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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n 06. 2024

오빠 독립 만세

그렇게 나는 유관순이 되기로 했다.

오빠는 퍽하면 세차장을 팔 거라는 소리를 하며 생계를 위협하는 엄마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맞다. 항상 엄마는 오빠를 못 미더워했으며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빠가 스스로 하기 전에 본인이 나서서 했기 때문에 늘 오빠는 부족한 아들이 됐다. 그리고 늘 평가자의 태도로 우리를 대했다. 사실 엄마도 이번 세차장을 팔겠다고 하는 게 단순히 오빠가 위기감을 느끼도록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셀프세차장에서 나오는 매출로 세차장 대출이자를 내야 하는 데 금리가 너무 올라서 또 다른 대출로 막고 있고 더 이상은 감당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경제가 어려우니 그동안 숨겨왔던 갈등들도 함께 드러났다. 나는 이 참에 오빠가 아름다운 독립을 했으면 싶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오빠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아볼 기회였다.


"엄마는 맨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세차장 판다고 하는 데 그러면 나는 세차장에 정이 떨어지고 나도 다른 걸 찾아봐야 하지 않겠냐? "

"아니지. 지금은 매출이 저조하니까 영업이 잘된 상태에서 팔아야 할거 아냐. 그럼 오빠가 매출 끌어올려서 팔고 난 수익 얼마 달라고 해서 몇 달 쉬면서 다른 거 알아보고 그 돈으로 하면 되잖아. "

오빠는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인 듯 보였다. 막상 독립을 하려니, 다른 일을 찾으려니 겁이 나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반면 엄마는 나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래서 나는 오빠가 제주에 오면 엄마에게서 알아낸 세차장 대출현황과 매매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겼다. 바로 새언니였다. 나는 오빠가 새언니를 설득해 제주에 오는 것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부 사이일은 다 알 수 없지만 언니는 반대했고 그 일로 오빠와 다투기까지 했다고 하니 마음 편히 오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빠의 제주행은 없던 일이 되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만나는 것이 필요했고 이미 나는 총대를 멘 상태였다. 내려놓기엔 너무 멀리 왔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몇 년째 반복되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 나도 지겨웠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말이 많아졌고 나도 모르게 과몰입되는 듯했다. 옆에서 내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너무 감정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언했지만 나는 밤에 잠이 쉬 들지 않았다. 겨우 잠 들고나서 세 시간 만에 잠에서 깼다.


가족회의를 열기로 했고 세차장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가 사회자를 맡기로 했다. 오빠가 오지 못하니 내가 가야 했다. 비행기 표를 끊었다. 회의에 앞서 필요한 자료들을 각자에게 요청했다. 그날 저녁 오빠는 못하겠다며 공지용으로 사용하는 그룹채팅방을 나갔다. 보이콧을 해버리고야 말았다. 당황스러웠고 어떤 점이 오빠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오빠는 그동안의 일들이 파노라마로 지나가면서 감정들이 올라와서 혼란스럽고 불편해서 못하겠다고 했다. 아마도 엄마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용솟음쳐 감당이 안되고 있는 듯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도 처음 일을 시작하고서는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2년간 엄마를 욕하고 저주하고 혐오했다. 스무 살에 진작에 놔주고 독립을 가르칠 것이지  자기 마음대로 다하고 이제 힘 빠지니까 (필요 없어지니까) 독립하라니 너무 일방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희생과 헌신으로 이날까지 뒷바라지해 준 엄마를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 또한 혐오스러웠고 싫었다. 혐오와 분노가 최고치에 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엄마에게 반려자가 생겼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고 교제를 시작한 무렵이 우리 집에 오는 게 뜸해지고 나에게 독립을 요구했던 시기였던 걸 알고 난 이후 한동안 배신감에 휩싸여 고통 속에 지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오빠의 보이콧을 보며 이제는 예전처럼 붙잡거나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새로운 짝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는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혼밥과 혼술 하는 시대가 아무렇지 않은 나와는 다른 세대이기도 하지만 성향 자체가 대상이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안타깝게도 대상으로 인해 생긴 본인의 역할에서 자존감을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해야 본인을 확인할 수 있는 지옥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는 예를 들어 설명을 했다. 갈비가 먹고 싶어도 혼자 먹으러 갈 순 없으니 딸네는 멀리 살아 안되고 아들네와 먹어야 하는데 메뉴를 정하다 보면 결국 손녀가 먹고 싶은 걸 먹어야 했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반려자와 본인이 먹고 싶은 걸 둘이 먹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했다. 나는 요즘은 혼밥을 먹는 시대라 나는 혼자 먹을 것 같다니까 엄마는 바로 화를 내며 너는 지금 남편이랑 아들이 있어서 그렇다며 안 당해보면 모른다고 까지 했다. 당한다는 표현 자체에서 엄마의 피해의식이 상당해 보였고 엄마의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건드렸는지 버럭 했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에 가시 박히듯 꽂혔다. 굉장히 불쾌하고 아팠다. 나는 속으로 혼자도 잘 지내는 사람들도 많고 이성이 아닌 동성 친구들과 유대감을 가지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엄마는 꼭 자기가 선택한 반려자라는 답만이 정답이라고 우긴다고 생각했다. 사실 엄마의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집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데 나 또한 저렇게 행동한 적이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내가 이날 이때껏 좋은 어른을 만나지도 못했지만 가장 영향력이 큰 부모가 저런 이상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엔 엄마도 깨닫고 고치길 바랐다. 그러나 이제는 갈등이 생길만한 상황을 적당히 피해 갈 뿐이다. 엄마의 저런 면은 고치기도 어렵고 고칠 수도 없었다. 항상 본인은 맞고 남은 틀리니까.


엄마는 우리를 독립시키지 못했던 이유가 오빠와 나를 결혼시키고 본인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재고 따졌던 것 같다. 엄마에게 우리는 자식이기 전에 자신이 늙고 병들어 힘들 때 의지하고 함께 살아갈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뒷바라지를 해가며 그 끈을 놓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에게 부모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그러나 나의 부모는 아니었다. 자신의 노후를 책임지는 대신 지금 너희가 힘없고 힘들 때 도와주는 것이었다.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했다. 상호 간의 동의된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닌 일방적인 기브 앤 테이크여서 문제였다.


내가 오빠보다 먼저 내쳐진 이유는 거주지의 문제와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우리 부부와 아이로 확실하게 선을 그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나는 일찍이 서울에서 살다가 결혼해 엄마의 생활권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문제가 가장 컸고 오빠는 같은 도시에 있으므로 친선관계를 유지했어야 했다. 정말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엄마는 지금 외할머니를 갑자기 큰 외삼촌댁에서 모시고 와서는 “내 부모니까 내가 모신다”라고 하는 것도 나름의 빅픽쳐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모님이니까 모시는 사람들은 굳이 그걸 강조하지 않는다. 엄마의 패턴은 항상 그랬다. 마음과 다른 말을 하며 그런 척 살아가기도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무서운 사람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엄마는 돈이 중요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본인만 모를 뿐이다. 모든 관계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거나 돈 때문에 관계의 문제가 생기는 걸 보았다. 엄마는 돈이 없으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불안하고 짜증이 난다. 이유는 있다. 엄마는 어렸을 때 가난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집에 빚쟁이들이 와서 앉아있으면 물을 떠다 드리면서 “저희 엄마가 돈이 없어요. 조금만 미뤄주시면 안 될까요? ”라고 대신 사정했어야 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런 가난이 지긋지긋했고 그리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해 미친 듯이 돈을 벌고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돈은 벌었지만 남편 잃은 미망인이 되었다. 그렇게 돈에 대한 열등감은 남편 없는 열등감으로 변질되었고 남편은 없지만 우리 남매를 보란 듯이 잘 키워 남편 없는 열등감을 채웠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엄마의 열정과 헌신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엄마가 바라던 판검사나 의사가 되지 못했다. 엄마의 열등감은 우리가 채우지 못했다. 철저히 실패했다. 실패의 이유는 자신의 열등감을 타인으로 치유하고자 했던 엄마의 의도가 불순했던 탓 이리라고 나는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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