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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계동리

23화. 변하는 계절, 변하지 않는 온기

by 나바드

바람이 살짝 풀리기 시작한 늦겨울 밤.
계동리의 창가에는 여전히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가게 안은 낮게 깔린 재즈 선율과 은은한 위스키 향으로 가득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누군가는 이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인장은 조용히 바 뒤에서 잔을 닦으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1. 퇴직을 앞둔 가장, 그리고 새로운 고민

문이 열리며 윤석진이 들어왔다.
그는 늘 앉던 창가 자리에 앉아 조용히 맥주를 주문했다.

주인장이 잔을 따라주며 물었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나요?”


윤석진은 가만히 맥주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이제 곧 퇴직이네요.”


주인장은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오랫동안 일만 하다 보니,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그의 말에 주인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지금까지는 가족을 위해 살아오셨다면,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윤석진은 그 말을 곱씹으며 가만히 웃었다.


“자신을 위해서라… 그 말, 괜찮네요.”


그는 조용히 맥주를 기울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마음속에는 작은 온기가 퍼지는 듯했다.


2. 서울대병원의 의사들과 간호사들, 그리고 지친 하루

문이 다시 열리며 김봉준, 임수정, 유진수가 들어왔다.
그들은 피곤한 얼굴로 익숙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조금 늦었네요.”


주인장이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봉준이 깊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환자가 많았어요.
그리고 오늘… 안타까운 일이 있었죠.”


그의 말에 수정과 진수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최선을 다했지만,

때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날은 참 힘들어요.”


주인장은 말없이 따뜻한 차 한 잔을 그들 앞에 놓았다.


“힘든 날엔, 몸도 마음도 따뜻해야 하니까요.”


그들은 조용히 차를 마시며, 오늘 하루를 가만히 정리했다.

말이 많지 않아도, 이 공간이 주는 온기는 충분했다.


3. 김민석과 최소현, 가까워지는 거리

늦은 밤, 문이 열리며 최소현이 들어왔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잠시 후, 김민석이 기타를 들고 들어왔다.
그는 그녀를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오늘도 오셨네요.”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곳이 편해서요.”


김민석은 기타를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새로운 노래를 들려드릴까요?”


최소현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오늘은 어떤 곡이죠?”


김민석은 기타를 가볍게 튕기며 노래를 시작했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새로운 계절이 찾아와도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이야기로 머물고 있겠지.”


최소현은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노래를 들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들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4. ‘계동리 사람들’ 노트에 남겨진 흔적

그날 밤, 한 손님이 바 한쪽에 비치된 ‘계동리 사람들’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한 줄을 남겼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겠지.
변하는 계절 속에서도,
이곳의 온기는 변하지 않길 바라며.”


주인장은 노트를 덮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계동리는 여전히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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