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이스 Jun 24. 2024

첫 번째 질문

나에게도 질문이 필요해

두 번째 그림책 수업이 있는 날이다. 이번 시간은 어떤 그림책일지, 또 나의 어떤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설렘과 기대를 안고 삼십 분을 달려 강의실에 도착했다.


<첫 번째 질문> 그림책


이번 수업은 <첫 번째 질문>이라는 그림책이었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에게,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질문을 잘하는데 나 자신에게는 질문을 자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질문을 한다면 어떤 질문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나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하느냐는 물음에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림책에는 수많은 질문들이 나온다. 그중 몇 가지 질문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


“고마워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는 마음이 괴롭거나 무언가 고민이 될 때는 친구가 추천해 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는다. 어떤 상담자가 엄마를 원망하고 엄마와 관계가 좋지 않다는 고민을 말했고 스님은 엄마에게 “엄마 그래도 나 버리지 않고 키워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해보라고 하셨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도 하셨다. 당시 엄마를 원망하던 나는 그날부터 매일 “버리지 않고 키워주시고 스무 살 넘어서까지 뒷바라지해주시고 시집보내고도 손자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해요.”라고 매일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한다. 그 이후 나의 삶은 원망과 남 탓보다는 감사로 변했고 마음이 훨씬 가볍고 편해졌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엄마 버리지 않고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남부럽지 않게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네가 알아서 잘 커줬지. 고맙다. 나도 네가 내 딸이라 좋아 사랑해 “라는 답장을 받고 기분이 좋았다. 나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선생님께서는 화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셨다. 평소 꽃을 좋아하시는 선생님께서 화원에 가셨는데 주인분에게 한 화분을 가리키며 키우기 쉽냐고 물어보셨다고 한다. 그러자 화원주인분께서는 “그거 키우는 거 아니, 크는 건 지가 알아서 크는 거.”라고 답변을 해주셨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키운다고 키워지기보다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 것 같다고 하셨다. 맞다. 우리 엄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무던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정서적 지지나 공감이 부족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엄마는 늘 최선을 다했고 나를 잘 돌봐주었다는 것이다. 엄마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이에게도 자주 하려고 하는 말이다. 고마워라는 말은 나 자신을 넉넉하게 만든다. 매일 설거지를 하는 남편에게 매일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남편은 “식사는 여보가 차렸으니 설거지는 당연히 내가 해야지.”라고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가 나를 배려하고 나 또한 그를 배려하며 지낼 때 고마워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게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우리는, 가족은,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와 하봄이다. 그런데 시어머니 시아버지에게 가족은 본인 두 분과 형님부부, 우리 부부와 아이, 하봄이 까지 인듯하다. 서로 우리라는 전제가 전혀 맞지 않으니 참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자들은 본인과 남편과 아이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자들은 본인의 원가족에 아내와 아이를 포함시킨다고 한다. 남편은 그렇지 않지만 시아버지의 가족테두리는 저것보다 더 넓다. 본인의 형제와 조카들까지 가족이고 싶어 하신다. 선생님을 통해 들은 연구 결과가 시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럴 수도 있구나...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


마지막 활동으로는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에 대해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이 되었다. 비록 뚜렷하게 생각나진 않지만 알록달록하고 행복했던 느낌이 많다. 울타리도 넓고 든든하게 쳐져있고 집만 한 큰 나무가 있어 든든하고 예쁜 세상에 살았다. 아빠가 천사가 되기 전까지. 아빠가 천사가 된 이후 나무는 밑동만 남기고 잘려 있다. 기댈 곳이 없었던 어린 시절을 그렇게 표현했다. 엄마와 오빠와 나는 비행기를 타고 유학을 갔다. 엄마의 가슴에 하트는 뻥 뚫린 하트가 그려져 있다. 남편의 부재를 힘들어하는 엄마의 마음을 상징한다. 길이 검은색인 이유는 아스팔트 탄탄대로가 아닌 우울했던 시절을 나타냈다. 유학에서 돌아와 여전히 밑동만 남은 나무와 작은 차와 먹구름이 끼고 매일 비가 내리는 우리 집이다. 암울했던 시기였다. 이후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 암울하다기보다는 힘들었던 기억이 나서 돌밭으로 그렸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신혼 때 다른 집안에서 큰 두 남녀가 하나로 움직이려니 티격태격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여전히 돌밭으로 그렸다. 그렇게 십 년이 흘러 지금의 남편은 밑동이 잘린 나무 대신 아직은 작지만 든든한 나의 나무가 되어주고 있다. 지금은 아이를 키우며 지내는 모습을 셋이 같이 걸어가는 모습으로 그렸고 우리는 서로를 무척이나 사랑하기에 꽉 찬 하트를 그렸다. 잔디밭이지만 가끔 돌도 있는 길을 그렇게 걸어가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리며 그래도 잘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었다. 힘든 시절이 곱이곱이 있었지만 잘 지나왔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인생에서 고민되는 것들이 있거나 마음이 어지럽다면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질문들을 읽으며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 한참이나 마음에 남아있는 그런 책이다.


이전 21화 마침표 찍으러 갔다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