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MBTI로 사람을 판단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남의 MBTI를 얼추 맞춰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추석에 사촌동생들의 MBTI를 한 번에 맞춰내서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물론 처음 보자마자 MBTI를 파악할 순 없고, 대화를 해 봐야 MBTI 유추가 가능하다. 처음 대화를 했을 때 E와 I 구분이 가능하고, 대화를 좀 더 자아내서 T와 F, P와 J 유추가 가능하다. 이 중에서 가장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성향이 N과 S이다. 아무래도 본인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관심이 있는지는 특정 주제를 던져 줘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MBTI 맞출 때 N과 S는 E와 I랑 붙여서 파악을 한다)
미디어에 나와 있는 N과 S의 특징들은 다들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 생각 안 한다고 했을 때 S는 정말 아무 생각 없고, N은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낼 만한 생각을 안 하고 있다는 것. S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N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다는 것 등. 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밸런스 게임처럼 특정 주제를 줬을 때 얼마큼 심도 있게 이 주제를 ‘즐기느냐’ 이다. 중요한 건 ‘즐기는’ 것이다. 특정 주제를 줬을 때, S도 N도 그 주제에 대해서 고민은 한다. 다만 내가 느꼈던 S와 N의 차이는 그 주제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났다. S는 특정 주제에 대해 해결을 하거나 정의를 내리고 넘어가려고 한다. 반면, N은 그 주제에 대한 다양한 옵션을 생각하거나 또 다른 주제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씹고 뜯고 맛보고 다 즐길 때까지 그 주제를 안 놔준다. 주어진 주제가 흥미로운 주제라면, 이 주제로 밤도 샐 수 있는 게 N이다.
그래서 MBTI의 특징에 대해 친구나 지인들과 이야기 할 때, 이 주제로 N과 S 구분이 가능하다며 보석함에서 꺼내는 주제가 있다. 지금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한다.
“만약에 네가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지금 의식불명 상태야. 그런데, 너의 배우자가 ‘먼 미래의 의학 기술로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판단한 거야. 그래서 너를 살리기 위해서 너랑 자기 자신을 냉동인간으로 만드는 데 서명을 했어. 그리고 냉동인간이 된 지 100년이 지나서 너랑 배우자가 깨어났어. 이 때, 너는 배우자에게 고마워할 것 같아, 아니면 원망할 것 같아?”
이 때 마치 골이 따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 S이다. N이라고 하더라도 N 성향이 다소 약한 친구들도 따분해 하긴 했다. 하지만 N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사람들은 이런 주제를 주면 큰 관심을 보이며 열띤 토론을 이어나갔다. 심지어 이런 토론을 즐기고 있었다. 한 번은 ‘팟칭팟’(아마 종종 등장할 것이다) 이랑 파티룸을 빌려서 놀았던 적이 있었다. 체크아웃이 오전 10시였는데, 아침부터 이 주제로 토론을 하는 바람에 체크아웃 1분 전에 부랴부랴 나왔던 기억이 있다.
참고로, 나는 원망한다는 의견이었다. 나의 세상은 배우자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고, 내 가족, 내 친구들, 내 커리어, 내 취미생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100년뒤면 내 세상은 배우자 말고는 전부 사라져 있는 상태일 것이다. 내 세상이 사라졌고, 100년 뒤면 100년이라는 간극이 생겨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도 힘들 것이다. 나는 깨어나자마자 100년 뒤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부터 고민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를 냉동인간으로 만든 건 내 세상에 오로지 본인만 있으면 된다는 오만에서 온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러자, 고마워한다는 의견을 가진 친구가 어쨌든 나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고, 100년 뒤에 깨어나게 되면 우리가 인류 최초의 냉동인간일건데, 그러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될 것이고, 100년 뒤의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복지제도도 잘 되어 있지 않겠냐고 이야기 하였다. 그 뒤로 정책의 초반은 잘 될 가능성보다 보완할 점이 더 많아서 초반 정책은 좋지 않을 거라는 둥, 냉동인간에서 깨어나면 이걸로 컨텐츠가 되어서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둥 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내가 기억하는 이 주제의 마지막은 ‘100년 뒤면 화폐 가치가 달라지니, 돈을 은행에 넣을 것이 아니라 절대 망하지 않는 주식에 넣고 냉동 되러 들어가야 한다.’ 였다. 똑 같은 주제를 S인 친구에게 이야기 했더니 벌써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왜 그런 걸 벌써 고민해? 100년 뒤의 남편이 알아서 하겠지.”
라고 했다. ‘끝이야?’ 라고 물어봤더니 끝이랬다.
이렇게 N과 S의 반응이 다르다. 그래서 매번 N과 S를 구분하는 질문이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 주제를 소개한다. 한 번은 내 오랜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이 주제에 달려들면 N이고, 흥미가 없으면 S야.”
“그래서 너는 어떤 의견인데?”
“나? 나는 원망할 것 같다는 쪽이야.”
“왜?”
“난 내 동의 없이 나를 냉동인간으로 만드는 건 내 세상이 오로지 본인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오만한 생각에서 온 판단이라고 생각해. 그냥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게 추잡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니까.”
“야, 나는 내 배우자가 이런 생각하면 서운할 것 같아. 나는 고심해서 내 배우자를 살리기 위해 냉동인간을 만들었는데 내 배우자가 이런 생각하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아.”
예상 가능하겠지만, 이 친구도 N이다. 나와 내 친구는 S들 사이에서 왜 원망스러운지, 왜 고마운지, 100년 뒤의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S인 친구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뭐 그렇게 진지하게 이야기 하냐는 둥, 이건 T와 F의 차이 아니냐는 둥, 이 주제로 정책까지 나올 일이냐는 둥 다양한 이야기로 우리를 신기해 하였다.
하지만 N과 S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실에선 못 볼 법한 터무니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은 무조건 N이라는 것이다. S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왜냐하면 본인도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이런 질문이 재밌을거란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 같다. 하지만 N들은 수많은 ‘만약에’를 자아낸다. 마치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처럼, 맛있는 주제에 구미가 당길만한 옵션들을 붙여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민다. 그러면 또 이 주제를 들은 다른 N들이 몰려온다. 그리고 이 주제에 맞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N들의 잔치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주제가 재미있냐고? 물론이다. N이 당신에게 이런 비현실적이고 터무니없는 주제를 옵션까지 잔뜩 붙여서 가져온 건 당신을 고뇌와 곤란의 늪에 빠트리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당신과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파티에서도 원하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가 없듯이, 이런 질문이 그저 따분하다면 넘겨도 된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상상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혹시 또 모르지. 이런 일이 진짜로 일어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