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주안 Aug 25. 2023

어제 편지


  하루 내내 비가 왔습니다. 매일 산책을 하던 친구는 우산을 든 채 아랑곳없이 산책을 나갔고, 저는 빨래를 조금 미루어야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창밖을 오래 보았습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보면 비는 여리게 내리다 거세게 쏟아부었습니다. 빗방울들이 창에, 지붕에 부서지는 소리들이 문득 파도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리게 밀려오다 빛을 내며 부서지는, 8월보다는 11월 즈음의 바다 같았습니다. 낙엽이 완연할 즈음 바다를 찾으면 파도는 8월의 비와 닮은 모양을 비칠 것입니다. 세차게 부서지지만 거칠지 않은, 사그라들듯 밀려드는 바다를 보면 이 즈음을 기억해야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내내 틀어박혀 쓰고 읽기만 하는 나의 삶은 요 즈음 자주 바빴습니다. 엊그제는 서울에서 친구가 찾아왔고, 오늘은 친밀한 사람들이 집을 찾아와 잠시 저녁과 밤을 밝혀 주었습니다. 웃고 떠들고 장난을 치다가, 사람은 정말 사람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마음 깊은 곳의 외로움 같은 것들도 얼핏 모습을 비쳐 저는 잠시 사람들이 꼭 섬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안개 가득한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에는 각자, 멀리 외로워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종종 맑은 날에는 멀리 비쳐 보이는 모습이 마냥 빛나고 좋게만 보이는 것도 그렇습니다. 또다시 안개가 내리면 각자는 각자의 감정들을 안고 먼 삶을 지내겠지요. 찾아온 이들을 마중하며, 맑은 날들이 종종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즘의 삶은 그랬습니다.     


  아무리 맑아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오늘은 그이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많지 않은 맑은 날에 먼 바다만을 보고 있으면 주변의 아름다움을 놓치게 되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오늘은 왠지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 내 마음에 사는 그이들도 이해해 줄 것만 같습니다.     


  잠깐 이야기해보자면, 요즘은 그이들을 마음으로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는 중입니다. 처음으로 수영장에 발을 담궈보는 아이의 심정으로, 발끝을, 종아리를, 허리춤과 어깨 끝을 차례로 잠기어보는 마음으로 한 사람씩을 떠나보내려 합니다. 멀리서 손을 흔들기도 하고, 미소를 머금으며 웃어보이기도 하면서요. 아쉽고 서운해도 떠나보내면 새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멀리서, 때로는 아주 가까이에서 찾아올 것입니다. 

    

  의도치 않게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아프지 말고, 아픈 사람을 오래 잡고 있지도 말고, 그저 당신이 조금만 더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이것은 충고도 조언도 아니고, 그저 제 바람입니다. 당신이 잘 지내길 바랍니다.

이전 08화 당신의 우울은 감정이라기보다 하나의 생활 같은 것이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