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치 May 22. 2024

미중 간의 체제·질서 공방 논리

- 미국과 RBO의 위기

     

미중 패권전쟁은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세기적 게임이다. 


전쟁이 승부를 가린 과거 패권전쟁과 달리 오늘날은 총성이 없다. 아우성도 크지 않다. 하지만 지구촌 사람들은 생각 없는 관중이 아니다. 언론과 모바일, SNS를 통해 전해지는 전쟁 상황을 평가하고, 예측하며, 계산기도 두드린다. 이들의 각성·의지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큰 힘이다.

     

서구만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끝나고 있다. 세계는 미국 중심의 서방과 중국 중심의 비서방이 3:7의 비율로 변했다. 중국의 GDP도 미국의 70% 수준이다. 향후 미중 패권전쟁의 승패는 미중 양국의 시스템이 자국 내에서 어떤 성과를 내고, 해외에서 어떻게 처신하는지에 달려있다.

      

지구촌 사람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미중 간 경쟁이 치열하다. 힘이 곧 정의이고 보편인 시대, 거짓·위선이 통하는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가장 큰 힘과 영향력은 국제사회의 신뢰와 동의, 설득력에서 나온다. 미중 간의 상호 공방 과정에서 어느 나라의 논리와 처신이 더 합리적이고 정당성이 있는 것일까?

      

1. 미국의 공격·방어

     

패권전쟁에서 미국의 목표는 흔들리는 자국의 패권을 재건·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향후 10년을 결정적인 시간으로 보고, ①자국의 힘을 기르고 ②동맹을 규합해 ③중국과 경쟁하는 세 가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취하고 있는 대 중국 공세의 근거와 논리는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중국은 공공의 적

     

미국은 자국을 위협하고, 자국에 도전하는 중국을 괴물로 여긴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해 온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RBO: Rules Based Order)’ 속에서 미국의 지원·협력에 힘입어 성장해 온  배은망덕한 프랑켄슈타인인 것이다.


나아가 미국인들은 자국의 경제 침체와 안보 불안, 여러 사회 문제는 중국으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성공은 독재정치의 산물이다. 중국은 미국의 안정을 해치고, 미국의 가치와 국익에 상반되는 방식으로 세계를 재편하려 한다.”고 비난한다.

      

중국은 무법자, 수정주의 세력   

  

미국의 각종 ‘국가안보전략’ 문건은 중국이 서구식 민주주주와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은 중국을 공존할 수 없는 적으로 규정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의 굴기를 저지하고 약화시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지침은 “중국이 기술 혁신의 우월한 고지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자유세계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며, 서태평양을 내해로 편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가장 큰 위협요소 

    

미국은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중국 그 자체와 더불어 후계자 없이 ‘1인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를 가장 큰 위협으로 여긴다. 미국에 약 1억 명의 공산당원들이, 시진핑을 정점으로 일치단결해 안정·발전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의 지도부가 미국 체제보다 중국 체제가 더 우월하다고 장담하니  “파산한 전체주의 신봉자인 시진핑 공산당 체제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인권은 미국 영혼이다. 민주주의 가치와 인권은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의 핵심이다. 지키기 위해 싸우거나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영혼이다. 이념과 가치를 중시하는 냉전주의자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한다. 위험에 처해 있는 민주주의를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키자고 역설한다. 미국은 중국의 약한 아킬레스 건인 소수민족의 인권 상황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2. 중국의 대응·반격

     

미국이 자국을 은밀하게 전복시키려 한다고 생각하는 중국은 미국과의 이념 갈등을 중시한다. 중국공산당은 체제안보를 국가안보와 동일시한다. 중국은 미국의 자국 체제·이념에 대한 공격과 간섭을 치명적인 위협으로 간주한다. 사활을 걸고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민낯이 드러난 코로나19 사태 후부터 미국의 공격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아래와 같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문제와 실패 사례를 거론하는 한편, 중국이 나름의 ‘민주'를 구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에는 보편적인 모델이 없다.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의 생각은 단호하다. "민주는 미국이 원료를 만들고 전 세계가 한 가지 맛을 보는 코카콜라가 아니다. 자국의 역사와 문화, 현실에 맞는 제도가 가장 민주적이다. 모든 나라에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나 통치 모델은 없다. 미국이 민주와 인권의 이름으로 가치외교를 하고,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며,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면 혼란과 재앙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인민이 주인인 것이 중국 민주의 본질

     

과거 미국인들의 오랜 투쟁은 미국과 세계의 민주주의 발전을 촉진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미국 민주주의는 금권정치화 되고, 소수 엘리트 정치로 변질됐다.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균형의 원칙은 극단적인 ‘거부정치'로 변했다. 이에 중국은 "민주는 장식품이 아니다. 인민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선거 민주는 실제로는 자본이 지배하는 선거다. 기업 자본에 의한 금권정치는 유권자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중국 국호는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의 정치가 그야말로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것임을 강조한다.

      

미국은 인권을 논할 자격 없다.   

  

중국은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공세적으로 대응한다. "이 문제에서 미국은 중국과 세계에 빚이 있다. 미국은 인권을 명분으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며, 이미지를 훼손하고, 안정을 파괴해 왔다. 미국은 우선 자신의 인권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미국 의회폭동, 인종차별, 불평등·양극화 가속, 코로나19 사태 대응실패, 총기사고 다발 등은 미국식 민주주의의가 실패했다."는 증거라고 공격한다.

        

미국이 강조하는 자유와 인권, 민주주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은 과거 덩샤오핑이 한 말에 함축돼 있다. 그는 “인권이나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은 오직 강하고 부유한 나라들의 이해를 위한 것이다. 이들 나라는 자기네들의 힘을 이용해서 약한 나라를 괴롭히고, 패권을 추구하며, 힘에 의한 정치를 한다.”고 말했다.

    

3. 위기에 처한 미국의 패권질서

- RBO 관련 미중 간의 공방 논리

     

윌슨을 포함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들은 보편적 원칙에 기반을 둔 평화롭고, 민주적이며, 규범에 근거한 세계질서를 추구했다. 이는 현대 국제질서의 역사적 배경이자 지금도 작동하는 원칙이다. 미국은 이 질서의 주도자·운영자로서 많은 이익을 얻어왔다. 그런 미국이 쇠락하자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RBO)’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다방면에서 미국을 공격한다.

    

미국의 방어 논리  

   

미국은 중국을 미국의 이익·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힘을 가진 유일한 국가로 판단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RBO와 동맹의 네트워크에 도전하고 있다고 본다.

    

오늘날 미국의 핵심 목표는 흔들리고 있는 자국의 패권질서, 즉 RBO를 재건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유지·발전시켜 나가면서 동맹 및 파트너국들과 함께 체계적이고 복합적으로 중국의 굴기에 대응하고자 한다. 중국이 아닌 미국 중심의 민주국가들이 여전히 국제사회의 무역·기술 규칙을 만들고, 미국이 강력한 위치에서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IPEF, QUAD, AUKUS, NATO, 한미일 및 일본·호주·필리핀 등과 협력하며 인도·태평양 일대에서 중국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과 RBO를 유지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미국은 동맹들과 협력하며 공급망 재구축 및 국내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중국의 공방 논리  

   

중국도 힘이 커지자 생각이 달라졌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RBO를 인정하며 협력해 왔다. 그러나 미중 패권전쟁 이후부터는 미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적인 규칙·질서가 공정하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며 거부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이 현 국제질서의 가장 큰 파괴자라며, 자국이 2013년부터 주장해 온 '신형국제관계'에 입각한 중국식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의 RBO 거부 이유

     

중국이 미국의 패권질서인 RBO를 부정·거부하고, 이를 공인된 국제법 원칙과 규범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 미국이 자국의 특수한 경험을 토대로 보편적인 법칙을 강요하며, 자신들의 체제와 제도를 이식하려는 것은 제국주의적이고 패권적인 발상이다.

- RBO는 미국이 자국의 패권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도 미국의 패권을 의미한다.

- 미국은 민주라는 명목으로 소집단을 만들고, 인권을 구실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한다. 다자주의 깃발을 들고 일방주의를 밀어붙인다.   

  

중국인들은 특히 RBO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RBO를 ‘광범위한 법률체계’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RBO는 구체적으로 규정된 규칙이 아니다. 그 성격도 알 수 없다. 누가 규칙을 정하고, 어떤 국가들이 동의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국제법과 달리 담론에만 등장하는 국제법 규율 밖의 미국의 대안 체제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질서가 아닌 미국이 국익에 부합하는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설정한 패권질서다. 특히 RBO는 유엔 헌장과 각종 규약 등 국제법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았다. 정의되지 않은 미국식 예외주의가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제시하는 대안

     

중국이 제시하는 RBO의 대안의 대강은 국제정치에서 유엔을 중시하고, 국제경제에서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를 추구하는 것이다. 중국은 국제질서가 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며, 세계의 다극화와 국제관계의 민주화도 추구한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거부하고 ‘신형국제관계’를 주장한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와 함께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에 기초한 국제관계의 기본준칙을 지켜나가고자 한다. 중국의 입장“유엔과 BRICS, SCO 등 중요한 국제·지역 조직과 소통을 강화하고, 신흥시장국 및 개발도상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국제질서와 글로벌 거버넌스가 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발전토록 한다.”는 이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패권은 반드시 쇠락한다. 패권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세계가 원하는 것은 패권이 아닌 정의”라며 보다 공정한 국제질서도 강조한다.

     

중국이 러시아와 공유하는 이 같은 인식과 가치는 비서구 국가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다극체제, 다자주의, 주권, 내정 불간섭을 강조하는 BRICS 국가들의 외교정책은 미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 적지 않은 개발도상국들과 권위주의 국가들에게 상당한 매력과 설득력을 갖는다.

     

21세기,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대중들의 정치적 각성도 패권의 중요 변수로 등장했다. 고장 나고 무너진 미국의 정치행정 시스템과 다분히 일방적이고 예외주의적인 RBO가 국제사회를 지속적으로 매료시킬지는 의문이다. 지금처럼 미국의 그것이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정당성을 의심받는다면 더 많은 국가들은 중국 것을 대안으로 고려할 것이다.

      

러-우크라 전쟁 발발 후 곳곳에서 미국의 RBO를 잠식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북한은 핵 금기라는 국제규범을 깨고 군사적 목적의 핵무기 사용을 공언한다.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은 물론 러시아와의 무기 불법거래도  RBO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하마스 전쟁,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의 도발, 국제사법재판소(ICC)의 이스라엘 지도자 영장 청구, 고조되는 중국-대만 위기 등도 RBO가 약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 b ------     


있는 그대로 보고, 생각하자   

   

현재 인류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경쟁하는 ‘변곡점’에 서있다.  

    

미국식 대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질서도 흔들린다. 와중에 중국은 자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더 민주적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그럴듯한 대안까지 제시한다. 점증하는 미국의 조바심과 공포는 무리수를 더하는 모습이다.

      

한 나라의 정치경제 시스템은 국가의 발전과 국민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 그 성과는 결국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와 민주화의 정도에 달려있다.


이런 점을 두고 볼 때, 미국과 중국은 국민들이 행복한 민주국가가 아니다. 세계를 지배하려는 생각은 과욕이다.  

   

2024년 유엔 SDSN의 ‘세계행복보고서 (WHR)’는 미국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23위로, 중국의 그것은 60위로 평가했다. 2023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EIU의 민주주의 평가 지수에서 미국은 '결함 있는' 29위, 중국은 형편없는 148위였다.

       

주목되는 것은 북유럽의 핀란드와 덴마크·아이슬란드·스웨덴이 가장 행복한 나라 1∼4위를 차지한 것이다. 민주주의 지수에서도 1위 노르웨이를 비롯 3~6위(2위는 뉴질랜드)를 위 4개국이 차지했다. 이 나라들 모두 국민 복지를 중시하는 사회 민주주의 지향 국가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유 민주주의는 인류 전체의 공통된 가치이다. 그러나 세계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민주주의 모델은 있을 수 없다. 민주와 독점, 통제관리 정도의 문제이지 미국식 체제가 항상 우월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자기들 맘대로 해석하고 부정의를 일삼아 온 서구식의 ‘자유’는 오래전에 그 명을 다했다. 산업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국가의 체제·이념도 바뀌게 된다.  

   

저물어 가는 미국의 대 중국 공격과 방어에는 사실 힘이 없다. 논리적이지 않으며 생략도 많다. ‘다시 위대하게’와 ‘더 나은 재건’을 추구하는 미국의 몸부림도 국제사회에 매력적일 수 없을 것이다.

      

시대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미국 정치행정 시스템의 실패는 곧 미국의 RBO 실패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고쳐 쓰려는 미국의 현 국내정책과 시스템으로 ‘더 나은 재건’이라는 국가목표를 달성할 수 다. 대외 정책·처신에서도 그 타당성과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미국의 세기는 예상보다 더 빨리 저물어 갈 것이다.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