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타일 Feb 25. 2024

다정한 나의 자기와 케이크.

내가 연애라니…. 연애라니…. 정말 살 빼기를 잘한 거 같다.

살면서 처음 받은 고백이자 처음 하는 연애였다.

운동도 잘하고, 근육질의 남자가 내게 사귀자고 하다니…

솔직히 그에게 정말 고마웠다. 고마움을 넘어 감사하기까지 했다.


그는 내게 정말 다정했다.

매일 아침, 내게 모닝콜을 해주고, 출근 전 함께 헬스장을 갔다.

나는 그가 가르쳐주는 공복 유산소를 한 뒤, 출근했다.

그리고 퇴근 후, 저녁에 다시 헬스장에서 만나서 함께 근력운동을 했다.

헬스장이 쉬는 주말이나 공휴일은 손을 잡고, 등산했다.

가끔 운동이 아닌 다른 데이트도 하고 싶었지만, 그는 운동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비 오는 날도, 역대급 한파에도, 그는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근육질의 다정한 나의 자기가 운동하고 싶다면 나도 따르는 수밖에….

그때, 나는 그가 좋으면 나도 다 좋았다.


우리는 몇 달 동안 거의 매일 헬스장 데이트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가 더 좋아졌다.

친구도 없이 외롭던 내 인생에 그는 고마운 존재였다.

나는 정말 행복했다.

아주 살짝, 걸리는 몇 가지만 빼고…



그는 내가 먹는 음식에 민감했다.

다이어트를 하며 내게 가장 중요한 날은 치팅데이였다.

매주 일요일은 내 치팅데이였다.

운동이 힘들 때마다, 가끔 폭식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진정시킨 건 다가오는 일요일이었다.

'이번 주 치팅은 치킨 먹어야지.'

나는 일주일 내내 일요일 점심을 생각하며 버텼다.

그리고 내일로 다가온 치팅데이에 설레서 그에게 말했다.

"내일 뭐 먹지? 아귀찜도 먹고 싶고, 매운 엽기떡볶이도 끌린다."

"아…. 내일도 뭐 먹을 거야? 지난주도 치팅데이 했잖아. 운동도 못 가는 날인데…."

"치팅데이는 매주 오는 거야. 내가 일주일 내내 기다렸는데!!"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설득했다.

"치팅데이 매주 하면 운동한 3일을 망치는 셈이야. 잘 생각해 봐"

나의 작고 소중한 1끼가 열심히 운동한 3일을 망친다니….

하지만 일주일 동안 기다린 소중한 1끼인데….

나는 다정하지만, 단호한 그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복잡한 마음에 식욕은 사라졌고, 나는 다음 날, 치팅데이 대신 1일 물 단식을 했다.

선물 같은 하루가 사라지니 하루 종일 나는 우울했다.

우울한 나와 달리 내 남자친구는 1일 단식은 독소 배출에 좋다며 나를 칭찬했다.



사라진 치팅데이는 속상했지만, 그래도 내 기분은 금세 풀렸다.

왜냐하면 곧 그의 생일이었다.

그와 사귄 뒤, 처음 맞이하는.

나는 그동안 그와 가고 싶던 레스토랑과 예쁜 카페를 예약했다.

그리고 그에게 줄 특별한 케이크를 준비했다.

서른 살이 되는 그를 위해, 달걀 한 판 모양 케이크를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생일날 아침, 헬스장에서 만나 그에게 케이크와 선물을 건넸다.

집에서 케이크와 선물을 열어보고, 기뻐할 그를 상상하니 행복했다.

그런데 그는 "고맙다"라는 말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내심 서운한 나는 먼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케이크 봤어? 어때?"

"어어. 고마워. 오늘 바빠서 미안해."

"자기 퇴근하고, 저녁 먹으면서 같이 초 불까?"

"케이크?? 사람들 먹었을걸?"

"응??. 다른 사람들이?"


다정한 목소리로 그가 내게 말했다.

"나는 어차피 안 먹잖아. 그래서 회사 사람들 줬어.

자기야. 케이크 칼로리도 높고, 다 포화지방이야."


나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이상하다. 그는 다정했는데 뭔가 기분이 안 좋다.

이전 07화 하루 두 번, 헬스장에 가면 생기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