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
본래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스스로 갈고닦지 않으면 태생적으로 이기적이며 별로이기에,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에 나도 물론 포함이다.) 그러나 얼마 전 나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과 나는 앞으로도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깨달았다. 실제 나는 타인을, 사람들을,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르는 이 마음이 상당히 큰 사람임을 깨달았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채고 나서야 비로소 관계에서 겪고 있던 불편감들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나간 인연들이 떠올랐고 앞으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래전부터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가 풀린 듯, 마음 한편이 상쾌했고 가벼워졌다.
그동안 나는 관계를 시작하고 가까워지는 방법에만 능했다. 가까워지다가 또는 가까이 지내다 자연스럽게 연락이 줄어들면서 멀어지는 관계들도 많았지만, 내 마음이 상했거나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서로에게 곤란한 상황에 처하곤 할 때마다, 나는 못나게도 매번 관계에서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사람 사이에 약간의 거리는 서로를 숨 쉬게 하고 오래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 있는 돌담을 보며 배우고 있다. 그 거리가 많이, 아주 많이 멀어져도 괜찮다는 것도. 그 틈이 아주 커도 괜찮다. 서로 닿아만 있다면 말이다. 사람마다, 시기마다 거리가 다른 것 또한 당연하고 괜찮다는 것도 배우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떠오르는 얼굴들이 참 고맙다.)
나와 생각이, 의견이 다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지속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이어가기가 어려웠던 이유를 알았다. 내가 매번 관계에서 과속방지턱처럼 느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바로 좋아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걸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뜻이 아니듯, 이해한다고 해서 좋아한다는 것 또한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둘은 다른 영역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었다. 좋아하면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게 되면 좋아진다고 잘못 생각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동안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지나간 많은 인연들, 불편했던 시댁과의 관계, 아직 풀리지 않은 원가족과의 문제들을 돌아보니 마음이 훨씬 헐렁해지고 시원해졌다. 우리는 그런 헐렁한 틈을 두고 있어야 서로 성장한다는 것 또한 알았다.
좋아함과 이해함의 두 가지 큰 기둥 사이에서 나는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좋아하지만 이해가 안 될 수 도 있고,
이해는 되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좋아하지도 않고 이해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세 가지의 경우 중 우리가 제일 힘들어하는 경우는 '좋아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경우'다. 대부분 그래서 갈등을 겪고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즉 싫어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았다. 나의 경우에는 이해는 안 되지만 좋아했던 적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다.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았고 이해가 되지 않아 싫어한다고 오해했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좋아할 수 있지. 좋아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 둬. 소중한 마음이니까.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마음도 그대로 둬. 이해하려고 너무 많이 애쓰다 좋아하는 마음까지 상하게 될지도 몰라. 이해는 시간에 맡기자. 이해는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이미지 출처: 오늘도 돌고돌고돌고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