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겨울이 끝나가는 밤. 계동리의 창가에 걸린 불빛이 살짝 길어졌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바람의 결이 달라지고 있었다.
계동리는 여전히 사람들을 맞이하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오늘도, 주인장은 바 뒤에서 조용히 잔을 닦으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며 최준혁이 들어왔다.
그는 평소처럼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결심이 선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바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진한 위스키로 주세요.”
주인장은 잔에 천천히 위스키를 따르며 물었다.
“이제 퇴사까지 얼마 안 남았죠?”
준혁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요.”
그는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막상 퇴사를 앞두니 후련하기도 한데, 동시에 불안하기도 하네요.”
주인장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은 다 그렇죠.”
준혁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그런데, 막상 그 길이 정해진 게 아니라는 게… 조금 무섭네요.”
주인장은 천천히 위스키 병을 닦으며 말했다.
“길이 정해져 있어서 가는 게 아니라,
걸어가면서 길이 만들어지는 거 아닐까요?”
그 말에 준혁은 조용히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좋은 말이네요. 그러면, 한 잔 더 주세요.”
그날 밤, 그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조금씩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며 김봉준, 임수정, 유진수가 들어왔다.
그들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주인장이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오늘은 표정이 좋아 보이네요.”
봉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었거든요.”
진수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오늘, 한 환자가 완치 판정을 받았어요.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던 분이라 더 기뻤어요.”
수정도 기분 좋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가 되면, 늘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환자가 회복하는 걸 보면…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싶어요.”
주인장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축하주로 한 잔 하셔야겠네요.”
그들은 조용히 술잔을 부딪쳤다.
오늘만큼은, 기쁜 마음으로 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늦은 밤, 문이 열리며 최소현이 들어왔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잠시 후, 김민석이 기타를 들고 들어왔다.
그는 그녀를 발견하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도 오셨네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이곳이 제 단골 가게가 됐나 봐요.”
김민석은 기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좋은 음악을 들으러 오는 것도, 좋은 이유가 되겠죠.”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봄이 오길 기다리는 노래를 들려주세요.”
김민석은 살짝 웃으며 기타를 튕기기 시작했다.
“겨울의 끝에서, 우리는 같은 공간에 머물러
어느 날 봄이 올 거라는 걸 믿고 있다.”
그녀는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겨울이었지만, 언젠가 봄은 올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곳에서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날 밤, 한 손님이 바 한쪽에 비치된 ‘계동리 사람들’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한 줄을 남겼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길 기다린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겠지.”
주인장은 노트를 덮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겨울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봄이 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동리는 언제나처럼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