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9일, 필자는 『미중 패권전쟁 시리즈 1~4권』의 글을 열면서 부제를 한국의 꿈인 ‘통일한국과 K-문명대국 건설을 위해...’로 달았다.
그동안 4권의 브런치북, 54개의 글을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은 미중 패권전쟁 상황에서 ①역사를 통해 안목과 통찰력을 키워 ②보다 정확하게 전쟁의 현황과 추세를 분석하고, ③미국과 중국, 한국을 지피지기해 ④격변기 한국이 나아갈 대전환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지난 100년의 한국사가 요구하는 ‘한국의 꿈’은 일제 식민지배 후 못다 이룬 해방과 광복을 완성해 21세기 아시아 시대에 빛나는 ‘동방의 등불’이 되는 것이다. 즉 강대국의 속박으로부터 탈출해 ①자유독립과 ②평화·번영의 통일한국을 이뤄 ③세계를 리드하는 K-문명대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필자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한 이른바 코렉시티(Korexit)는 한국의 꿈(①②③)을 실현하는데 필수불가결한 대전제다. 왜냐면 한국이 미국의 속박으로부터 탈출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는 미래의 비전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한국의 정체성과 미래 비전
한국의 지정학적 정체성
한국의 지정학적 정체성은 통일을 추구하는 ‘분단국’이고, 해양·대륙 세력 사이에 낀 ‘중간국’이며, 선진국 수준의 국력을 가진 ‘중견국’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기술력은 세계 10위권이다. 문화적 역량도 크게 증대해 한국의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가 높다.
세기적인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우선 고유한 정체성에 기반한 국가비전과 국익을 규정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국력 결집과 전략적 외교가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의 국익으로 생각되는 「영토, 주권, 번영」과 미래 비전인 통일한국과 K-문명대국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한국은 식민과 분단, 전쟁을 겪으면서 사실상 DMZ에 가로막힌 섬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의 한국이 있지만 평화·번영의 한국과 한반도의 꿈은 태평양 바다에 있지 않다. 노태우 정부 이후 모든 한국 정부가 북방 유라시아 대륙에서 국가의 미래 비전을 추구한 이유가 이것이다.
역대정부의 모든 북방정책은 미중 패권전쟁 후 한미동맹이 강화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한미관계가 강화되고, 한국과 중국·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제한적인 대북한 정책과 대 중국·러시아 정책의 민낯이 드러났다.
중국은 한국의 자주독립과 외세개입 차단을 주문하고, 북한은 미국의 허락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국에 속았다며 한국을 미국의 충견이라고 비난한다. 러시아와 이란도 한미관계에서의 한국을 속국이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이런 실정에서 높아가던 한국의 국력과 위상이 2020년 이후 날로 악화되고 있다.
한국의 국익과 미래비전
한국은 국익 개념이나 미래 비전이 분명치 않은 나라다. 관련 담론이나 공론화를 볼 수 없다. 하물며 미래 한국의 비전과 꿈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과거 중화질서 속에서 중국의 속방이었던 조선도 그랬었다.
5년마다 바뀌는 국정목표는 있었어도 일관되게 추구하고 수호해야 할 국익이나 핵심이익은 없었던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은 한국이 완전히 해방되고 광복을 맞은 주권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익·비전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적 이익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익은 단순하다. 국가의 생존·발전과 자국 영토 내에서 타국의 개입이나 간섭 없이 자유로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주권을 지키는 것이다. 평화와 번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가 추구했다. 안전은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새로운 시대에서 국가의 주요 목표이자 가치가 되었다.
선진국인 한국은 ‘중요 국가이익’에 대한 개념 규정과 가이드라인을 수립·적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핵심이익’을 강조하고, 미국이 ‘사활이익’을 주장하듯 한국도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이익’이 무엇인지 규정해야 한다.
국익을 중심으로 하는 외교 원칙과 기준의 부재는 임기응변식 대응을 불러올 것이다. 한국이 강대국 사이의 제로-섬 게임에 연루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특히 미국과 한미동맹의 신화 속에서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듯한 한국의 모습은 위험한 것이다.
사실 한미관계는 비대칭 종속관계로 전통시대 한중 조공책봉관계보다 더 비정상적이다. 한국은 대북정책의 자율성은 물론 안보주권인 전시작전권도 없고, 영토 완정도 하지 못한 채 숭미 사대의존 의식이 가스라이팅돼 있다.
모두 나라는 자국의 이익을 분투한다. 동맹도 상호 이익이 될 때만 존속한다. 그런데 한미가 추구하는 국익은 다르다. 비대칭관계에서 미국이 허락해야 존재하는 한미관계에서 한미동맹은 사실 동맹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규정하고 있는 미중관계와 특히 패권국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은 현상뿐만 아니라 미래의 한국과 한반도까지 규정할 수 있다.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선진국의 중요한 조건의 하나는 국제정세를 읽고 판단할 자국만의 정의(定義)가 있는지 여부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은 적어도 100년 동안 자국이 어떤 국제질서를 꾸려나갈지 ‘큰 그림’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글이 제시한 Korexit(해방, 자유독립)⇒ 민족자결, 통일한국(광복)⇒ K-문명대국 건설과 같은 것 말이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신채호는 “한국의 자주·독립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의 요체다.”라고 강조했다. 주권자(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면서 한국이 이룰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은 없다. 대전환을 위한 한국의 새로운 외교원칙과 지정학적 위상을 설정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한국이 취해야 할 외교전략
미중 패권전쟁이 고조될수록 미국은 한국을 자국 편, 특히 한미일 동맹에 단단히 묶어두려 한다. 중국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동아시아에서 패권은 한국을 누가 지배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실정에서 한국이 선택해야 할 것은 불가능한 양자택일이 아니다. 어느 국가도 선택하지 않고 홀로 서는 것이다. 대신 변화한 한국의 정체성에 기반한 국가비전과 국익을 규정해 국력을 결집, 전략적인 외교를 하는 일이다.
한국이 선택해서는 안 되는 이유
미중 패권전쟁이라는 지각변동은 한국의 생존과 평화·번영, 통일과 직결된 문제다. 한국의 미래는 선택에 달려 있고, 선택은 향후 100년 동안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선택해 어디로 갈 때 아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미중이 전쟁하는 상황에서 일방의 선택은 타방의 비우호 전략 또는 보복을 불러오게 된다. 남들 다툼의 한 편에 참여하는 일은 우둔한 짓이다.
둘째, 한국은 이제 미국과의 종속·지배관계에서 벗어나 동등한 관계로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미중이 그들에게 린치핀인 한국에 러브콜 하고 있는 마당에 한쪽을 편드는 일은 전략적이지 않는 것이다.
셋째, 한국의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건 사실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한국이 미중 두 나라와 유대를 갖는 것 외에 실현가능한 선택지는 없다. 경제와 안보 중 어느 것도 희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세상이 흔들리면 우선 중심·균형을 잡고 버티는 것이 상식이다. 조급하고 어설픈 일방적 편승은 위험한 매국이다. 중국 중심의 아시아 시대가 오고 있는데 미국을 붙잡고 갈 수 없다. 전쟁이 오래 지속될 것인데 벌써 중국을 선택하는 것도 우습다.
한국은 어느 편에 서야 한다는 약소국 때의 피해의식을 버려야 한다. 오늘날의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선택을 강요받는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닌가.
미국이 추구하는 디커플링과 신냉전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다. 2024년 현재 70:30 구도인 신냉전 양상은 이념과 체제 대결이 아닌 서구와 비서구 국가들 간의 문명충돌의 결과다. 체제와 이념이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2020년 이후 한국 정부의 미국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따른 폐해는 아래와 같은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먼저, 많은 의문이다. 이념과 안보를 위해 미국과 함께 할 경우 한국경제는 지탱할 수 있는가? 중국을 배제하는 데서 오는 손실을 미국이 보상해 주고, 미국에서 보전할 수가 있는가? 중국을 적대시하며 한반도가 평화와 번영,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답은 모두 NO다.
둘째, 한국이 미국을 선택, 중국을 견제할 경우 한국은 미국의 대중국 봉쇄의 최전방 초소가 된다. 남북·한중 관계가 위태로워진다. 중·러와의 갈등은 한국 경제의 침체·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다. 신냉전의 심장부가 된 동아시아에서는 진영 간 갈등·대립이 고조, 한반도 문제 해결은 요원하게 된다.
셋째, 경제적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프랜드 쇼링의 최종 목적은 이제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등 첨단산업 제조를 미국이 다하겠으니 도우라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 중국을 반대하거나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무역과 공급망에서 한국과 미국은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아직 미국 내 제조업 관련 여건환경이 호전되지 않은 실정에서 삼성과 SK 등 한국기업의 성공 여부도 미지수다. 차이나 리스크에 미국 리스크가 더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안보 면에서 자유와 연대, 가치동맹을 강조하며 미국을 선택한 한국은 미일동맹의 하부구조로 전락, 구한말과 같이 다시 강대국들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외교전략의 원칙·방향
한국이 요구사항이 많은 미국과 중국 간의 전쟁 에서 곤혹스럽지 않으려면 국익이나 핵심이익을 분명히 하고, 원칙을 세워 양측을 설득해야 한다. 따라가는 한국이 아니라 원칙과 정체성에 입각한 일관성 있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 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국익과 미래 비전을 구현할 수 있는 한국 외교의 원칙, 고려사항을 정리해 본다.
첫째, 운명은 스스로 선택한다는 책임있는 자세다.
한반도 국가는 국력이 약했을 때 강대국이 운명을 결정했다. 이제 한국은 주변국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 선택하거나 선택을 받아 그 국가에 종속돼야 한다는 사대의존 근성을버리자.
둘째,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균형과 주도) 확보는 반드시 이뤄져아 한다.
미중 패권전쟁이 주는 전략적 공간은 한국이 대외정책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다. 한국이 나라의 주인이 돼 전략적인 자율성을 가질 때 역사를 스스로 쓸 수 있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많은 나라와 연대하며 공조하는 다변화 정책도 중요하다.
셋째, 변화에는 담대함과 배짱, 용기가 필수적이다.
한국에게 필요한 ‘균형과 주도’는 무모해야 할 수 있다. 신중하되 대담해야 한다. 특히 관성적인 해법에서 탈피해야 한다. 사즉생으로 결단해야 구조적인 판의 변화가 가능하다. 선택적 변화에 따른 타성의 반발과 저항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3. 새로운 100년을 위한 첫걸음: 종속 탈출(Korexit)
미중 패권전쟁으로 100년 만에 국제질서가 바뀌고 있는 문명사적 변환기에 한국의 선택은 국운을 좌우할 것이다.
세계 모든 국가들은 시대상황의 변화에 맞춰 각자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한국이 새로운 대외 전략과 비전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미국 화와이대 지한파 미래전략 전문가인 짐 데이터 교수의 조언은 상상력을 제공한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한국이 주목을 받을 때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한국이 해야 할 ‘3가지 도전’을 주문했다.
①한국은 이제 더 이상 선진국을 따라가지 말고 스스로 선도국가가 될 것.
②지금껏 한국을 발전시켜 온 경제·정치 논리는 미래에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니 한국은 21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길을 찾는데 앞장설 것.
③더는 기존의 동맹에 의지하지 말고, 외교관계를 다극화할 것이 그것이다.
데이터 교수의 ‘3가지 도전’ 은 필자가 말하는 코렉시티(Korexit: Korea exit)와 유사한 것이다.
코렉시티란 무엇인가?
과거의 한국은 무지하고 무력하며 사대하고 분열돼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제 한국은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익에 걸맞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강국이다. 그 길은 한국이 외교·군사안보적으로 주변 강대국의 지배·종속에서 탈출해 홀로 서는 코렉시티(Korexit)다.
코렉시티는 한국이 100년 동안의 식민과 분단·전쟁, 종속으로부터 벗어나 당당한 자유독립 주권국가로 일어서는 코렉트(Korerect)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는 강대국 결정론과 이념·진영의 논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한국의 외교전략이다.
한국이 한반도 지정학의 저주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역사적 과업이다. 2000년 대륙세력(중국)과 100년 해양세력(일본·미국)으로부터 벗어나 대륙의 반도국가로서 한국 고유의 지정학적 위상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코렉시티한 미래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대륙과 해양을 잇는 가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2000여 년 전의 그리스와 로마 제국과 같이 한국의 지정학은 동아시아 지중해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대륙의 연해지역(림랜드)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세계 속의 통일한국, K-문명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동아시아 바다 한가운데의 한반도
유럽 지중해 한가운데의 로마와 그리스
그런 점에서 코렉시티는 이쪽저쪽이나 탈아입구(脫亞入歐), 탈아입미(脫亞入美)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제3의 길(脫亞入球)’다.
일찍이 지중해와 유럽대륙의 반도국가인 그리스와 로마는 인류의 문명을 꽃피웠다. 국민적 단합, 남북이 힘을 합쳐 동아시아 평화·번영을 선도하는 통일한국은 동방의 등불이 돼 능히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코렉시티가 왜 필요한가?
중요한 것은 한반도 운명을 우리가 주도하고 결정한다는 의지·자신감이다. 주권국가로서 대외정책의 자유와 자율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강력한 힘, 국력 증강이 필수적이다. 비정상적인 한미관계도 정상화해야 한다. 특히 국방개혁과 함께 전시작전권 환수가 조기에 이뤄져야 한다. 종전선언과 유엔사 해체 없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통일은 빈말에 불과하다.
필자가 코렉시티를 주장하는 이유는 세기적 전환기가 한국의 해묵은 과제 해결의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제는 곧 한국을 지배해 온 미국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이 속국에서 탈출해야 비로소 자유독립과 통일한국, K-문명대국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각자도생 하는 시대에 한국도 자신만의 길을 내가야 한다. 주변의 강대국 다툼에 휘말리지 않도록 의존하지 않고 자립·자강해야 한다. 역사와 현실과 고유의 정체성에 기초한 새로운 길로 가야 한다. 최선은 홀로 서서 균형을 잡고 주도하는 외교다. 코렉시티는 한국과 한반도가 미래로 나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