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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치 May 08. 2024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 애증이 교차하는 이웃

   

중국은 우리에게...


전통시대, 한중 양국은 특수한 관계 속에서 애증이 교차하는 공동운명체 관계를 유지했다. 1910년 조선이 망하자 1912년 2,000년 중화제국 청이 멸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대사에서도 마찬가지다. 1940년대 중·후반 신한국과 신중국이 수립된 직후 양국은 6.25전쟁에서 싸웠다. 40년 냉전시대에는 교류가 없는 적대관계였다. 1992년 한중수교 후 30년 양국관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세계사의 ‘외교의 기적’으로 불리는 관계 발전을 이뤘다.

    

2017년 미국의 사드 배치는 동북아 중심에 던진 신의 한 수였다. 지금 한국인들은 먼 친구인 미국을 가장 좋아한다. 가까운 이웃인 중국을 가장 미워한다.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닥치고 혐중(嫌中)’은 구한말 청이 던진 조선의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과 같은 것이다. 국망은 아니더라도 전쟁 걱정 없이 잘 사는 나라 만들기는 어렵게 되었다.  

    

알기 어려운 중국은 몰라서는 안될 나라다. 오늘날의 중국은 미국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격변기에 위태롭지 않기 위해서는 이웃 중국에 대한 보다 냉철한 지피지기가 필요하다. 중국을 보다 잘 알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와 중국공산당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야 한다.

     

1.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중국은 오랜 역사에 14억이 넘는 인구, 한반도의 44배에 달하는 땅에 56개 민족이 살고 있다. 큰 나라다. 14개 국가와 인접하고 있다. 1개의 중국 속에는 4개의 서로 다른 중국이 있다. 이런 중국의 안보 목표는 시대상황을 막론하고 권력 집중을 통해 외부 침략을 억제하고, 내부 정치·경제의 안정과 번영을 이루는 것이었다.

    

역사가 종교 같은 나라     


중국에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역사다. 유구한 역사와 문명 속에서 나온 경험적 지혜는 중국의 무궁한 자산이다. 기독교인들이 성경 속 문장을 인용하듯 중국인들은 역사를 인용하며 의사 전달의 설득력을 더한다. 전통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의 지도자들은 먼 옛날의 사건에서 관련 사례나 전략적 원칙을 끌어와 이야기한다.

     

현대의 신중국도 수천 년 지속돼 온 역사와 문명 속에서 존재한다. 거기서 얻은 경험·지혜를 현대와 결합해 만든 규칙에 따라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 역사는 그 나라의 정체성과 국민들의 사고방식 및 행동양식을 결정한다. 중국의 정치체제나 이념, 행태는 중국공산당이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개창”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가본 적 없는 민주·공화의 길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지만 인민에게 주권이 있지 않다. 서구식 민주·공화의 길은 중국인들이 가본 적이 전혀 없는 길이다. 과거 왕조 체제나 지금의 공산당 체제에서도 국가는 어느 누구와도 권력을 나누지 않았다. 황제에게 있던 주권이 인민주권이 아닌 국가주권으로 대체되었다.

     

농경민족인 중화민족은 침략·약탈보다 착실하게 일하는 것(実墾)을 중시했다. 청담(淸淡)은 나라를 망치는 일로 의회 민주주의 같은 제도는 옳지 않다고 여겼다. 중국인들이 중시한 것은 신의이고 도덕이지 계약이나 법률이 아니었다. 소유권이 명확하고 공사가 분명해야 민주와 헌정, 공화가 있을 것인데 중국 역사에서 모든 것은 황제인 천자의 것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민주화는 곧 중국공산당 일당 통치와 신중국의 붕괴를 의미한다. 중국인들은 나라의 혼란·붕괴보다 강력한 지도력에 의한 경제발전과 현대화를 선호한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은 없었다. 공산당이 없으면 경제발전과 G2로의 굴기도 없었을 것으로 믿는다. 대다수 중국인들에게 서구식의 자유와 민주, 인권문제는 현재나 미래에도 관심사가 아닌 것이다.

     

현능주의(賢能主義)의 나라     


신중국의 정치모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국가주도형 발전 모델(국가자본주의)이나 정치체제 등은 중국 고유의 문화·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상층부의 지도자를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뽑아 그에게 정치를 맡긴다는 현능주의 또는 현인주의 민주론(賢人主義民主論)은 과거 중국의 관료 충원제도를 계승·발전시킨 것이다.     


2000여 년 전에 편찬된 예기(禮記)는 ‘대도(大道)’를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세상이라고 정의한다. 이를 위해, 어질고 유능한 사람들을  뽑아 관직을 맡기는 것을 이상적인 현능주의 원리로 제시했다.

     

중국의 각 왕조는 현능주의를 실현하려고 했다. 한 무제와 당 태종, 명의 영락제 등 태평성세를 연 황제에게는 탁월한 업무수행 능력이 있는 신하(인재)들이 있었다. 왕조 정치의 정당성은 인민들의 기본 생활조건 보장과 전쟁·자연재해 등 위기를 극복하는 위정자들의 업무수행 능력에 있었다.

     

이 때문에 황제들은 훌륭한 인재의 양성과 선발·활용을 조정의 성패를 가르는 일로 여겼다. 황제는 신하들과의 토론을 거쳐 중요 정책을 결정했다. 학문이나 기술을 강론·연마하고, 신하들과 국정을 협의하는 경연(經筵)이 중요한 국사였다. 조정에서는 영명하십니다! 아니 올 시다!라는 쟁론이 끊이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의 부상 원인의 하나로 회자된 현능주의(meritocracy)는 선거를 토대로 하는 서구 민주주의와 다른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에서는 정부 상층부의 인재를 선발하고 양성하는 정교한 체제가 발전돼 왔다. 중국의 고위직 공무원은 오랫동안 단련되고, 평가받고, 검증된 인재만이 될 수 있다. 이게 큰 시행착오 없이 오늘날의 중국을 만든 중국만의 무기다.

    

현능주의를 신봉하는 중국지도자들이 유능한 것은 역사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 1인 통치는 불가능하다. 원탁 토론문화와 상하구분 없는 언어문화는 ‘집단지도체제’라는 통치스타일을 낳았다. 지금도 국가 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지도자들은 정기적으로 ‘집체학습’의 이름으로 경연을 하고 있다. 여름휴가 때는 전체 지도부가 베이따허(北戴河)에 모여 수일간 정책토론을 즐긴다.

      

중국인들은 각 왕조의 태평성세를 교훈 삼아 뛰어난 자질의 정치인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정치 제도나 절차보다 현자(賢者)가 더 정의롭고 완전한 사회를 이룬다고 믿는다. 덩샤오핑은 신중국 현자의 대표적인 지도자일 것이다.

    

지금 중국인들은 주석의 임기 여부를 떠나 덩샤오핑이 이룬 발전 추세를 잘 살려 ‘중국몽’을 실현할 수 있는 현자를 기대한다. 오늘의 중국은 오천 년 중국사에서 가장 융성한 시대다. 신시대를 이끄는 시진핑 주석은 1,300여 년 전의 당 태종을 따라 배우며 모든 일을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를 개창”하고 있다.

    

실사구시 하는 현세주의 중국인들

     

오랫동안 고단한 삶을 산 중국인들은 현세적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내세에는 관심이 적다. 현세의 안정과 풍요를 추구한다. 유교는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질서를 조화롭게 유지하는데 관심을 두었다. 기독교·이슬람교와 달리 내세나 이상향을 추구하지 않았다. 세속의 윤리와 도덕규범에 순응하면서 살았지, 종교적 신조와 규율을 따르지 않았다.

     

또 중국인들은 보수적이고 수동적이다. 끊임없는 분열·통일의 역사에서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 급격한 변화나 모험을 피하고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했다. 고증학 등의 학문도 실사구시(實事求是)하며, 현실 사회의 구제를 위한 경세치용(經世致用)에 중점을 두었다. 일상에서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한 것이다. 중국사회에서 개혁을 시도한 중국의 정치가들은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 같은 중국의 문화와 전통은 신중국에서도 변함이 없다. 대내정치는 물론 대외정책에서도 평화와 안정을 추구한다. 혁명을 지향하지도 않고, 세계를 구원하겠다는 생각도 없다. 흑백논리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신중국의 제1 과업인 대만통일도 유연하고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해 왔다. 양안관계는 긴장 국면에서도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다. 가치·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왕래와 교류협력에 힘쓰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은 것이다.


공산당 일당 독재의 나라  

    

·정 국가체제 

    

중국의 정치는 전적으로 공산당 중심이다. 공산당은 국가를 통치하는 ‘집권당’이자 사회(인민)를 특정한 목표, 즉 사회주의 건설로 인도하는 ‘영도당’이다. 중국은 사실상 ‘공산당에 의한, 공산당의, 공산당을 위한’ 나라다. 당연히 중국의 핵심이익은 공산당·국가를 보존·발전시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행정부를 영도하며, 정부의 정치행위를 대신하고, 군사를 관장하는 최고 권력기구다. 중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공산당과 국가가 인적·조직적으로 결합해 정치 과정에서 공산당이 국가를 영도하는 ‘당·국가’ 체제라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어느 나라 정당보다도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정당이다. 그들은 안정된 엘리트 정치와 지배연합을 형성, 정세 변화에 잘 적응하고 대응하며 좋은 성과를 냈다. 중국이 이룩한 부상·굴기는 놀랄만한 기적이다. 이는 효율적인 시스템 속에서 여러 단계의 평가와 검증을 거친 당 지도부가 국민적 지지를 받는 가운데 국민들과 함께 이뤄낸 것이다.

     

독특한 정치구조와 이념 

      

현 신중국의 정치구조 또한 역사의 산물이다. 중국공산당은 1912년 청 멸망 이후 수많은 정당·군벌들이 난립한 혼란 수습 과정에서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당원 약 9,700만 명은 각계각층의 엘리트들이 다. 중국은 이를 통해 복잡다단한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동원·조직해 내고 있다. 서구의 정당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중국만의 시스템이다.

    

중국인들은 사회주의·민족주의·유가사상을 교묘하게 혼합해 중국만의 새로운 통치이념을 만들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시장경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강한 동원력과 통제력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부상·굴기를 이뤄내 국제사회의 구조와 질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현재 91%의 중국인들은 공산당 정부를 지지하며,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미래가 과거보다 훨씬 더 찬란할 것으로 믿는다. 국민들로서는 공산당을 지지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시구진(時具進):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라  

   

중국은 지난 40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해 왔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 활용했다. 위기도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어 성장·발전했다. 중국공산당이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유연성을 발휘해 성공을 이룬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현재의 중국은 세 번째의 신중국이다. 중국을 잠에서 깨운 손중산 이후 마오쩌둥은 중국 천하를 제패해 통일을 이뤘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으로 중화 강산을 안정시켰다.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몰락한 구소련·동구권과 달리 공산당이 중국을 성공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이유는 꾸준한 변화와 혁신에 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은 국부에서 민부로(선부론에서 공부론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에서 국가 자본주의로(시장<국가), 발전도상의 대국에서 강대국으로, 대륙국가에서 해륙국가로, 집단지도체제에서  현능주의로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발전해 왔다.


2021년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 20차 당대회에서는 두 번째 백 년 목표와 비전을 제시했다.  ‘제3차 역사결의’ 등에서 제시한 핵심 키워드는 ‘새로운 중국의 길’,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일국양제’,  ‘공동 부유’,  ‘중국적 가치’ 등이다. ‘새로운 중국의 길’과  ‘중국적 가치’는 향후 중국이 나아가는 길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다.  

   

2021년 당대회에서 중공은 관행이었던 격대지정(隔代指定: 현 지도자가 차차기 지도자 지정)을 철회했다. 칠상팔하(七上八下: 67세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수 있고, 68세는 될 수 없다.) 원칙도 신축성 있게 적용하고 있다. 국가주석 연임 제한을 폐지하고,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을 제도화한 것이다. 미국과 전쟁하는 상황에서 ‘여시구진’하며 국내외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제 면에서도 중국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취해 낭비와 비효율을 없앴다. 국가발전 모델인 ‘국가자본주의’와  ‘베이징컨센서스’는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책임성 측면에서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중국이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은 무엇보다 강력한 혁신능력이다. 중국은 지금 현금을 보기 어려운 디지털 선진국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것을 기술로 해내는 블랙스완국가다. 첨단기술 혁신능력은 다방면에서 앞서가는 중국을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AI), 전기차, 태양광 패널, 로봇드론, 극초음속미사일 등은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아직 개발 도상의 대국 

    

그럼에도 중국은 개발도상의 대국일 뿐이다. 정치는 현대국가의 필수 요소인 공화·민주·헌정과 자유·법치·인권이 확보되지 않았다. 경제는 엄청난 규모에도 불구하고 속이 덜 차있다. 고속 성장에 따른 모순이 분출하고 있다. 중국 사회는 여전히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배금주의와 이기주의, 부정부패가 여전하고, 당과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자발적인 시민사회도 형성돼 있지 않다.

     

특히 자본주의 국가들 못지않은 양극화와 불평등은 과다한 부채와 부동산, 인구감소 문제와 함께 중국공산당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 인구 총 14억 명 중에 9억 명의 월평균소득이 2,000위안(약 36만 원)이다. 이 중 6억 명은 1,000위안 미만이다. 3억 명에 달하는 농민공 문제도 해묵은 과제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 앞에 놓인 4개의 함정(투키디데스 함정, 중진국 함정, 타키투스 함정, 서양화와 분열화)도 넘어야 할 산이다. 중국의 G1 등극 여부는 앞에 놓인 첩첩산중과 고산준령을 극복한 다음의 문제일 것이다.

     

2.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  

   

여전히 운명공동체     


중국은 2,000년에 걸쳐 애증이 교차한 한중관계 역사에서 한반도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온 나라다. 전통시대의 중국은 사실상 한국과 운명공동체였다. 한중 모두 상대방의 안정이 곧 자신의 안전을 결정할 정도로 양국관계는 숙명적이었다.

    

근현대 시기에도 한국과 중국은 비슷한 경험 속에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일제 식민지배를 겪었고, 제국주의 침탈에 공동전선을 펼치기도 했다. 비록 이념이 달랐지만 둘 다 미소 얄타협력체제와 냉전의 희생자였다. 1980년대 이후 비슷한 시기에 상호 의존하며 성장해 지금은 먹고살만하다. 드넓은 세상에서 오랫동안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다.

      

애증이 끊임없이 교차 

    

중국은 고조선 때부터 마지막 조선,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어느 페이지에서도 등장했다. 이웃 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좋은 일 나쁜 일, 미운 정 고운 정,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서로에게 필요한 파트너   

  

1990년대부터 한중 양국은 서로의 생존·발전에 꼭 필요한 파트너였다. 한반도·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경제발전은 공통 이익이다. 문화적 유사성도 양국 관계 발전의 중요한 배경이다. 한국은 부상하는 중국 옆에서 중국 특수를 누리며 발전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북한 편향 태도는 한국인들에게 실망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힘없는 나라인 한국이 불가피했던 사드 배치에 대한 각종 보복조치들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중국을 다시 생각게 했다. 중국이 더 부상할 경우 기대보다 두려움을 갖게 했다.

       

한국을 경이롭고 신비한 나라로 대접하던 중국은 2003년 경제적으로 한국을 추월하면서부터 얕잡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쯤이야’라는 중화패권 의식 하에 한국을 하대하는 인식·태도가 빈번했다. 한중관계가 자칫 전통시대와 같이 주종관계로 변질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빈말이 아니게 되었다.

    

반면, 부상한 중국이 한국의 평화와 안정, 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중국의 꿈이 실현되면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를 동반할 것이다. 이 경우 중국몽은 중국뿐만 아니라 이웃 한반도에도 평화·번영과 통일을 가져오는 길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미워하는 나라  

   

2015년에만 해도 한국인들 37%만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2017년 미국이 배치한 사드는 한중관계를 격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의 2021년 설문조사 결과는 6.8%만이 중국을 신뢰하고 협력할 국가로 꼽았다. 2022년 12월 미 외교 전문매체 디플로맷의 중국 인식 조사 결과에서는 한국인 77%가 부정적이었다. 2022년도 한국정부의 중국어 교사 선발 정원은 0명이었다. 1997년 이후 처음이었다.

 

한국인들의 중국 인식이 이렇게 나빠진 데는 여러 원인들이 있다. 이념·체제의 차이, 문화 민족주의적 갈등, 강해진 중국에 대한 경계심 등이 그것이다. 한중관계는 미국의 한국 내 사드 배치와 중국의 보복(한한령 등)을 기화로, 미중 패권전쟁이 본격화되면서 크게 악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중 패권전쟁에 따른 한국 언론과 학계의 미국 편향적 사고와 정서, 사실 왜곡 등이 충격적인 결과를 낳은 것이다.

    

부정적 여론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사실 한중관계는 점점  ‘불편한 동반자’ 관계로 변하고 있다. 경제는 협력보다 갈등·경쟁이 불가피한 구조로 가고있다. 미국은 동맹 한국에 ‘대 중국 견제’ 동참을 요구한다. 최근 미국은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과 강압에 적극 대응할 태세다. 한미동맹을 안보의 근간으로 삼는 한국은 중국 봉쇄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위기와 기회의 나라   

  

굴기한 거대 중국은 우리 시대의 경제적·지정학적 변화를 규정할 거대한 상수다. 중국의 굴기와 미중 패권전쟁의 결과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큰 도전이나 기회가 될 것이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오직 국익이 있을 뿐임"을 안다면 말이다.


먼저, 중국의 부상과 흔들리는 미국의 신식민주의체제, 아시아의 역량 성장, 그리고 미중 어느 쪽도 패권을 장악하지 못하게 될 G0시대는 한국에 기회다. 중국의 굴기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은 결단코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다. 중국의 대전략은 패권이 아닌 인류문명공동체다.

     

경제 면에서도 한국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됐던 중국은 지금도 세계 최대의 시장이자 연구개발기지이며, 4차 산업혁명의 실험장이다. 중국의 내수 증대를 통한 쌍순환 성장과 공동부유 전략, 중산층 증대 등은 더 크고 다양한 시장을 제공할 것이다.

     

다만, 과도한 중국경제 의존에 따른 위험이 안보문제와 결부된 보복의 취약성을 키울 수 있다. 중국의 무역구조가 바뀌고, 한국의 경쟁력이 저하되는 가운데 미중 패권전쟁 상황에서 자칫 중국이 한국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의 굴기에 대응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증대는 한국의 대북·북방정책에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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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중국은 몰라서는 안될 나라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말이 있다. 한반도와 중국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현실적으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다. 원교근공이라는 말은 이웃하는 국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싫어도 한국인들이 싫어하는 세계 1위 나라가 중국인 것은 정상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웃 중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대응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2022년 한중수교 30년을 맞아 8월의 양국 정상 축하서한과 11월의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중국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상호 존중과 호혜에 기반한 성숙한 한중관계를 위해 협력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실천해 나간다면 한중관계 현안들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중국을 필요로 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중국도 한국과의 갈등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혐한·혐중이 지배하는 지금의 한중관계는 미중 패권전쟁 직전인 2017년에 단행된 사드 배치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은 또 희생양이었다. 한중관계는 그 구조인 미중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권국이라면 그렇게 휘둘릴 일만은 아니다. 앞으로 한미일/북중러 대결 구도가 더 강화될 경우 한국은 북한과 미일과의 관계 처럼 중국과 관계가 단절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혐한과 혐중은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안들을 서로에 대해 감정적인 선입견이나 편견으로만 판단할 일이 아니다. 사실에 근거해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이 번성할 때 한국도 잘 살 수 있었다. 가까운 이웃은 멀리할 것이 아니라 절친으로 삼아야 이익이다. 절친은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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