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가본드 Jun 11. 2024

나의 등굣길, 나의 하굣길

가 보지 못한 전시, <파리의 벨 에포크_Michal Delacroix>

넌 가장 많이 써 본 글이 뭐야?


이걸 저에게 물은 사람은 없어요. 만약 누가 물으면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하겠죠. 대나무숲에 자문자답으로 고백하자면 일기는 아니에요. 편지도 아니에요. 시도 소설도 아니에요. 그 답은


반성문.




걸어서 30분 정도이던 등굣길은 아침마다 새롭게 즐거운 길이었죠. 고양이가 화단 안쪽에 아기를 낳은 귀여운 길일 때도 있고, 개미들이 자기 몸무게의 몇십 배나 되는 빵조각을 힘을 합쳐 옮기는 활력 넘치는 길일 때도 있었어요. 왕사마귀가 자신보다 큰 도마뱀을 두 앞다리로 제압하는 보고도 믿기 힘든 길일 때도 있었고, 저멀리 무지개가 뜨면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 혼자 한참을 서 있고 싶은 소중한 길일 때도 있었어요. 길가에 고인 물속에는 또 하나의 하늘이 있었고, 어떨 때는 물 위에 기름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했죠.


대개 그런 것들은 길의 중심에 있지 않아요. 그래서 늘 길가를 따라 걷죠. 뭔가의 중심에 선다는 게 어떤 것의 중심이 되진 못해요. 다만 그러다 개구멍으로 쑥 들어갈 때도 있고 툭하면 길을 잃어버리는 주제에 제가 할 말은 아니었을 뿐이죠. 그런데 학교에 가다 길 잃어버리고 그날 학교 못 간 적 있는 분 혹시 계신가요? 한번은 진짜 그랬다가 다음날 왜 안 왔냐는 말에 "늦어서요" 이랬는데 그건 사실 정직한 대답은 아니었죠.


늦어요. 혼나요. 이유를 말해요. 말할수록 혼난다는 사실만 학습했어요. 선생님은 지각 반성문을 쓰라고 하셨죠. 이것도 쓰다 보니 지겨워서 그냥 몸으로 때웠음 했는데 맨날 반성문만 쓰라네요. 제가 썼던 반성문은 총 수백 편에 달했을 것으로 짐작돼요. 에이, 뻥이지? 아니. 진짜예요. 반성문을 학교에서만 쓴 게 아니었거든요.


왜?


전 등굣길만 말했어요. 하굣길은 아직 얘기 꺼내지도 않았어요. 하굣길에 비하면 등굣길은 양반이었죠. 등굣길은 몇 시까지 와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이라도 있었지 하굣길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와'라는 훈시적 규정만 있었으니까.


학교가 끝나면 텅 빈 운동장의 충무공상 앞에 서서 그의 생애와 공적을 읽고 또 읽다가 가슴이 뜨거워져서 가방끈 썩는 줄도 모르고, 지금은 없어진 초저녁 국기강하식 때는 노을빛 고요 속에 퍼지는 애국가를 듣다 형편없이 울어 버린 적도 있어요. 아저씨가 핫도그를 기름에 보글보글 튀기는 모습, 능숙한 솜씨로 국자에서 달고나를 탄생시키는 모습을 해 떨어질 때까지 구경하는 걸로도 하굣길은 달고 짜고 맛있는 길이었지요. 하루는 커다란 나뭇잎이 벌레에 파 먹힌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벌레 먹은 나뭇잎을 감상하다 해가 메롱 떨어지고 날이 어두워져 나뭇잎의 구멍이 보이지 않자 이크 싶어 황급히 집에 뛰어오기도 했죠.

지금도 저는 이게 예쁜데,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도대체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냣!?


대답할 수 없었죠. 이유가 있긴 했지만 그건 저한테나 이유지 어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닌 걸 그때도 알았거든요. 묵비권을 행사하여 '나 죽었소'가 되고 오락실이나 만화방에 있다 온 걸로 오해받기 일쑤였어요. 아닌데! 이것저것 느끼며 내 속도로 왔을 뿐인데! 무죄추정의 원칙상 유죄가 객관적으로 입증될 때까진 무죄로 보는데 어째서 저는 무죄가 객관적으로 입증될 때까진 유죄가 기본값이란 말인가요? 분하다, 에잇! (꽝)


그렇게 학교에선 학교대로, 집에선 집대로 반성문을 써도 약발이 며칠 못 갔어요. “잡아 가둬야 정신을 차리겠냐?”라는 말을 학교에서, 또 집에서 귀 아프도록 들으며 대충 잡아도 수백 편의 반성문을 썼지요. 반성문마다 '항상 늦는 나는...'이라는 말이 들어갔지만 ‘항상’도 ‘늦는’도 제 기준은 아니었어요. 그건 어른의 기준이고 세상의 기준이었을 뿐. 마음으로 반성하지 않으면서 반성문만 죽어라 써 댔으니 몇 년을 글로 '척'만 한 셈이죠.


저는 지금도 글 잘 쓰는 사람 축에 들지는 못하지만, 원래는 받아쓰기도 못 하던 찐따가 수백 편에 달하는 반성문을 쓰다 졸지에 글이 늘어 버리고(?) 지금 그나마 '글 같은 것'이라도 쓸 수 있게 된 거였죠. 하지만 하나도 제 마음에서 우러나는 글이 아니었어요. 혹시 여기서 '옥의 티'를 떠올릴 분이 계실지 모르나 그렇게 되면 마치 제가 옥이란 말 같아서 안 맞고, 마음에도 없는 글 주야장천 쓰다가 이렇게라도 됐으니 티의 옥이죠. 옥의 티가 아니라.

난 아냐, 이 정도는 돼야 옥이잖아 (경향신문 2015.10.9.)

지금은 다행히 그때보단 사회화가 되어서 직장에 지각하는 일은 없어요. 지각은커녕 거의 부서에서 제일 먼저 나와요. 세상은 이런 모습을 더 좋아하죠. 대신 주변의 것을 발견하지 못해요. 정확히 언제부터인진 모르겠는데, 전과는 다르게 그냥 앞만 보고 걷는 게 습관이 되어 있죠. 누군가는 오늘 찾아낸 예쁜 것을 틈만 나면 보여주는데 저도 그러고 싶지만 눈 씻고 보아도 그게 없어요. 아니, 없는 게 아니라 발견을 못 한 거겠죠. 저만 외계에서 사는 것도 아닌 걸요.


사람이 걷는 모습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줘요. 걷는 게 그래선지 사는 것도 그렇게 되어 있네요. 길 언저리의 것들을 살피지 못해요. 원래 이렇게 디테일이 떨어지지는 않았는데, 그때의 저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때의 저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정확히는 그러면 큰일나지만), 지금의 저로 영원히 남고 싶지도 않아요.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 그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고 싶을 뿐이에요.


삶은 쉼표와 마침표가 모스 부호처럼 불규칙하게 연속된 배열이죠. 마침표보다 쉼표가 더 많아요. 가끔 찾아올 마침표 찍기의 순간을 위해 사색과 관찰의 쉼표가 무수히 필요해요. 사색의 쉼표는 사람을 깊어지게 하죠. 놓치고 사는 것을 발견하게 해 주는 시간이며, 나를 좋은 것으로 채워 가는 숙성의 시간이니까.


시골길을 걸었어요. 차로 빠르게 갈 때는 목적지만 보였는데, 천천히 걸어가니 많은 것들이 보였죠. 다른 이들의 감정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나를 타자화해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멈추고 싶을 때 멈춰 서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삶을 나중에라도 찾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은 빠른 결정의 마침표 찍기를 요구하지요. 카톡으로 저를 압박해요. 전화로 당장 선택할 것을 강요해요. 늘 뭔가 보여주고 만들어 내놓으라 해요. 끊임없이 끌려다니며 마침표만 찍고 다니면 남는 거라곤 이제까지 뭘 하며 살았나 하는 후회와 한숨뿐일 테죠.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제가 할 줄 아는 게 많았다면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곳곳에서 마침표만 찍고 살아야 했을 텐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니 감사할 따름이죠.

가 보지 못한 전시, <파리의 벨 에포크_Michel Delacroix>

마침표만으로 삶을 가득 채우고 싶지 않아요. 어떨 때는 꼭 찍어야만 하는 마침표를 더 예쁘게 찍기 위해서라도 보통 때는 사색의 쉼표를 많이 찍으며 살아가고 싶어요. 삶에서 결정의 마침표가 매 순간 너무 많아 후회가 된다면 이제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사색의 쉼표를 찍으며 행복을 그려가는 인생의 화가가 되고 싶어요. 누구한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것만 그렇다면, 얼마든지 늦어도 좋으니까요.

이전 11화 힘들어 죽겠으면, 간식이나 먹어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