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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탈리스트

일개 관람자의 시각

by 별사탕

감독 브레이디 코베이

각본 브레이디 코베이 모나 파스트볼

제작 트레버 매슈스 닉 고든 브라이언 영 앤드루 모리슨 앤드루 로런 D. J. 구겐하임 브레이디 코베이

출연 에이드리언 브로디 (라슬로 토트) 펄리시티 존스 (에르제베트 토트) 가이 피어스 (해리슨 리 밴뷰런) 래피 캐시디(조피어) 래피 캐시디(조피어의 딸) 아리안 라베드(성인 조피어) 스테이시 마틴 (매기 밴뷰런) 알레산드로 니볼라(아틸라) 이자크 드 방콜레(고든)

촬영 롤 크롤리

편집 다비드 얀초

음악 대니얼 블럼버그

제작사 앤드류 로렌 프로덕션스 옐로우 베어 브룩스트리트 픽처스 인테이크 필름스 킬러 필름스 프로타고니스트 픽처스 쓰리 식스 제로 그룹 프로톤 시네마

개봉일 2025년 2월 12일(대한민국)

러닝타임 215분

골든글러브 감독 작품 남주 3관왕


이 영화는 예술영화도 아니고, 예술가 영화도 아니고, 유대인 박해로 인한 고통을 보여주는 고발 영화도 아니다. 단지 하나, 정치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정치 선전영화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가 영화를 체제선전의 도구로 활용하듯 이 영화가 그렇다.


3시간 35분(인터미션 15분)의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스토리로 일관한다.


비하인드로 깔고 있는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생존의 고통으로 묘사한다.


건축이라는 종합예술의 특징을 바우하우스 개념을 가져와서 완성된 예술미를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했는데, 여기에 사용된 건축의 지식이라는 것이 일천하기 짝이 없다.


이 영화가 왜,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사용되었는가, 하면. 최초 장면을 통해 생존 유대인 라슬로 토트가 미국으로 전쟁피해자, 전상 전몰 유대인으로서 난민 자격을 가지고 미국에 정착하는 서막 장면을 보여준다. 실제로 2차 대전 후 미국이 가장 많은 유대인을 받아들인 나라이기도했다.

건축가였던 라슬로가 정착하는 과정을 보면, 사촌이 운영하는 가구점 점원 겸 가구디자이너, 인테리어업자, 석탄 공장 잡부, 공사장 현장 잡부 등을 전전한다. 미국의 백만장자 사업가 밴 뷰런의 눈에 띄면서 건축가로 자리 잡게 되는데, 밴뷰런의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그가 의뢰한 복합건물을 시공하던 중 놀랍게도 밴뷰런에 의해 라슬로가 강간당한다. 무방비상태의 라슬로를 말 그대로 폭력으로 누른 것.

이 사건이 상징하는 것이 주제를 만드는 핵심 사건으로 작용한다. 즉, 미국의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유대인의 모습이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혜택을 누리다가,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결론을 보여 준 것. 이건 무슨 논리인가? 지금까지 둘이 잘 붙어먹다가 하나가 배신하자 고소하는 진흑탕 싸움을 보여줄 뿐이다. 누가 희생자인가? 둘 다 가해자일 뿐이다.


복합건물이 성전으로 탈바꿈하는 것, 그것은 예술인가 건축인가, 인간승리인가? 이 건축물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모아 건물 내부 중심 대리석 위에 빛으로 된 십자가형상을 보여주는 것이 절정이다. 언덕 위에 블루털리즘이라는 건축 사조의 결과물, 마을 한복판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웅장하고 일체의 장식이 없는 야생 그대로의 콘크리트 건물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겠는가?

무언의 표정으로 학살과 학대의 세계에 대항했던 조카 조피아, 그녀는 유대인들의 인내가 이끈 승리의 화신으로 나온다. 마치 그것은 사교집단 프리메이슨이 하늘의 계시를 받아 자신을 자해의 고통 속에 놓고 하늘의 명을 실천하는 데서 오는 고행과도 같은 행위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곳은 미국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국가다. 그 이스라엘에 돌아가 낳은 딸이, 고통 받았던 유대인을 기념하는 성전으로써의 건축물로 둔갑한 라슬로의 미완성 건물에서 마이크를 잡고 관객에게 설파하는 축사 내용, 그것은 늙고 병든 라슬로의 육성이기도 하다.

그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적지, 이 결과물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말한다. 라슬로의 대사이기도 한 이 말은 건축물이 가지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정치 사회적으로 어떤 변동이 초래되더라도 건축물은 그 자리에서 100년 200년을 버틴다는 것, 환경적 변화에도 예외 없이 버틸 수 있는 것은 바로 건축물이라는 것, 그래서 라슬로가 건축한 건물들은 모두 내진 설계하듯 침수에도 견디도록 설계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미국을 등에 업고 살만해진 이스라엘이 중동 한복판, 남의 동네 한복판에 세운 기념비적 종교관을 세워 놓았다는 뜻이다. 그것이 이스라엘이라는 것. 이제 이스라엘은 미국이 필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그 성전을 중심으로 전 세계 유대인들이 뭉치겠다는 뜻인 것. 제2의 유대인 대이동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고통스러웠던 과정, 이겨내려고 발버둥 쳤던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모습인 결과를 보라는 뜻으로 새로운 목표를 동족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성전이라는 것이고, 그 성전이 바로 이스라엘 국가 그 자체라는 목소리를 정당화하고 있는, 그래서 이 영화는 선전 선동의 정치영화인 것이다.


아무리 영화적으로 잘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수백만 명을 학살했고, 지금도 무참하게 학살하고 있는 그들의 뻔뻔하고 삐뚤어진 역사관과 현실관에 박수쳐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분노가 치솟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였는지 그건 과거의 역사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그것을 원죄로 어린이 부녀자 노인들을 폭격으로 죽이는 행위는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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