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덕후가 되는 아내

by 소극적인숙



한동안 뜸했었다.

'내가 이 글을 쓰는게 맞을까?'

내적 갈등이 많이 생겼었다.


소방관 남편을 두면서 옆에서 살뜰히 챙기지 못했던 내 자신이 떠올랐다.

그래서 글을 점점 쓰면서


'왜 그랬을까. 말을 좀 더 상냥하게 할 걸.'

'그런데, 여보는 소방관이잖아.'

'집에서 왜 힘든걸 다 풀어내는거야.'

'나는 감정노동자도 아니고, 아이들의 엄마이자, 아내란 말이야.'


힘든 남편 옆에서 존중받고 싶었다.

가끔 내 자신이 비겁하게 보이기도 했고, 홀로 자책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P소방과의 아내입니다>를 더 이상 연재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뭘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나는 캐릭터에 참 약한 편인데, 소방관 캐릭터가 나오는 굿즈나 기념품을 보면...

사실 마음이 사르륵 녹고 무장해제가 된다.


그래서 퇴근길에 남편이 회사에서 선물 받은 기념품 또는 굿즈를 선물로 내게 건네주면,


"고마워. 이거 너무 예쁘다."

"나 써도 돼?"


바로 쓱 가져갔다.



예전에는 주황색이 너무 튀고, 촌스럽다고 싫어하는 소방관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남편도 출근길에 활동복이 튀어서 위에 가벼운 외투나 겉옷을 여벌로 챙겨 입는다.

사람들의 시선도 부끄럽고, 왠지 모르게 이 색상이 주는 무게감, 압박감이 있어 그런듯 싶었다.


그래도 아이폰의 영포티 상징인 주황색.

웨이팅 해도 살 수 없는 에르메스 브랜드의 주황색.


여기저기 끼워 맞추면 괜찮고 산뜻한 색이기도 하다.

옛날 압구정 오렌지족이 생각났다.


1990년매 말에서 2000년 초반, 밀레니엄 시대까지 온 때.

미국 유학생, 그들만의 트렌드를 펼쳤던 신세대 문화를 대표하던 부류.


자연스럽게 여러가지가 연상되는 주황색의 이미지들.

가끔 보면 좀 예뻐보이기도 했다.


기념품 선물 받은 "일구"볼펜이다.

"119"가 연상되는 이름이다.


소방관 아내가 되었지만,

어쩌다보니 소방관 덕후가 되어가는 것 같다.


요즘 이 캐릭터가 너무 좋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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