2025.03.25

by 축복이야 Mar 25. 2025

지랄  

1. 명사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   



갓 대학을 들어간 어느 날, 같은 과 친구가 나에게 한마디를 내던졌다.

지랄!!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날 만큼 그때의 충격은 컸다.

그 친구는 누구보다 품성이 착하고 모범적인 아이였다.

유유상종이라고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시답잖은 얘기로 까르르 거리던 순간, 날아온 '지랄'

내 얼굴은 정색이었겠지. 아마 친구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웃으며 추임새처럼 던졌던 친구도 당황했다.

여고출신인 친구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 사이에서 흔히 쓰던 말이라고 했다.

내 친구들은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동네마다 다른 건지.

여하튼 그렇다고 했다.

'지랄'은 그렇게 나에게 각인되었다.


일상생활에서 간단한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하지만 내 주위에는 없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길렀다.

체력은 바닥나 있었지만 아이가 커가고 만나는 사람의 반경이 커지며

그에 맞는 사회생활? 을 해야만 했다.

어울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참고로 내가 욕하나 모르는 맑디 맑은 사람이라고 오해하진 말길.

나이에 비해  순진하긴 하다. 20살 즈음 백치미가 둑둑 떨어진다는 얘기도 들었으니.

분명 욕인데 너무나 재밌고 구수하게 하는 K가 있다.

그녀의 그런 재능과 입담은 최고였고 부럽기까지 했다.

나는 쉽게 동화되는 사람이므로 살짝살짝 혼잣말로 써보기도 했는데, 이상하네.

발음이 왜 그리도 센지. K가 할 땐 이렇지 않던데.

내가 뱉은 건 정말 욕 같아서 내가 흠칫 놀라기도 했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튼 거친 것들은 나도 모르게 새어나갔다.

특히 한 살 차이 남편에게 장난치듯 하면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어서, 종종 썼다.

그래봐야. 지랄, 미친, 요정도였지만 말이다.

(이 부분에서도 어떤 이는 '에게, 뭐야?' 하기 어떤 이는 "어머나!!" 놀랄지도 모르지.)

나름 나만의 작은 일탈 같은 거였다.

핑계를 대자면 육아에 지치고 삶에 찌들고

무엇보다 유치하게 거칠어 보이고 싶거나 아주 성격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때

지랄을 썼다.  '지랄한다!!'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그 말, 지랄한다를

급기야 나의 아이들에게도 썼다.

"어우. 지랄지랄. 증~말!!"

"엄마, 그거 욕 아니야?"

"야아~ 엄마가 쓰면 그건 욕이 아니고, 그냥 말이야. 네가 말을 안 들어서 그러지."

쑥스럽게 말하다가 내가 생각해도 좀 민망해지면 버럭 화를 냈다.

"엄마 나이 마흔몇 살에 이것도 못 써?!! 욕 아니고 그냥 추임새야. 근데 너네들은 쓰면 안 돼.

너네들도 마흔몇 살 되면 써. 엄마도 그전에는 안 썼으니까."

유치한 말을 늘어놓았다.

참, 지랄도 풍년이다.


작년은 지랄이 정말 풍년일 때였다.

마음이 흉악할 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이면 나와 다른 생각이나 나의 방식과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그러려니, 얼굴을 대면하는 그 상황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라도, 그냥 그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 걸로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면 조용히 혼자 멀어졌지.

하지만 작년은 아니었다.

쟤는 도대체 왜 저래? 왜 선을 넘지? 예의가 왜 이렇게 없는 거야?

자기 생각밖에는 안 하는 거래? 너무 싫다! 아우, 진짜 짜증 나!!

내 기준으로 판단해 버리고 삑삑삑!!

세 번이나 선을 넘었으니 너랑은 이제 끝이야.

관계를 끝내버리곤 후회조차 없었고 오히려 나는 스스로 잘했다 여겼다.

교만함의 극치였다.

내 입에서는 가시 돋치고 짜증스럽고 향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계속 새어나갔다.

그 말들은 공기를 떠돌아다녔다. 먼지도 붙이고 때도 묻혀서 둥둥 떠다녔다.


그 떠다니던 것들이 결국은 내게로, 모두 내게로 돌아왔다.

내 피부에 콕콕 박혀 찌르고 할퀴어서 더 깊숙이 몸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지랄이 지랄을 부른 것이다.

내가 무심코 내뱉었던 것들이 이제야  지랄이었음을 안다.

멍청하게 그렇게 되돌려 받고 서야 깨닫게 되는 인간이라니.

이제 지랄하지 말고,

올바르고 곧고 깨끗하고 바르게, 그래야 할 테지. 그래야 하지!!

지랄지랄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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