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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n 06. 2024

행운이라는 꽃

학부모 줍깅 모임

월요일이다. 아침 식사로 토마토와 계란, 치즈로 피자를 만들었다. 우리 집 아침 메뉴는 사과샐러드나 시리얼, 주먹밥 같은 간단한 걸로 먹는 편이다. 아침을 먹으며 아이가 말했다.


“아, 오늘도 주말이었으면 좋겠다.”


월요병이 생길 만큼 컸구나 싶어 흐뭇했다. 오늘은 아이와 함께 등교하는 특별한 날이다. 평소에는 남편이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을 하지만 오늘은 학부모 쓰레기 줍깅 모임이 있는 날이라 나와 함께 가기로 했다. 아침 9시에 학교에 모여 한 시간 동안 학교 운동장과 학교 주변 마을을 돌며 쓰레기를 줍는 것인데 학부모 모임이 처음인 나는 가기 직전까지도 갈까 말까 갈등을 했다. 육지에서는 일하느라 학부모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핑계가 마음을 편하게 했다.


나는 수줍음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 가는 것보다 소수의 사람들과 소소한 관계를 선호한다고 성격 검사 결과지에 나와있었다. 맞다. 그런데 요즘 나의 무의식은 그런 점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자꾸 나를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이끌고 있다.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일까. 채우고자 하는 본능일까. 내가 힘들어하는 상황인 줄 알면서 자꾸 상황을 접하고 싶어 한다. 아무래도 안 좋았던 기억을 좋은 경험으로 지우고 채우고 싶은 본능이 꿈틀 거리는 것도 같다. 그리고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또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마침 제주에 와서는 일을 쉬고 있기도 하고 육지에서와는 달리 학교에 가는 걸 매우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면서 학교일에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또 애매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쓰레기 줍기라는 활동이 확실한 모임이라서 참여해 볼만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고등학교 때부터 해온 실천이 있다고 한다. 바로 쓰레기 줍기. 오타니 쇼헤이는 자신에게 운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들이 꺼려하는 쓰레기를 주웠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결혼식 때 펑펑 운 이후 작년 LG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해서 눈물을 보일만큼 야구를 좋아하는 남편이 알려주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한 번 오늘은 오타니가 되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도 운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실 요즘 나는 돈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일들을 하며 삶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그림책 동아리도 그렇다. 그림책 선생님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내적 풍요로움을 경험하고 있다. 선생님들의 나눔과 선행을 통해 삶이 더 풍성해지는 아이러니를 느끼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나가는 그림책 모임에서 매번 느끼는 것처럼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에서 모자를 쓰고 내렸다. 주차장에서 교문 앞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떨렸는지 모른다. 아이친구 엄마들과의 관계는 참 어렵다. 엄마라면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내 감정과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해 끌려가며 참고 상처받았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지나가면서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비장하게 걸어갔다. 교문 앞에서 교장선생님께서 맞이해 주셨고 나의 다짐과 비장이 무색할 정도로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마침 아이 반 대표 엄마가 나를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나는 그동안 수줍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수줍음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모임을 불편해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냥 말없이 있는 내 모습도 괜찮게 느껴졌다. 출발하기 전 (어디에 올라갈지 모를) 단체사진도 찍고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몇 학년 몇 반 아무개 엄마 누구입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했던가. 엄마들은 제일 중요한 본인들의 이름을 가장 마지막에 말했다. 엄마란 아이가 태어남으로 존재하는 것이긴 하지만 나는 아이의 학년과 이름보다 엄마들의 이름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다 기억은 못했지만.


두 팀으로 나뉘어 마을을 돌기로 했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 묵묵히 쓰레기를 열심히 주웠다. 생각보다 없는 쓰레기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였던가. 어느새 들고 있던 봉지가 제법 무거워졌다. 감기기운이 있어 긴팔을 입고 나간 터라 덥다고 느낄 때 즈음 화단에 물을 주시던 할망이 우리를 보고 예쁜 꽃모종을 줄 테니 가져가려냐고 물으셨다. 주시면 받는 게 또 도리 아니겠는가.


“나눔 해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

라고 대답을 하자마자 빈통을 찾으러 들어가셨다. 주는 일이 이리도 신나는 일인지 할망의 발걸음을 보며 나는 또 느꼈다. 숙련된 호미질로 여러 개를 금세 슥슥 캐내서 담아주셨다.


“감사합니다. 잘 키워보겠습니다.”


할망의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오타니 쇼헤이 생각이 났다. 빙그레 웃음이 났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행운이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우리 집 뒷마당에 조그마한 텃밭이 있는데 거기에 심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꽃을 볼 때마다 오늘을 떠올리겠지. 이렇게 두렵고 상처받았던 기억은 좋은 기억, 행복한 기억으로 바뀌어 간다. 참 감사할 일이다. 꽃을 받아서 처음 모였던 곳으로 갔다. 꽃모종을 다른 엄마들과 모두 나눠 가졌다. 더 마음이 풍성해졌다. 우리가 나눔을 받아온 걸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눔을 하는 기쁨이란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법이다. 나는 그렇게 인간다움을 조금씩 배우고 성장해가고 있다.


할망이 주신 꽃 모종


집에 가는 길에 남편에게 자랑했다. 줍깅하는데 할망이 주셨다고. 남편이 답장을 보냈다.

“오 이런 행운이 오타니“

“ㅋㅋㅋ야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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