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패권경쟁 중인 미국과 중국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역사와 문화, 문명을 살펴보았다. 미국과 중국의 원형(DNA)이 양국의 정체성과 사고방식, 행동양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동서 문명의 최고점에 있는 미국과 중국은 인간의 세상이기에 같은 점이 있다. 그러나 다른 점이 더 많다. 서로 다른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두 문명은 절충·조화가 안 되는 상극관계이다. 미중관계에서 무엇이 같음이고 다름인지 살펴보자.
□ 같은 점
①우월주의·예외주의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과 중화문명은 자신들이 앞서 나가면서 최고라는 우월의식이 형성되었다. 양 문명의 후예들이자 끝판왕들인 미국과 중국에도 우월의식이 여전하다. 특히 유럽을 떠나 온 미국인들의 선민의식과 예외주의는 특별하다.
미국의 초기 예외주의는 미국은 다른 국가와 다르며,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탄생한 국가라는 신념이었다. 외교정책에서는 도덕주의와 이상주의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예외주의가 기독교 구세주 정서와 결합해서는 미국의 가치를 전파하는 정책과 전쟁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탈냉전 직후 미국의 예외주의에는 오만과 탐욕으로 가득 찼다. 예외주의는 자신들이 세계를 이끌며,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초강대국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스스로 제국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현재의 바이든 대통령과 같은 주류 미국인들은 지금도 자국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 이들은 미국만이 힘이고 정의라고 믿는다. 그들만이 국제규범과 규칙을 만들 수 있고, 또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가 패권을 잡는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중국도 고대시대부터 예외주의가 있었다. 중국식은 문화적이었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자국의 문화·정치 전통에 대해 자부심·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런 우월주의가 그들의 사상에 흠뻑 스며들어 자기 숭배적인 문명체계를 만들었다. 중화민족은 다른 민족들이 자신들을 우러러보고, 자신들의 가치를 흠모하며, 자신들의 행동 양식을 흉내 내려한다고 믿었다.
중화제국 시기에는 자신들의 문화를 세계의 ‘유일·보편’으로 절대화했다. 다만, 중국은 이민족들에게 자국의 가치를 심으려고 하지 않았다. 애써 전파하지 않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존중토록 했다. 주변국을 정복하거나 개종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기미라는 고삐를 느슨하게 연결해 관리·통제하는데 그쳤다. 자국에 순응하는 주변부가 목적이었다.
전통시대에 왕도를 추구했던 중국은 지금도 패권주의와 제국주의를 반대한다. 패권을 영원히 추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인류운명공동체론’과 세계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식 해법·원칙을 내용으로 하는 소위 ‘중국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자국의 가치와 규범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질서를 구상하는 것이다.
②황제의 나라
전통시대 중국의 황제는 하늘을 대신해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天子)였다. 황제는 여러 제후 왕들을 책봉하고 연호도 정해주었다. 제후국은 정기적으로 조공을 바치고 중국의 연호를 받아썼다. 조공책봉관계는 종주국과 속국 간의 관계였다.
서구에서도 제국다운 첫 제국이었던 로마시대부터 황제(Emperor)가 존재했다. 로마의 황제들도 하늘이 자신에게 맡긴 제국을 신의 명령에 따라 다스린다고 생각했다. 신이 보낸 위엄이 있고 존귀한 인물이 바로 황제였던 것이다.
현재의 미국 대통령과 중국의 국가주석은 전통시대의 황제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영향력의 범위와 권한에서는 옛 황제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권력을 갖고 있다. 그만큼의 힘을 행사하는 모습은 때로 황제 같은 면모를 연상케 할 때가 있다.
③흥망성쇠, 강대국의 꿈
인간의 생로병사와 같이 패권 제국도 절정에 달하면 쇠락한다. 인간의 성정과 기본 성격, 국가의 흥망성쇠의 원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그 원인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서구는 대외 부정의(침략·약탈)가 몰락의 근본 원인이었다. 반면 중국은 대내 부정의가 농민반란을 초래해 멸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재의 미국과 중국이 추구하는 꿈도 유사하다. 미중 양국 모두 과거의 찬란한 역사의 재현을 미래 꿈으로 설정하고 있다. 미국은 2008년 이후 계속해서 ‘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인가(MAGA: How to Make America Great Again)’를 고민하고 있다.
□다른 점
①문화와 문명
아래 <표-6·7>과 같이 전통적인 동서 문명과 문화에는 다른 점이 더 많다. 서구는 인간적·합리적이면서도 침략적· 약탈적이었다. 중화는 국가적·비합리적이면서도 도덕적·윤리적이었다.
미중 양국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고대 중국의 제후국들과 그리스의 폴리스 간의 차이도 크다. 현재의 미국과 중국의 차이는 확실히 서로 다른 문화와 문명, DNA에서 비롯된 것이다.
②철학
인간과 세계의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한 고대 동서양 철학은 탐구의 대상·방법, 내용 면에서 많이 다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산악의 협소한 공간에서 삶의 규칙을 공유하며, 권리·의무·책임을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일이 중요했다. 철학자들이 모두 논리와 수사(修辭)를 중심으로 사고한 이유다. 철학의 주제는 개인과 국가의 정의·윤리·지혜로움과 같은 인간의 삶에 관한 것이었다.
반면, 중국의 동양철학은 봉건사회에서 지역이 광활하고, 다양한 문화·민족이 공존해야 하는 풍토에서 싹트고 자랐다. 철학자들은 우선 자신의 철학을 펼치기 위해서는 군주의 심기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양과 달리 논리적인 의견 개진 대신 고사성어나 사자성어 동원 등 은유·우회 방식으로 설득하는 방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삶과 사유의 방식도 다르다. 서양의 정서는 ‘나’를 주체로 한 개인주의적인 사고였다. 동양의 정서는 ‘우리’에 중점을 두고 타자와의 인간관계에 집중했다.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했던 그리스 문화는 논쟁 문화를 꽃피웠다.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에서 나온 중국문화는 논쟁을 불쾌하거나 미숙한 것으로 여겼다. 관계를 중시했다. 인간이 집단 혹은 가족 구성원이라는 점을 중히 여기며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강조했다. 서양의 분석적 사고와 동양의 종합적 사고는 이렇게 서로 다름과 많은 차이를 만들었다.
③사회의 기본 토대
서구 유럽의 문명은 개인을 중심에 놓고 있다. 서양에는 자유·평등·민주주의·개인주의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는 정치적으로 자유와 민주, 공화제를 발전시켰다. 경제사회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사유재산제, 자본의 집중, 치열한 경쟁, 특히 자본과 노동력의 대립이라는 기본구조를 형성했다.
반면, 중국의 유교문화는 권위·위계와 대결 회피를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사회에 대한 국가의 우위, 또 개인에 대한 사회의 우위라는 가치를 강조했다. 중회문명은 장기간의 역사 과정에서 개인·가정을 국가와 동일시하며 국가공동체를 형성했다. 개인의 존재는 국가공동체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2,000여 년의 중화제국에는 자유·민주·공화, 특히 인민주권의 경험과 전통이 없었다. 전제 봉건왕조에서는 황제의 국가 주권만 존재했을 뿐이다.
④전쟁관
고대 유럽에서 전쟁은 약소국의 영토나 자원·인력(노예)을 약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쟁은 주로 먹고사는 문제로 발생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침략하고 약탈하는 것을 자연의 이치나 정의로 여겼다. 이 전통은 15세기 서구의 대항해 시대와 19세기말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시대에 ‘발견자우선주의’와 ‘점령지주의’로 변했다. 열강의 제국 간에는 발견하거나 점령하는 나라가 그 지역을 통치한다는 법칙이 지배한 것이다.
2차 대전 후 미국의 세계패권 확보는 대부분 전쟁, 즉 군사주의에 의해 이뤄졌다. 미국은 문명화나 민주화. 시장화를 명분으로 타국의 내정에 게입하고, 필요할 때는 전쟁도 일으켰다. 늘 긴장과 전쟁이 필요한 나라인 미국은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팔(하마스) 전쟁 등에 깊숙히 개입하고 있다.
중국 황하문명의 전쟁관은 서구문명의 전쟁관과 달랐다. 전통시대 중국이 벌인 전쟁은 정복전쟁이 아니라 대부분 제국의 변경을 안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쟁을 국가 과업으로 인정은 했지만 정복자가 피정복자에게 관대해야 한다는 전통도 있었다. 상고시대에 은나라를 정복한 주나라 무왕은 전쟁에서 패배한 망국의 후예들이 조상의 제사, 사직을 받들 수 있을 정도의 땅을 분봉해 주었다. 당나라의 한반도 정벌 후 당 고조 이치는 고구려와 백제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과 부여 융을 관대하게 처벌했다. 왕도에 있는 최소한의 윤리·도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