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레인이 덤프트럭 위로 흙을 부었다
솟아오른 흙더미를 움츠린 삽날로 평평하게 고른다
점포정리 중인 음반 가게, 주인은 점심을 먹는 중이다
정가에서 400원이나 깎아주며 락앤락을 잠그던 그는 별거 아니라면서 갑자기 근처 대형 마트를 헐값에 인수한 대기업의 횡포를 거대한 음모처럼 털어놓았다
딸깍,
유리문을 밀고 나오자 포클레인이 파놓은 구멍 속으로
2미터 길이의 철근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브렌타노와 헌트, 언더우드와 이랜드가 나란히 마주 보는 사거리로 버스는 지나갔다
다음 날, 음반 가게 앞을 지날 때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포클레인이 재생되고 있었다
덤프트럭 옆에 교체용 삽날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그 장면을 기억하기 위해 유리문을 밀고 나온 것처럼
뜨거운 물을 붓는 주인과 눈이 마주친다
카운터 위에 은박지와 컵라면이 보인다
밥을 먹고 오겠다고 손짓으로 말하고는 근처 카페로 가서
커피를 식히며 나의 포클레인은 계속된다
“점포정리에 직면한 주인의 사정일랑
너저분한 점심처럼 어김없이 반복될 것이다
오직 하나뿐인 소묘를 위한…“
일상에 대한 강박과 위악적 포즈 그리고 꾸며낸 미학으로 자본주의의 심장을 겨냥한 스케치를 강행하던 중,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딸깍,
한 블록 뒤 먹자골목에 들어선 나는 육개장 뼈해장국 칼국수 설렁탕과 분식집이 늘어선 아름다운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부르는 속된 별칭을 생각하며 문득 덤프트럭이 흙을 내려놓는 최종 목적지가 어디일까 궁금해진다
보람찬 하루를 마친 덤프트럭 운전기사가 저녁으로 먹을 메뉴가 먹고 싶었다
김이 오르는 대용량 스테인리스 육수통에서 국자가 바쁘게 국물을 퍼 담는다
멜라민 그릇에는 진한 국물과 시래기와 건더기가 들어 있다
딸깍,
침을 삼키는 순간
나의 포클레인은 나의 국자로 대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