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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이세무사 Nov 07. 2023

세무사 기장계약

세무사의 하루

먼동이 틀 무렵 저절로 떠진

목욕재계와 함께 마음을 다잡고 새벽공기와 함께 출근길에 올랐다.

오늘은 개업 이후 가장 중요한 날


첫 기장상담을 하는 날이다.


출근 후 문을 여니 4.5평 쥐콩만한 원룸 사무실이 나를 반긴다.

몇 시간 뒤 고객이 보게 될 광경

평수를 넓힐 순 없으니 청소라도 깨끗하게 해놔야 한다.


물티슈로 상담테이블과 가구 곳곳먼지를 닦아내고

바닥을 빗자루질  뒤

물걸레와 마른걸레를 번갈아가며 무릎걸음으로 구석구석 걸레질을 마쳤다.

지체 없이 차를 내놓기 위해 전기포트에 물도 미리 끓여놓고

바로 신을 수 있도록 실내슬리퍼 위치도 정리하면 청소완료.

 

어젯밤 완성한 따끈따끈한 '개인사업자 세무안내자료'를 출력하고

'젊지만 노련하게, 가렵기 전에 먼저 긁어주는'

그런 세무사로 보이길 기대하며 여러 번의 리허설을 마무리했다.



따르릉~!



"안녕하세요. 술술이 세무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세무사님, 오늘 11시에 상담예약했는데요. 근처에 왔는데 사무실을 잘 못 찾겠어요."



사무실이 주택가 골목 안쪽에 위치하다 보니 주소만 듣고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



"삼거리 새마을금고 보이시죠? 거기 계시면 제가 마중 나가겠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상담을 하러 왔다가 찾기 어려운 사무실 때문에 상담이 늦어지면 만나기도 전에 의욕이 사라질 수 있다.

시간이 더 지체되기 전에 신속히 구두를 신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전화주신 아저씨가 아내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모습


'두 분이 오실 줄은 몰랐는데..'


내담자가 많아지면 시선도, 궁금한 것도 두 배 이상이 되니 부담이 커진다.

두 분을 기다리게 한 것도 마음이 좋지는 않고


'왜 내 사무실은 골목안쪽에 있는 거야 ㅠㅠ'


모양이 빠지지만 태연한 척 인사를 건네며 길을 안내했다.




두 분은 엘리베이터로, 나는 계단으로

사무실 문 앞에 도착했다.


'이것도 사무실이야?'

'세무사는 맞아?'


이런 생각이 들까, 두려운 순간

팽팽한 긴장감 속에 문을 열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사무실

작지만 깨끗하고 미니멀하지만 아늑하다.

미리 따라놓은 녹차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사무실을 이렇게도 쓰시는구나. 일할 때 집중이 잘 될 것 같은데요?"


"네, 독서실 느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ㅎㅎ"


멋쩍게 웃으며 상담을 시작했다.


"그럼 신규 사업자 관련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나의 시간


이래 봬도 7년 차 세무사

허투루 연차를 쌓은 것은 아니다.


미리 출력해 놓은 안내자료와 프로페셔널한 설명, 궁금증에 대한 막힘없는 답변까지


보잘것없는 사무실에 실망했을 수도 있겠지만

만만하게 보면 큰코다치는 태즈메이니아데빌, 그게 바로 나다.


호주에 사는 동물로 작지만 성격이 포악하다고 합니다.


"더 궁금하신 것은 없으시구요?"


"저희가 뭐 아나요? 세무사님이 잘해주시겠죠. 여보 여기 어때?"


대표님은 시원시원한 분이었다.


"나는 조금 더 알아보면 좋겠는데? 이번이 처음이잖아"


그에 반해 신중하신 아내분


'알아봐도 어차피 그놈이 그놈입니다. 그냥 저와 계약하시죠.'


뱉지 못한 말과 함께 침이 '꿀꺽' 넘어갔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입을 연 대표님



"개업은 언제 하셨어요?"


"개업은 작년에 했고, 그전에는 세무법인에서 5년간 근무세무사로 있었습니다."



개업기간이 짧다 보니 묻지 않아도 1+1으로 나오는 근무세무사 경력



"저도 회사 다니다가 독립하는 거라, 젊고 처음 하는 분이랑 같이 커가고 싶거든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여보, 나는 여기서 하고 싶네. 세무사님도 젊고 처음 하시잖아."


"그래도 몇 군데는 더 알아보자."


그렇게 천당지옥 오르내리길 몇 차례


"여보."



부부사이에서 남편이 아내를 이기기는 쉽지 않은데

대표님의 나지막한 한마디 후 아내분의 고개가 끄덕였다.



"세무사님 계약서 좀 보여주세요."




후기


나중에 알고 보니 사모님은 남편의 첫 사업이라 경험 많은 세무사와 함께 하길 바라고 계셨습니다.
참으로 현명하신 생각이었지만 대표님의 왕고집 덕분에 다행히 저와 계약을 할 수 있었네요. ㅎㅎ

당시 작은 규모로 인해 무시를 여러 번 당하고 좀처럼 계약도 이루어지지 않아 기가 많이 죽은 상태였는데 첫 만남부터 좋게 봐주시고 흔쾌히 사인해 주신 대표님 덕에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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