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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코 Jun 11. 2022

일하는 아내와 살림하는 남편

프랑스에서도 흔한 광경은 아닌



프랑스로 파견이 결정되고 난 뒤 한국에서 신변정리를 할 때나, 프랑스에 도착해서 회사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당연스레 남편이 본국으로 돌아오고 난 같이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리 맞벌이가 많아졌어도 둘 중 한명이 일을 한다면 남편이 하는 편이 '당연'하니까?



누가 먼저 손을 들 것인가?

남편과 나는 몇년 째 눈치게임 중이었는데, 우리는 일하는데 그렇게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라 누구하나 연봉이 일정수준이 되면 연봉이 더 적은 사람이 놀겠다! 는 선언아닌 선언을 결혼 초에 했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수원-창원을 오가는 주말부부 생활을 하면서 슬슬 장거리에 지쳐가던 중이었고 둘 중 누구 하나는 곧 그만둬야 하겠구나..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 고양이들


창원집에 있는 우리 고양이들을 그리워하던 남편이 직장을 곧 그만둘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올 때 즈음 나의 파견이 결정 되었고, 출국일이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새해가 되자마자 냉큼 사직서를 던진 그는 희희낙락. 그 날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남편은 만나는 사람마다, 누가 물어보았건 말았건 해맑게 웃으면서 "제 와이프가 프랑스로 파견온거고 전 은퇴하고 집에서 살림해요!" (누구 맘대로 은퇴야 대체) 라고 말한다.

 

굳이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가 일하고 남편은 논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은 하던대로 계속 할거란다. "자기는 젠더 이퀄리티의 선봉장인데 자랑해야죠! 내 친구들은 전부 날 부러워 한다구요!" 아니 자랑하지 않아도 괜찮고 우리의 노후를 위해 남편이 일을 하면 좋겠지만 재충전이 필요하다면 쉴 수 있는 지금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좀더 오픈마인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의외로 전통적인 가치관이 만연하다. 이동네가 시골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직장 동료들도 당연히 남편도 일할 거라고 생각하고, 유럽에서 출생율이 가장높은 국가(프랑스 1.8명, OECD 평균 1.6명, 한국 0.8명, 2020년 기준)답게 30대 중반의 부부이니 당연히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남편은 무슨 일해?" (놀아), "그럼 애들도 프랑스어를 할 줄 아니?" (애는 없지만 고양이들이 있지. 우리집 고양이들은 프랑스어 못해)


거기다 시어머니가 남자가 돈을 벌어야지 계속 놀거니? 앞으로 뭐할거야? 이런 이야기를 틈날 때마다 하심. 좋은 소리도 자꾸 들으면 질린다는데 계속되는 잔소리에 자존심이 상할법도 하지만 남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건 엄마 생각이고"


고양이님들 수발드느라 정신없다구요



내가 살면서 만났던 사람중에 자존감 하나는 최고인 사람.  


입장을 바꿔서 남편이 돈을 벌고 내가 쉰다면 마음이 그렇게 까지 편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특히나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남편만 바라보고 있을 나를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나같으면 마음 편하게 쇼핑도 못하고 이래저래 자격지심이 생길 것 같은데 전혀 타격없는 우리 남편.


어쨌거나 개인적으로는 남편이 일하지 않고 집에 있어줘서 고마웠다. 프랑스어를 잘 못해서 별 도움이 안되는 나보다 프랑스인인 남편이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집도 구하고, 고양이들을 동물병원에도 데려가고, 여러가지 행정업무를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준비한 저녁. 우리둘다 요리에는 별 소질이 없는 듯



사실 남편의 직업은 곧 백수에서 학생으로 변경 될 예정. 프랑스에 온 김에 다른 공부를 해보고 싶었던 남편은 대학교에 지원서를 냈고, 가고싶었던 곳 중 한곳에 합격해서 가을학기부터 다시 '대학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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