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주둥이
굴곡진 주름 사이
뚜껑이 들어 있다
뚜껑 안 쪽에도 비슷한 홈이 있어
주름을 사이에 두고 뚜껑의 안과 밖이 있다
뚜껑을 사이에 두고 주름의 안과 밖이 있다
완강한 저항 끝에 잊히는 것이
열리고 난 뚜껑이 할 수 있는 거의 전부인가
뚜껑은 쉽게 둥글게 굴러간다
뚜껑이 사라져 버린 문지방에선 매끄러운 윤기마저 돈다
뚜껑이 붙어있다면 아직은 다행도 불행도 아닌 것
뚜껑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뚜껑의 부존재를 바라는 환상통을 겪는 중이다
악력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손아귀에는 얼얼한 뚜껑의 환영이 고여있다
햇볕 아래 방치된 오래된 용기와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뚜껑
쉬 폭발할 것처럼 내내 잠재하는 것들을
우리는 기억이라 명명하지만
이제 막 뚜껑을 박차고 나오는 것들은 쉽게 부패하기 시작했다
뚜껑이 사라진 유리병 입구에는
뚜껑의 흔적이 녹슬어 붙어있다
오래전 송골송골 맺혔던 물방울이
선을 이루며 내려와 병 밑동은 젖어 있다
천천히 먼지가 바닥부터 차오른다
아직도 나는 뚜껑을 쥐고 돌리고 있다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 비틀어도 잘 열리지 않는
당혹스러운 기억을 나는 갖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돌려서 갑자기 열리는 지점에서
망각은 시작된다
뚜껑은 스스로 망각하고 싶은 고집스러운 기억이다
마침내 뚜껑이 열리면
끈끈함이 묻어 있는 더럽고 뒤틀린
무수히 많은 뚜껑들이 굴러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