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치 May 29. 2024

한국을 위한 나라는 한국뿐

- 결론: 타국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동안의 지피지기 결과는 대략 3개다.


지난 100여 년 동안, ①한반도 운명을 좌우한 미국과 중국에게는 오로지 국익만 있었다. ②우리를 위한 나라는 한국뿐, 한국을 위한 미국과 중국은 없었다. ③다시 맞는 격변기, 한국은 국익을 위한 최선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남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나라는 없었다. 한민족의 시조국인 고조선과 가장 융성했던 고구려를 정벌했던 중국은 임진왜란과 6.25전쟁 시에도 조선과 북한을 구하기 위해 참전하지 않았다. 결정적 순간에 북한지역(땅)에 대한 지배력을 보존, 보가위국(保家衛國) 하기 위한 것이었다.

     

구한 말, 미국은 러시아의 팽창 저지 및 태평양 지배를 위해 조선의 일본 식민지화를 지원했다. 1945년 전후 대일전 및 전후처리 과정에서는 자국군 희생을 최소화하고, 일본을 독점하기 위해 한반도를 분단시켰다. 6·25의 빌미를 제공한 미국은 한국전쟁을 자국의 패권기반 마련에 적극 활용했다.  

    

우리가 지피지기 하는 이유는 미중 패권전쟁 중에 위태롭지 않기 위해서다. 또다시 그들의 희생양, 전쟁터가 되지 않기 위함이다. 한국이 해양대륙 세력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처신해야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까?  


1. 한국의 국익은 무엇인가?     


주권국의 외교 과정에서 선택·행동은 국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국익이 무엇인지 분명해야 보다 효과적인 외교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은 고유의 지정학과 정체성, 국익의 개념을 가진 적이 없었다. 한국과 주변 강대국인 중국·일본·미국과의 관계가 종속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에게 국익은 ①국토안보 ②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 ③미국적 가치의 확산이다. 중국의 국익은 주권·안보·발전이익(혹은 경제이익)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국익’ 또는 ‘핵심이익’은 무엇인가? 제대로 답변하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다. 학교에서 우리의 국익이 뭔지 배운 기억도, 생각해본 적도 없다.     


한국에 합의된 국익이 없는 이유 

    

국익은 주권국가의 존재 이유와 관련된 가치이다. 국가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표현되는 정치·경제·문화적 욕구와 갈망이다. 국민들이 추구하는 바가 곧 국익인 것이다.  

    

한국인들이 공유하는 합의된 국익이 있다면 그것은 '평화·안정과 번영, 남북통일'일 것이다. 이는 분단된 한국에서 추구해야 할 당위적 희망이자 비전이다. 그러나 보수를 자처하는 한국인들과 미국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근래에 남북한은 마치 합의라도 한듯 한반도 평화·통일의 싹들을 싹 지웠다.

    

한국의 국익은 어디에 더 있나?     


국내에서조차 합의가 안 되는 ‘국익’ 개념을 떠나 대륙과 바다 중 한국의 국익이 어디에 더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대륙과 바다는 대륙과 해양 세력의 전략적 요충인 한국에 중대한 지정학이다. 한국이 미국 또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전략적인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3면이 바다인 한국은 전형적인 반도의 해륙국가(海陸國家)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반도의 지정학은 대륙의 반도국가였다. 섬나라와 다르다는 인식이 지배했다. 전통시대, 조선에서는 오랫동안 바다로 나가는 것을 금지했다. 바다에서 얻을 게 별로 없고, 왜구에게 수시로 약탈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 이후 탈냉전 시기, 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북방정책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시베리아 철도·가스관 연결 등을 추진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도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통한 유라시아 대륙 진출을 꿈꾸었다. DMZ에 가로막힌 섬인 한국이 유라시아에서 제2 도약의 꿈을 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새 정부는 탈아입미(脫亞入美)에서 나아가 탈아입구(脫亞入歐)까지 하며 대서양 동맹인 나토(NATO) 정상회의에도 참여했다. 북중러 등 북방의 유라시아 대륙국가들과 사실상 담을 쌓고, 해양세력의 일원인 섬나라가 되었다. 자유와 인권, 법치라는 이념·진영의 논리와 반공 연대가 최선의 국익이라고 본 것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 한국이 당면한 대내외 문제들을 해결하고,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하나? 고래를 잡으러 태평양으로 갈까? 호랑이를 잡으러 유라시아로 갈까? 세기적인 전환기에 한국은 ‘지정학적 저주’를 회피하며, 국익 실현에 유리한 고유의 지정학적 길을 찾아내야 한다.

      

2. 변화하고 있는 국제정세의 향뱡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이 고려해야 할 국제정세는 3개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위기에 처한 미국과 미국의 패권이 몰락하면서 지구촌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각자도생 하며 헤쳐 모이고 있다. 최근 동유럽과 중동에서의 두 전쟁과 미국의 강력한 저지로 그 움직임이 다소 둔화되고 있으나, 유럽 이외 각 지역 국가들의 암중모색은 지속되고 있다.

     

동시에, 서구 제국들이 지배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침략·약탈의 500년 서구 제국주의 시대가 가고, 최소한의 도덕·윤리가 존재할 아시아의 시대가 다가 오고 있다. 이 또한 G7과 대서양 동맹(NATO)이 ‘역사의 이동’을 가로막기 위해 총단결하고 있으나 역사가 거꾸로 되돌려진 적은 없었다.


셋째는, 100년 미국의 패권은 지구촌의 마지막 패권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락한 이후 미국에 도전하고 있는 중국은 세계 패권국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다. 타국을 침략해 약탈할 수 없는시대가 돼 패권 이익보다 비용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특히 패권을 잡는 순간 '불균형 성장' 등으로 인해 내리막 길밖에 없는데 그 길을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복잡해진 지구촌을 1국이 지배하는 시대는 미국의 실패로 다시 없을 것이다. 향후 국제질서는 유엔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공동체가 나름의 평화·발전을 도모하며 협력하는 다자주의 체제가 될 전망이다. 패권국 없는 새로운 다자주의 시대는 더 민주적이며 공정한 세계가 될 것이다. 한국이 미국이나 중국에 편승하거나, 그들과 동맹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게 된다.  

   


3.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미국과 한미동맹은 오늘의 한국을 이룬 기반이다. 그러나 미국은 단순한 동맹이나 우방이 아니었다. 전후 한국 내 친일·친미 세력은 오늘날까지 미국이 이식한 정치경제 체제에서 근 100년을 주류 세력으로 호사를 누렸다. 그들은 미국식 프리즘을 통해서 세계를 보고, 미국에 의존하는 철저한 사대노선으로 한국을 지배해 왔다.


미국의 정치사회 닮아가는 한국의 정치사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충직한 미국의 동맹으로 미국화 되어있다. 한국 내 숭미 사대주의가 낳은 소미국(小美國) 사상은 전통시대 조선의 소중화(小中華) 사상과도 같다. 자연스럽게 지난 70여 년 동안 미국을 따라 배운 한국의 정치는 미국 민주정치의 부정적인 면을 가장 많이 닮아 있다.  

    

한국의 정치는 미국과 똑같은 양당 체제에서 싸우는 게 일이다. 국민은 선거 때만 안중에 있다. 선거 후에는 국가나 국민들보다는 자신들의 지지 기반의 이익 보호에 전력을 다한다. 한미 양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1위의 정치적 갈등·분열 국가다. 심각한 불평등과 양극화 사회, 최고의 노인·약자 빈곤율, 반공 매카시 선풍 등이 꼭 닮았다.

     

특히 정치 면에서 양당 정치의 기능부전, 기본이 안 된 대통령 선출, 막말과 선동, 편 가르기 진영정치는 실패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전형이다. 국경없는기자회의 ‘2023년 언론자유지수’에서도 한국과 미국은 닮았다. 미국은 45위, 한국은 47위를 차지했다. 한미 양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기는 어렵게 되어버렸다.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의 위기 

    

한국과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사실 허상일 뿐이다. 미국과 한국은 한때 선진국과 개도국 중 가장 성공적인  민주주의의 모델이었다. 경제의 발전도 이뤘다. 그런 미국과 한국이 지금은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은 벌써 절망적 상황이나 한국은 아직 희망을 버릴 때는 아니다. 미국은 정치의 기능부전으로 근본적인 정치개혁이 불가능하다. 오랫동안 무너진 교육시스템 속에서 자란 각종 '미국병'은 거의 치유불능 상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미국인들보다 더 깨어나 있다. 미력하나마 시민사회도 작동 중이다.  

    

아메리칸드림이 실패한 미국의 혼란과 중국의 건재를 보면서 이제 한국도 어떤 문명, 어떤 모델을 추구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몰락의 길에서 미국과 동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 자신만의 새로운 정치적 목표와 비전을 찾아야 한다.     


국익에 체제·이념이 따로 없다. 이념과 진영으로 판단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만능의 정치경제 제도는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와 안정, 자유를 누리는 나라들은 모두 민주국가다. 그러나 민주주의 장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국·영국 같은 민주주의 원조국도 실패하고 있다. 경제발전은 물론 사회적 불평등과 정치분열의 정도에 있어서도 중국보다 좋지 않다.

     

중국의 사례는 비민주 국가도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국민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후쿠야마의 독백처럼 중국식 자본주의(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책임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2010년부터 10여 년간 중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6.5%, 미국은 2.3%였다. 인프라 건설과 공공건설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혁신과 성취를 이뤘다. 종합국력과 국민소득도 크게 높아졌다. 국제사회에서 영향력과 발언권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천문학적인 국가부채로 연명하는 미국은 고속철도와 공적 의료보험이 없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실패에 따른 경제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이제 국가를 파괴할 정도로 난장판이다. 미국은 최상위 1%가 부의 39%를 차지하고 있다. 99%의 일반 국민들이 1%의 기득권층과 싸운다. 부자들과 대기업들은 선거와 로비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든다. 미국은 잘못된 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교정능력을 상실했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오작동 중이기 때문이다.

     

대안은 민주주의 시스템 대혁신   

  

미국의 위기는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위기이다. 미국의 가치였던 자유와 민주, 시장이 최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말해준다. 이제 민주주의 유토피아라는 청사진을 믿는 사람은 없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학계에서는 실패하고 있던 민주주의의 혁신 문제를 논의해 왔다.  

    

이와 관련, 오늘날 지식인들 사이에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가치들이 있다. ‘복지국가’를 용인하고, ‘권력분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혼합경제체제’를 인정하는 다원론이 그것이다.

     

민주주의 정치가 좋지 않은 정치체제라고 비난했던 옛 선현(플라톤과 처칠, 네루, 하이에크 등)들의 고민도 상기할 일이다. 실패한 민주주의가 정말 최악의 정치체제가 되기 전에 혁신해야 한다. 그 대안의 하나는 현 세계에서 가장 정치가 깨끗하고, 민주적이며, 국민들 모두가 행복한 북유럽 여러 나라들의 시스템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추구하는 주요 가치는 복지와 인권, 신뢰와 솔직한 공개의 정치다. 모두 깨끗함 속에서 자란 것이다.   

    

미국이 건국 초기 원용했던 혼합 정치체제인 로마의 공화정과 유사한 정치체제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식 민주정에 중국식 현능주의 민주론을 혼합한 정치체제를 고민할 수도 있다. 현능주의의 큰 장점은 국익만을 앞세우는 증받은 우수한 엘리트들이, 체제의 모순을 교정해 가며, 지속적인 발전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이 안되거나, 인지 능력이 의심스러운 고령자도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는 미국의 선거 제도와 다르다.     


------b------   

  

타국을 위한 나라는 없다.  

   

지피지기는 쉽지 않다. 쉽다면 위태로울 리도 없을 것이다. 한국도 미중 양국과 양국관계, 패권전쟁의 결과까지도 잘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렵다. 전쟁 중인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에 서느냐는 문제는 더 어렵다. 방법은 하나, 어려울수록 일관된 원칙을 유지하며 오로지 국익을 챙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고려해야 할 것으로 사료되는 사항은 아래와 같다.   

    

첫째, 불완전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외교는 이른바 ‘공동 이익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에 따르면 국제정치에서 보은(報恩)의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국가들끼리 손해가 나는 거래는 하지 않고, 은혜를 주고받는 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국익만 있는 국제관계에서 무슨 의리·연대를 중시하는 것은 순진한 것이다.

      

둘째, 현 시기에 본래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를 지배해 온 서구식 가치·이념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고 구조화된 기준이다. 각 국가들이 구현하는 민주주의 정치와 시장경제의 형태는 천차만별이다. 원형인 미국 민주주의도 이미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것으로 변질되었다.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사실 역사상 가장 권위주의적(독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인들의 사상·감정까지 지배한다. 거짓·위선에 얽매이면 국익을 그르친다.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돼 동맹의 이익을 국익보다 앞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지각변동 상황에서는 일방의 선택이 아니라 균형의 자세로 중심을 잡고 버티는 것이 상수라는 것이다. 미중 간의 전쟁 상황에서 한국의 일방 선택은 위험하다. 빚은 후에 몇배로 갚아야 한다. 사대의존을 심화시키고, 미래의 희망과 비전도 제한받게 된다. 국제사회는 국익을 쫓아 각자도생 하며, 헤쳐 모이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미국으로 달려갔다. 미국은 한국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미군도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지 않는데...

      

가장 중요한 일은 주권국이 되는 것이다.   

  

한국이 주권을 확보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 상술한바, 한국은 오랫동안 기본을 갖춘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었다. 7세기의 조선은 안보를 중국의 명나라에 의존하다 흥기한 후금 청에게 끔찍한 병자호란을 당했다. 19세기말의 조선은 이 나라, 저 나라에 의존하다 청의 몰락과 함께 일제 식민지가 되었다. 21세기의 한국은 미국에 기대어 어디로 가고 있나?    


선진국의 문턱에 선 한국의 가장 중요한 국익은 대국 의존에 있지 않다. 당당하게 홀로 서는 ‘자주독립’에 있다. 이는 2,000년 한국사의 최고 숙제이자 가치이기도 하다. 미군 주둔과 사실상 무한정인 전시작전권 위임, DMZ 이남지역의 유엔사(미군) 관할 등은 '자주적 주권 유지'라는 국가목표와 국익에 배치된다.

     

사실 그동안 한국이 추구해 온 평화·번영과 통일은 미망일 뿐이었다. 실현할 수 없는 것을 마치 실현 가능한 것처럼 국민을 속인 것이다. 혹세무민은 30년으로 족하다. 한국의 급선무는 안보와 평화·통일 정책의 자율성을 확보해 이를 국익으로 추구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주권국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과 같은 중견국인 튀르키예와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미중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양국을 이용하며 국익을 도모하고 있다. 이 국가들은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들이 아니다. 주권국으로서 당당하게 행동한다. 자기중심적인 주권국가 인식을 토대로 자국의 국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끝)

---------------------


PS: 이 글을 끝으로 제3권 '미중 패권전쟁 3: 지피지기' 편을 마무리합니다. 약 1개월 간의 휴식·충전 후 제4권 또는 준비해 온 다른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들을 보아주신 여러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분에 넘치게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로 등급을 올려 주신 브런치스토리 운영진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더 성실한 자세로 끊임없이 글쓰기에 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많이 고맙습니다. ^~^

    

이전 11화 미중 간의 체제·질서 공방 논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