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박물관
여고 시절, 키가 173cm 정도에 주먹만 한 얼굴과 큰 눈을 가진 예쁘고 털털한 성격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인기가 많아서 3년 내내 학급 반장을 했고 여친들은 팬심을 가지고 그 친구와 함께 하고 싶어 했다. 인근 남자고등학교에서 방과 후에 그 친구를 보려고 오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근데 그 친구는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공부도 잘했었지만 열정적으로 하진 않았던 것 같다. 털털한 성격만큼이나 무언가 목표를 성취하려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 친구를 보면서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예쁜 친구가 성취지향적이어서 공부도 잘하고 남친도 많다면
너무 불공평하니까
이집트 박물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 친구 생각이 났다. 이렇게 위대한 유산과 역사라는 선조들의 헤리티지 (Heritage)를 후손들은 집을 짓고 길을 닦기 위해 떼어내고 부수었으니.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2003년 이집트 박물관에는 전시관뿐 아니라 복도 곳곳에 겹겹이 쌓아 놓은 유물과 보석, 왕들의 유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벽화와 조각상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어서 방문객들이 거침없이 손으로 만지고 기대고, 내 눈에도 걱정스러웠다. 햇빛이 비추지 않는 곳은 조명도 부족하고 음산해서 유물들이 홀대를 받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긴 왕가의 계곡에서 발굴된 벽화 조각들, 부서진 조각상들과 소장품들이 워낙 많은데 그 모두를 박물관에 가져다 전시할 수도 보관할 수도 없었을 터이니 우선순위에 따라 구분해야 했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소중한지 모르는 것일까. 하나님은 공평하시네.
안타깝게도, 1902년에 개관한 이집트 박물관의 대다수 전시품들이 2021년 4월에 오픈한 국립문명박물관과 2023년 오픈 예정이었던 그랜드 이집트 뮤지엄으로 대거 이동을 한 상태였다. 돌아보는 박물관 곳곳이 빈자리로 남겨져 20년 전 어수선함에 안타까웠던 그 기억은 추억으로 남겨두어야 했다. 어떤 이유인지 그랜드 뮤지엄은 아직 오픈 전이고 이집트 박물관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투탕카멘 왕의 유품들은 남겨져 있었다.
여전히 10만 점의 소장품이 있고 해마다 15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 중 하나인 이집트 박물관 (The Egyptian Museum)을 2시간 안에 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하나하나 천천히 보면서 사진도 찍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겨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런 때는 정말 패키지 투어가 싫다. 돌아와서 YouTube에서 C채널 영상을 찾아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20년 전에 내가 다시 여기 올 지 몰랐으니, 또 알아? 살다 보면 다시 올지?"
기자 지역에는 유명한 3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다. 쿠푸와-카프레왕-맨카호레왕의 피라미드인데 쉽게 할아버지-아버지-아들의 무덤이다. 피라미드 가장 꼭대기에 아래 있는 삼각형 피라미드온이 놓여 있었다. 황금을 입힌 피라미드온에 파라오의 절대적 권력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기자에 있는 스핑크스는 카프레왕의 얼굴을 하고 있다. 왕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만들어진 석상은 왼쪽 다리가 앞으로 나와 있고 사후에 제작된 석상은 다리가 일자로 모아져 있다고 한다.
아쉬움을 안고 나오니 역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소설 '람세스 2세'를 읽으면서 이집트 역사에 매료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 옛날 찬란했던 이집트 문명이 박물관에서 관광객들의 즐거움으로 남겨져 있는 것을 보면 영원한 것은 없음을 실감한다. 돌고 도는 역사의 바퀴. 세상은 그래서 공평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