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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치 Jul 18. 2024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붕괴

- 흔들리는 '규칙 기반 질서' 실태

      

지난 70여 년의 국제질서는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세계질서(또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였다. 미국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해 패권체제를 유지했다. 냉전시기의 미국은 무소불위의 세계지도국, 슈퍼파워, 국제경찰이었다.

      

미국 패권은 탈냉전 후 단극 체제의 오만이 초래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9년 브라운 영국 총리는 미국의 “워싱턴 컨센서스는 끝났다.”고 공언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죽음”이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미국 패권질서 와해를 향한 '쿠데타'였다.


미국이 동맹·파트너들과 함께 ‘더 나은 재건’과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고 있으나 패권 리더십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지금은 무질서(G0) 시대. 미국을 믿을 수 없는 지구촌에 다극체제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의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왜 이런 실정인가?

      

1. 국제질서 붕괴의 요인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붕괴 원인은 3개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근본 원인은 미국의 패권전략 실패가 초래한 국력 쇠락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즉 무모한 세계의 미국화 전략은 미국의 성장 둔화와 경제적 불평등·양극화를 초래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군사비를 과도하게 소모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는 지구촌을 이끌어 갈 힘을 잃었다. 그 사이에 중국은 고속으로 성장, 굴기했다. 미국의 쇠락과 중국의 부상이라는 구조적인 세력판도의 변화가 모든 것을 흔들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제1의 원인이자 책임은 미국 자신에 있다. 역사상 모든 패권 제국의 몰락은 타살이 아니었다.

     

둘째, 미중 패권전쟁과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후 새로운 세계와 질서가 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지금 큰정부/반시장, 편 가르기 속의 보호주의와 탈세계화, 디커플링, 각자도생으로 가고 있다. 거대한 전환기에 국제질서가 무너지면서 유엔 등 국제기구가 제 기능을 못한다. 국가들 간의 협력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냉엄한 국제정치는 새로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발흥도 촉진, 기존 질서를 잠식하고 있다. 미국이 설 땅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셋째, 미국이 흔들리는 틈을 이용한 중국의 외교와 차이나 머니가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동안 제3세계와 개도국 편이었던 중국에 미국의 위기는 절호의 기회다. ‘일대일로’ 사업, ‘중국방안’과 함께 중국의 국제질서관은 가치보다 실익을 찾는 개도국들에게 매력적인 것이다. 중국은 “모든 형태의 패권주의와 강권정치,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를 반대한다.” “개도국과 연대·협력을 강화해 다자주의를 실천, 인류운명공동체를 건설한다.”는 입장이다. 아프리카는 물론 중동과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은 중국 편이다. 최근 아프리카의 변화에서 보듯 모든 대륙이 점차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2. 각 분야 질서 붕괴의 실태     


미국 패권질서(RBO) 붕괴     


2022년부터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징후들이 봇물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미국의 위상을 시험하고 있는 국가가 한둘이 아니다. 고삐 풀린 북한은 러시아와 손잡고 핵·미사일 개발을 가속하며 겁 없이 핵무기 사용도 공언하고 있다.    

  

중동의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의 중재로 손잡았다.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전쟁원칙을 위반하고,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은 홍해와 수에즈 운하 해상교통로를 위협하고 있다.

  

핑크 타이드가 휩쓴 중남미의 강자들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멕시코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 미국의 ‘규칙 기반 질서’를 거부하고, 브릭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관계 수립을 주장하는 중국과 러시아미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2022년 베이징 브릭스 화상 정상회의에는 5개 회원국 외 브릭스에 동조하는13개 국이 참여했다. 2024년 초에는 5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세계 자유무역질서 붕괴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허물어지면서 세계의 자유무역시스템도 무너지고 있다. 미국의 망가진 정치가 자유무역 질서 붕괴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은 겉으로는 중국의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나 내부의 선거 표심과 경제활성화, 제조업 보호 및 재건 등을 위해 국제무역질서를 자유롭게 어지럽히고 있다.

     

최근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25→100%로, 반도체와 태양광 패널은 50% 인상했다. 관세폭탄과 함께 ‘자유무역과 시장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보호주의 조치에는 '워싱턴컨센서스'의 '신워싱턴컨센서스'로의 전환, 기업에 대한 국가의 막대한 보조금 지원, 1990년대보다 4배나 많이 사용되는 징벌적 제재 등이 있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시작한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는 자유무역 제도와 규범의 침식을 배가할 전망이다.

      

미국이 패권전쟁 시작부터 관세폭탄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이유는 산업기반이 부재한 실정에서 답이 없기 때문이다. 노답인데도 관세폭탄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경제의 효율성보다 선거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판단이 앞선 결과다.  


문제는 그동안 세계가 FTA 체결 등 관세장벽 낮추기로 이룩한 수많은 성취들을 미국 스스로 부정하면서 자국은 물론 세계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스스로 자의적인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 산업화 후발 주자였을 때 보호무역에 기댄 미국은 패권국이 된 뒤 자유무역을 주창했다. 중국의 가성비 높은 상품들로 자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없게되자 다시 보호무역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오랫동안 중국의 보호주의와 국가자본주의를 비난해 온 미국이 이제 중국을 따라 배우고 있다.


중국과 패권전쟁 중이고, 특히 '더 나은 재건'의 관건인 국내 '제조업 활성화'가 하루아침에 될 수 없는 일이라 무슨 원칙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국제사회가 모두 보조금 전쟁과 보호무역주의로 가면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유엔과 국제기구의 유명무실화     


사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자기들이 만든, 자기들 것으로 간주했었다.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국제기구는 존재의 의의가 없다고 공언했다. 국제기구들을 정치화해 자신들을 반대하거나 이익을 침해하는 국가의 제재에도 활용했다.


시대상황이 변하고 서구가 지배하는 시대가 저물자 국제정치경제 시스템을 보호했던 기관들이 없어지거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안보리를 비롯한 유엔은 사실상 기능정지 상태다. WTO는 미국의 방치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미국의 패권질서 유지 수단이었던 IMF는 중국 등의 지분이 많아지고, 환경문제와 금융안정보장 문제가 제기돼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C)도 전쟁 당사자들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국제금융결제시스템(SWIFT)도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국경 간 위안화 지급 시스템(CIPS)'를 이용하는 나라들이 많아졌다. 중국과 러시아, 브라질, 사우디 등은 양국 간 교역에 현지 화폐 활용을 강화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달러 기축통화의 위상이 흔들린다.

     

최근 주목되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 6월 9일 만료된 미국과의 석유 달러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면서 50년 만에 ‘페트로 달러'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소식이다. 페트로 달러의 종료는 미국 달러와 미국 금융시장에 큰 악재다. 세계의 달러 수요가 감소하면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 미국 채권시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중·러와 브라질의 달러 패권 도전도 기축통화를 무너뜨리고 있다. 미국의 세계 지배력의 기반인 달러 기축통화의 운명은 미국 패권과 운명을 같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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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붕괴·위기는 신세계의 기회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질서가 허물어지면서 그 자리는 중러의 거센 도전과 다극화 추세, 각 지역의 민족주의가 메워가고 있다. 미국의 필사적인 대응과 패권 재건 노력도 만만치는 않다.  

   

트럼프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바이든의 ‘더 나은 재건’ 전략은 미국이 21세기도 ‘미국의 세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압도적 군사 우위를 유지·강화해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패권 제국과 그 질서의 몰락은 역사의 순리이자 법칙인데도 미국은 로마의 천년왕국을 생각하는 것같다. 30여년 전, 역사를 잊고, ‘역사의 종언’을 외치면서 ‘역사의 이동’을 초래한 미국이 또다시 역사를 잊고 ‘역사의 종언’을 추구하는 형국이다. 미국의 상징인 자유 민주주의와 '규칙 기반 질서'가 심하게 흔들린데도...

     

미국의 패권 운영에 가장 오랫동안 관여해 온 핸리 키신저는 『외교』(1994년)에서 “새로운 세계질서는 마치 어떤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처럼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국가가 등장한다.”고 썼다. 4년 전 그는 “이제 미국이 세계를 이끄는 무소불위의 강력한 국가라는 의미의 ‘미국 예외주의’는 끝났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은 국제질서를 주도하는데 필요한 ①경제력과 군사력, ②국내외 거버넌스, ③지구적 공공재 제공, ④지구적 위기 대응 및 조정 능력을 대부분 상실했다. 패권을 유지할 능력과 의지가 거의 없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동맹과 파트너들에게 부담을 강요하며 스스로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들이 신뢰와 정당성을 잃으면서 미국 편에 서 있는 나라는 서방과 동맹들 뿐이다. 이제 미국은 동맹도 맘대로 지배할 수 없다. 패권의 받침목이었던 각 지역의 수많은 협력자들도 떠나고 있다. 동서 진영 외의  ‘나머지 국가들(The rest)’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가치보다 실익을 중시하는데 미국은 도움이 안되는 가난한 나라다.   

    

미국은 국가적 쇠퇴단계에 접어든 나라다. 산적한 대내외 문제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채 악화일로에 있다. 미국이 현 상황과 추세를 반전시키지 못하면 세계문제에서 손을 떼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국제질서의 규칙 기반은 힘을 바탕으로 한 거짓·위선과 기만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 공정에서 나온다.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는 서방 주도의 국제질서 붕괴 징후들은 새로운 규범과 질서의 창출을 촉진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공조·협력 대신 각자 국익을 쫓아 생존·발전을 도모하며 헤쳐 모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진영 간의 지정학적 편 가르기와 대결이 강화되고 있다. 미국과 중러 간의 전쟁이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힘이 변동하며 분산되고 있는 전환기의 혼란과 무질서의 위기는 새로운 세계질서 창출의 기회다. 서구 지배력의 쇠퇴에 따른 국제사회의 다극화와 탈세계화는 많은 개도국들에게 진정한 주권독립의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다. (끝)


필자가 찍은 서울 남쪽 삼성산의 삼막사 일주문(不二門) 우측 기둥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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