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입장·속내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통일은 남북대화·교류협력을 통해 북한의 의미 있는 변화와 남북관계 정상화를 통해 이루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통일의 대상인 북한에 대한 특별한 인식과 이해관계를 가진 중국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중국의 입장은 통일의 가능성과 시기·방법을 가르는 변수가 될 수 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속내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북한지역에 대한 깊고 끈질긴 역사적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정학적 이해관계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경쟁국인 미국과의 관계, 특히 미국의 관련 입장과 속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결정된다.
중국의 입장은 미국의 그것 못지않게 직설적이고 부정적이다. 미국이 ‘왜 (내가 싫어하는) 통일을 굳이 하려고 하느냐? 안돼!’라는 식인데 반해, 중국은 ‘(남과 북의 역사와 민족, 현실 체제·이념이 다른데) 통일은 무슨 통일이냐?’는 것이다.
또 중국의 입장은 다분히 전략적이고, 장기적이며, 이중적이다. 미국의 북한과 달리, 중국에게 북한(지역)은 운명을 같이 한 공동체이자 한 집안이다. 중북 우호의 핵심이자 본질적 속성은 공산당이 이끄는 사회주의다. 이렇게 복잡한 중국의 속내를 읽기 위해서는 관련 ①표명된 정책과 ②공공외교 ③실질 목표 등을 구분해 봐야 한다.
□ 표명된 정책: 통일을 지속적으로 지지
국내의 많은 전문가들조차 한반도 통일에 가장 소극적인 나라는 중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동안 가장 적극적으로 통일 지지 의사를 표명해 온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일본과 러시아는 관련 언술조차 찾기 어렵다. 미국 또한 한반도 통일문제를 적극적으로 언급한 사례가 없다.
중국의 지속적인 통일 지지 입장은 분단·혼란 상태의 한반도보다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에 이익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분열된 한반도 '3국 시대'와 '남북국 시대'에는 무력으로 개입한 적이 있다. 하지만 936년 신라 멸망 이후 900여 년 동안 중국의 한족 왕조가 한반도의 고려와 조선을 정벌한 적은 없었다.
현실적으로도 통일된 한국은 중국에 보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주변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 속에서 중국은 경제발전과 양안통일,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외세와 함께하며 자국을 위협하는 통일한국이 아니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한반도 통일 지지 입장은 변화가 없었다. 1943년 한국문제를 처음 논의한 카이로 회담에서 국민당 장제스의 중국은 한국의 자유독립을 희망한 유일한 나라였다. 공산당의 신중국은 1992년 한중수교 시 공동성명에서 천명한 “한반도가 장래,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보다 진전된 입장은 2013년 6월 시진핑 주석 취임 후 첫 단독 방한 시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나왔다. 시 주석은 “중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지한다. 한반도 통일은 대세이고, 중국의 국익에 부합하며, 중국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이 발언을 그간 고대해 오던 중국의 북한 포기 및 한국 주도의 흡수통일 지지 가능성으로 읽었다. 2015년 10월 1일, 중국 전승절 70돌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통령이라는 부픈 꿈을 안고 베이징 천안문 성루에 섰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열병식을 참관했다. 북한의 최용해 당 비서는 저만치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세계가 주목한 그 장면은 한중관계가 중북관계보다 더 가까워졌다는 인상을 주었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고 통일에 협력할 것이라는 기대는 2016년 7월 미군의 한반도 사드배치와 한중관계 악화로 귀결되었다. 무지가 낳은 섣부른 기대가 엄청난 후과를 초래한 것이다.
□ 통일의 조건: 그 과정·결과는 두고 보자.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기본입장은 한마디로 ‘통일은 지지한다. 그러나 그 과정·결과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1992년 한중수교 공동성명의 한반도 통일 지지 입장에는 4개의 원칙적인 조건이 들어있다. 통일은 ①먼 장래에 ②남북한 당사자 간의 ③자주적·평화적 방법에 의해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④통일한국은 중국에 우호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제시하는 조건인 ‘장래’와 ‘남북 간에’, ‘자주적 평화통일’의 의미는 미국의 힘이 우세한 지금은 통일을 논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에게 미군이 주둔한 통일한국, 또 통일한 베트남과 같이 다루기 힘든 통일한국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이 몰락해 개입의 여지가 없을 때, 남북한이 자주독립적이고 평화적으로 통일한다면 돕겠다는 입장이다. 그때까지 중국은 ‘안정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원칙을 견지할 것이다. 현재 중국은 불통·불난(不統·不難), 즉 남북통일과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로운 분단상태를 선호한다. 현재와 같이 악화된 정세에서는 북핵문제 해결과 한국의 대북정책에 협력할 의사조차 없다.
□ 실질목표·속내: 당분간은 현상 유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표명된 정책은 미국의 그것(“한미동맹을 통한 평화통일”)과 다르다. 당사자들인 “남북한 간의 관계 개선을 통한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나 완전히 감출 수는 없는 법이다.
조금 지난 일이지만, 아래 필자의 경험과 2개의 글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과 중국인들의 실질목표와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한국과 조선’은 서로 통일 대상이 아닌데 무슨 통일?
1995년 3월~8월 간 필자의 중국 이해를 위한 현지(선양 요녕사회과학원) 연수 때의 일이다. 연수 중 한 세미나 석상에서 중국 동북변강의 역사를 연구하는 한 연구원은 통일부 파견 직원인 필자에게 물었다. “... 한국은 대체 무슨 통일을 실현하려는 것이냐?”는 것이었다. 생소한 질문에 놀랐지만, 그 연구원의 질문 의도는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의 역사 인식을 드러낸 것이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고구려·발해를 자국 동북지방의 소수민족정권으로 인식한다. 중국인들에게 7세기 당나라·고구려 간의 당고전쟁은 국가통일전쟁이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상의 경계선은 한사군(漢四郡) 지역 하한선이자 당고전쟁 후 형성된 한반도의 평양~원산선이다.
그 연장 선에서 보면 중국에게 북한은 한국의 일원이 아닌 자국의 옛 소수민족 지방정권과 같은 존재가 된다. 중국 역사에서 한국(韓國)은 한강 이남의 일통삼한(一統三韓), 즉 고대의 마한·진한·변한을 합한 지역을 의미한다. 한국의 한민족은 중국의 동북지방 소수민족 국가의 연장인 조선의 조선족과 다르다는 것이다.
통상 상호관계가 좋을 때는 좋은 게 좋지만, 안 좋을 때는 본색이 드러난다. 최근 북한은 남북관계에서 ‘동족과 통일’ 개념을 완전히 지웠다. 1980년대 말 이후부터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 민족공조를 외쳐 온 북한의 민족·민족주의 이론과 구호들은 사실 남한의 그것과 다른 것이었다.
동서독이 통일된 후인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북한은 민족주의 담론의 하나로 ‘김일성민족(태양민족)’을 사용했다. “고조선 건국 시조는 단군이지만, 우리 사회주의조국과 우리 민족은 김일성조국·김일성민족”이라는 것이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의 남북관계 개선 과정에서는 대미·대남 협상전략의 일환으로 ‘우리 민족끼리’와 ‘민족공조’를 강조했다. 북한은 ‘우리 민족끼리’를 통일문제와 관련한 최고의 이념으로 사용해 왔다. 남북합의서 채택 시마다 합의서 전문에 이 문구를 적시할 것을 고집했다.
북한의 ‘우리민족제일주의’와 ‘김일성민족론’은 사실 남한 차단 전략이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 2020년 1월 11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은 담화에서 “한 집안 '족속'도 아닌 남조선이 우리 국무위원장에게....” 운운했다.
한국이 ‘탈아입일·미(脫亞入日·美)’ 하자 북한은 2023년 12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론을 통해 속내였던 ‘2 민족 2 국가론’을 공식화했다.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2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남북통일과 화해, 동족 개념은 물론 관련 기구들과 합의서들을 모두 폐기했다. 남한에 대한 기대를 접고 상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중국 외교부장은 미국과 공조를 강화하는 한국에 외세개입을 견제하고, 자주독립할 것을 주문했다. "동양인들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코를 뾰족하게 고쳐도, 유럽·미국·서양인이 될 수 없다.”고 힐난했다. 서양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동아시아 한중일 3국이 뭉쳐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29년 전, 중국 동북지역 한 역사학자의 ‘(한국이) 한 족속도 아닌데 (북한과) 통일은 무슨 통일이냐’는 식의 주장이 최근 북한에 의해 현실화된 것이다. 무슨 일인지? 놀랍다. 혹 중국도 남북한의 민족 동일성과 통일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 한국 내 일각의 내심이 중국·북한의 속내와 통일된 것 아닌가?
한반도 통일은 급한 일 아니다
2010년 12월 28일 자 중국 환구시보의 ‘사설’은 한국 이명박 정부의 통일준비 노력(통일항아리론)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국정부의 흡수통일론은 북한의 반발과 논쟁을 유발할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취권을 즐기고 있는가, 아니면 정말 취한 것인가? 취권 연출이라고 해도 과하면 상대방이 오해할 수 있다.”고...
2014년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에 대해 초대 주한 중국대사를 지낸 장정연(필명: 延靜)의 글은 중국정부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그는 “한반도 통일은 조급한 일이 아니다”(홍콩 大公報, 2014.3.8.)라는 글에서 “(한국이) 통일을 논의하는 것은 나쁠 바 없다. 그러나 통일이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잘못된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면 조롱거리다. 중국은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나 이는 눈앞에 닥친 급한 일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결국, 중국의 입장은 자국에 우호적인, 평화롭고 통일된 한반도를 바라지만 단기적으로 불확실 상황에서 남북한이 현 상태로 있기를 바란다. 아래 <표>와 같이 통일된 한반도가 자국에 대항하는 미국의 전략적 요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한국의 민족주의가 자국 영토인 간도와 중화민족의 일원인 조선족의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중국의 우려 사항이다.
□ 중국의 또 다른 속내: 한반도 통일이익론
실사구시(實事求是) 하는 중국의 관심과 판단의 기준은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통일의 과정과 결과가 자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가의 여부다. 지난 2011년과 2012년 중북관계가 악화되고 한중관계가 좋아졌을 때, 중국은 한반도 전문가들을 동원해 한국에 대한 공공외교를 펼친 적이 있었다.
아래 <표>에서 보듯, 당시 중국 내의 ‘한반도 통일이익론’은 한국과 미국, 북한을 향한 고도의 전략과 함께 중국 속내의 일면을 드러낸 것이었다. 중국 전문가들은 남북한이 합의하면 중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미국의 동북아 전략을 비난했다. 중국의 이 ‘전술적 변화’는 한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 수용 가능성을 거론하며 한국을 자국 편으로 견인하는 한편, 중국을 곤혹스럽게 하는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b-------
□ 정치통일 아닌 '사람의 통일'로...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한반도 문제는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로 인해 항상 국제문제화 되었다. 통일문제 관련 미중 양국의 입장은 향후 통일 실현 가능성은 물론 통일의 시기와 방법을 좌우할 것이다.
한반도는 지금 6.25전쟁 이후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평화·통일에 대한 그 어떤 기대나 전망조차 할 수 없다. 남과 북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분리돼 버렸다. 평화·통일보다 전쟁 걱정이 앞서는 것은 미중 양국이 패권전쟁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통일은 포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 1천여 년의 한국사에서 분단은 고작 80년이었다. 강력해질 통일한국은 반만년 역사상 처음으로 독립변수로서의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통일은 한민족의 꿈인 '동방의 등불', ‘K-문명국’ 건설을 위한 조건이다.
세계화·다문화 시대에는 민족통일의 명분인 ‘민족’의 개념도 변화한다. 전략상황 변화에 따라 지정학이나 동맹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미중 패권전쟁은 동아시아 지각변동과 역사의 전환을 초래하는 중대 변수다. 우리가 희망조차 버릴 때는 아니라는 것이다.
남북관계 0점 상황에서 한가닥 희망·전략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통일’이다. 국내외 정치가 80년 동안 이루지 못한 영토·제도의 통일은 이제 먼 훗날로 미루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남북한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통일, 주민의 통일 방식이 그것이다. 통일을 이루는 주체는 민족 구성원이지 주변국이나 남북한 정부가 아니다.
통일은 결국 민족 구성원의 투표로 결정될 선택의 문제, 바로 민족자결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추상적인 무슨 가치나 비용 문제가 아니라 한민족이 전쟁 걱정 없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국익·민생이 우선이다. 통일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은 가장 고달픈 북한주민들이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와 같이 한반도 통일도 결국 북한 주민들이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주민들의 고난·고뇌를 고려해 남북한 주민들이 같은 주파수를 가지게 하는 일이 통일로 가는 첩경이다. 북한주민들을 타자화하고, 모른 채 한다면 통일의 의지와 자격이 없는 것이다. 한국보다 중국을 선호하는 북한 주민들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일이 최소한의 통일 조건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