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희미해지는 시댁
추석 당일 아침, 어머니께 영상 통화를 걸었다. 명절 때마다 당일 아침 차례시간에 맞춰서 전화를 드리는 것이 룰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추석은 달랐다. 아버지가 운전을 하시고 어머니께서 조수석에서 전화를 받으셨다.
"어~ 이번부터 차례 안 하기로 했다. 외할머니 면회 가는 중~"
자세히는 모르지만 내가 결혼하던 해에 재혼식을 하셨던 둘째 작은아버지께서는 몇 해 전 이혼을 하셨고 그 이후 명절에는 시골집에 안 오신다고 들었다. 막내 작은아버지 댁은 그나마 아가씨와 도련님이 있어서 제사와 차례를 참석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막내 숙모도 안보이시기 시작했다. 그러다 작년부터 막내 사촌 아가씨는 교환학생으로 유학을 갔고 막내 사촌 도련님은 군입대를 했기에 우리 세대들 중에는 시할머니 댁에 오는 손자손녀들이 점점 줄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말로 들었을 때는 막내 숙모가 어떤 일로 마음이 상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부터 며느리 안 한다고 했다고 들었다. 이렇게 시댁은 희미해지고 각자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도 그랬으니.
우리 어릴 때야 명절에 우리 집으로 친할머니와 작은아버지네 식구들이 오곤 했다. 친척들을 만나고 사촌들과 시간을 보내곤 했던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했던 명절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오빠와 사촌언니가 결혼을 하고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모시고 나서부터는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끼리만 명절을 지내기 시작했다. 허전했지만 당연한 것도 같았다. 새언니와 조카가 있다 보니 그 변화가 그리 이상하지도 않았다. 친정에서 겪은 그 시절을 시댁은 지금 겪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관계라는 것은 변한다는 것. 특히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누구 하나의 희생으로 덮고 나아갈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우리 어머니는 열아홉에 아버지를 만나셨다고 한다. 그때부터 아버지 집에 드나들며 일을 돕기 시작했고 대학을 졸업 후 스물다섯에 결혼하셨다고 한다. 그로부터 거의 40년을 큰 며느리로서, 딸 없는 집에 때로는 큰 딸 역할을 하시며 희생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만큼 가족들의 관계는 이어지지 못했고 기나긴 서사 속에서 돈 문제도 살짝쿵 얽혀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어머니가 그 사슬을 지혜롭게 끊어내시길 바랄 뿐이다.
명절만 되면 가지 못(?)하는 마음을 무겁게 가지고 있기만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역시 시댁도 존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