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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은 쌔끈하다

by 별사탕

98년에 1쇄를 찍고, 05년에 23쇄를 찍었으니 ㅈㄹ 많이 팔렸다. 은희경이 새의 선물을 들고 나왔을 때, 나는 각광했다. 드디어 여자도 소설다운 소설을 쓰는구나, 했었다. 이후 은희경이 술자리에서 소위 '쌔끈'하다는 얘길 들었다.


59년생이니까, 2025년 기준 세는 나이로 67세다. 98년이면, 25년전이다. 그녀, 불혹의 시기! 공자한테나 해당하는 말이 불혹이지, 무지막지 흔들리기만 했던 나이가 아니던가! 지나온 사람은 안다. 불혹이 입혹이라는 사실을.


은희경이 매력적인 이유는 남자답게? 션션하다는 사실, 요즘 애들은 안 그렇겠지만, 그땐 감추고 숨기고 빼고 누르고, 한마디로 말하면 호박씨를 많이 깠던 시절이었다. 그런 면에서 은희경은 솔직했고, 거침없었고, 션션했다는 얘기.


소설 내용만으로 본다면, '잡년(slut)' 강진희('새의선물'에 나왔던 그 꼬마가 '잡년'으로 성장했다.), '착한 년은 천당가겠지만, 잡년은 어디든 간다던' 그 슬로건을 들고 우리나라에 수입된 그 '잡년' 이 맞다.


은희경은 그런 면에서 선구적이다. 주인공, 강진희는 국어선생을 하다가, 문창과 교수로 재직중인 엘리트여성이다. 그녀는 하나의 사랑에 집중 안착하지 못하는 사랑 불신자다. 사랑을 통해 존재의 자존감을 높이는 일은 멈춰서는 안 되는 숨쉬기와도 같은 것이다. 멈추면 죽는 행위, 그래서 그녀에게 사랑은 숨쉬는 행위처럼, 당연히 지속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그녀가 다수의 애인이 필요한 이유다.


하나의 사랑이 가지는 유효기간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헤어짐에 망설임도 미련도 없이 갈아타버리는 여유를 만들기에 딱 좋은 파트너는 셋이라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녀에겐, 전 남편 상현, 대학동창이자 동업자에 속하는 노총각 현석, 이질적이고 당돌한 사회부 기자이고 세살이나 연하고 무려 유부남인 종태가 필요하다.


저급한 삼류의 이야기다. 독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 거다. 그래서 잘 팔렸을 거고,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그게 현실이 되어 있다. 동시냐, 시차가 있냐의 차이일 뿐 이런 연애는 부지불식간에 일반화되어 생활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 못 믿겠다면 주변을 둘러봐라.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다면, 당신은 늙은이다.


이런 사랑도 종착역이 있다. 셋이라는 숫자가 주는 안정된 받침대의 기능이, 다리 하나가 부러지면 나머지 받침 두 개는 영락없이, 까닭없이 허물어지고 만다. 자칫 방심한 사이에 사랑은 뿌리째 흔들리고,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도록 쪽팔림을 던져주고, 소셜포지션에 단거(danger)를 먹인다.


결국, '진희'는 사랑의 미로에서 갈 곳을 잃은 '잡년'으로 전락하는 운명적 순간을 자각하는 찰나를 택시안에서 맛본다. 출구없는 미로, 절망.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정작 끝이 아니다. 진짜는 다음의 작가후기에서 끝나며,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everybody's doing a brand new dance now, come on do the locomotion.


아니다, 이미 세상은 잡년과 잡놈들의 판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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