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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뒷면 1

아름세계 2025년 3월호 ㅣ 연작 소설 ㅣ 강아름

by 강아름 Mar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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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변기


 "4F 로비 소변기 1번". 내가 서 있는 곳, 즉 나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가리키는 호칭에 끌려다니며 산다.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아내, 학생, 취준생, 팀장, 회장 등 각각의 호칭엔 역할이 부여된다. 그리고 정해진 역할에 따라 사고하고 움직이며 사회를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에서 더 존중받는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 충분히 빛을 받으며 광합성을 하고, 튼튼한 자양분을 쌓아나간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너무 끔찍해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들이 사는 곳, 위에서 빛을 받는 사람들 아래로 드리워진 컴컴한 그림자 속. 그 가운데에도 틈이 있어 빛이 희망처럼 내려오는데,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이름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은 정해진 규칙을 어기고 남이 받아야 할 빛을 빼앗는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대가로 정해진 기간 자유를 빼앗긴다. 교도소라는 곳에 갇혀 같은 옷을 입고 정해진 행동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은 '수용자'로 불린다. 나 또한 그림자 속에서 그들과 생활하고 있다. 그들과 같은 곳을 걷고 같이 숨을 쉬는 나는 '교도관'으로 불린다. 가끔은 나도 징역을 사는 것이 아닌가 착각할 때가 있다. 금요일에 퇴근할 때면, 마치 출소하는 수용자처럼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정말 자유로운 것일까.


 그래서인지 '4F 로비 소변기 1번'이라는 삭막한 명칭에 괜스레 마음이 답답해졌나 보다. 많이 참았던 탓에 아직도 끊지 못하고 떨어지는 오줌만을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이 매일 오줌을 쏘아 댈 텐데도 소변기는 참 밝고 하얗다. 항상 위에서 아래로만 향하는 더러운 물을 변기 구멍 아래에서 묵묵히 받아주기 때문이다. 구멍 속 밑바닥의 바닥. 일말의 햇빛도 닿지 못하는 어둠 속 어둠. 그곳에도 꿈꾸는 아이들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을까. 그곳에서 이루지 못할 목표와 보이지 않는 정의로 스스로 손목을 긋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떨어지는 오줌이 가뭄의 단비라도 되는 것처럼 기우제를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자. 난 그들과 달라. <답답한 새끼들…>. 잔뇨를 거만하게 털어내며 생각한다. 손을 씻고, 시끄럽기만 한 손 건조기에 손을 적당히 말린다. 영화 티켓의 시작 시각에서 이미 5분이 지나버렸다. 실제로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광고가 10분 정도 나온다는 것을 알지만, 시간 약속을 끔찍이도 지키는 나는 어느새 초조한 초침이 되어버린다. 손의 남은 물기를 털며 바삐 걸음을 옮기다, 상영관 입구에서 문지기를 만난다. 표를 꺼내어 보여준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나는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고,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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