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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n 21. 2024

마침표 찍으러 갔다가

사랑만 받고 왔다네

아침부터 분주했다. 여유롭게 한다고 10시 비행기로 예약한 건데도 바빴다. 월요일에 열이 떨어지지 않았던 아이는 밤새 열이 내렸고 많이 회복한 듯 보여 마음이 놓였다. 미리 전화로 친정의 변해가는 상황과 세차장 운영에 대해 수시로 들었고 대부분 상의를 해놓아서 실제 회의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진 않았다. 나는 엄마와 오빠가 운영하는 세차장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 스무 살 이후 친정에 살아본 적이 없기도 하고 세차장에 참여하고 싶어도 물리적 거리 때문에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나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지난 3년간 오빠의 입장, 엄마의 입장, 새언니의 입장을 들어주는 대나무숲이었다. 이제는 그 역할에 마침표를 찍으러 간다. 3년 동안 일어난 문제들을 보면 양상은 다르지만 결국 문제의 내면을 보면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너무도 지겨웠다. 사실 이번 만남은 나도, 가족들도 모두가 무겁고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이 될 것이기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가야 했다. 딸이기에, 동생이기에, 가족이기에.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데. 그래, 인생 살면서 문제를 당사자들이 해결하기 어려워 법원에서 매일 재판이 열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하지도, 긴장되지도 않았다.


사실 내가 문제를 해결해 준다기보다는 엄마와 오빠가 대화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을 가운데서 통역해 주는 역할을 하러 가는 것이다. 또 거동이 불편하신 외할머니를 모시고 계신 엄마는 우리가 제주로 이사했을 때 한번 오시고는 그 이후 할머니를 밤에 봐주실 분이 없어 못 오고 계신다. 그런 엄마가 보고 싶기도 하다. 나는 비행기에 올랐고 혼자 가는 친정나들이는 결혼하고 처음이었다. 듣는 귀들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엄마와 대화도 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혼자 가는 게 이상하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청주공항에 도착했고 오빠가 마중 나온다는 걸 극구 사양해서 버스를 탔다. 오빠는 나에게 아빠이자 엄마이자 보호자였는데 내가 가정을 꾸리고 보니 오빠는 더 이상 나만의 오빠가 아니었다. 언니의 남편이자 조카들의 아빠였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오빠의 픽업을 거절했다. 혼자 버스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버스에서 본 풍경이 예전 그대로라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 한없이 커 보이던 건물들도 이제는 낡고 작게 느껴져 꼭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나도 고향도 나이라는 것이 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하는 사이 터미널에 도착했다. 언니와 오빠가 나와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 거의 일 년 만이었는데 오빠는 내 머릿속에 오빠보다 더 나이가 들어 있었다. 막상 만나니 복잡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반가움만이 앞섰다.


우리는 세차장에 도착했고 엄마가 맞이해 주셨다.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에 서툰 엄마는 그래도 딸이 온다고 하니 기다리신 눈치였다. 우리는 세차장 안으로 들어갔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차장 매입가부터 월이자까지 계산기로 계산해 가며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가 어마어마했다. 이 모든 걸 엄마 혼자 감당하고자 했고 오빠와의 소통 문제가 생겼다. 엄마는 현재 대출상황과 이자에 대한 걱정을 아들에게까지 떠안기고 싶지 않았고 오빠는 제대로 운영을 하려면 자세한 사항을 알아야 하는데 알려주지도 않고 피하는 엄마에게 화가 났던 것이었다. 엄마는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오픈하기로 했고 우리 넷은 모든 것을 공유했다.


"엄마 고생 많으셨어요." 대출현황을 본 오빠의 첫마디였다. 이렇게 대화는 풀려 나갔다. 엄마는 "할머니 모신다고 세차장을 못 돌봤는데 엄마 빈자리까지 채우느라 애썼다. 아들."이라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말을 주고받으며 그동안의 오해는 풀리고 서운함은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그들 사이에 사랑이라는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를 모신다는 이유로 세차장을 오빠에게만 떠맡겼던 엄마는 요양보호사분을 고용해 오후시간은  매장과 매출관리를 하겠다고 하셨다. 언니는 엄마가 없는 오전시간을 담당하기로 했다. 물론 시급을 받고. 오빠는 손세차가 아닌 정비를 하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포기했고(본인은 보류라고 한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은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리라. 그런 아쉬움이 하나쯤 있는 인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손세차에 몰두하기로 했다. 출근시간을 각자 정했고 업무도 분담했다. 그렇게 오빠 혼자 떠맡고 있던 세차장 일들은 알맞은 자리로 돌아갔다.


"3년 만에 처음으로 이런 시스템이란 걸 만들어 보네. "라고 오빠가 말했다.

"처음이라니. 비행기 타고 온 보람이 있구먼. "이라고 답하며 내심 뿌듯했다. 가족으로서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뻤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어른답게 지난날 자신의 과오를 이야기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다짐을 했다. 우려했던 회의는 짧고 굵고 담백하게 끝이 났다. 둘째 조카를 학교에서 학원에 데려다줄 시간이 다되어 언니는 분주했다. 조카들을 보고 엄마집으로 가라는 오빠의 말에 그러겠다고 했다. 조카들과 저녁을 먹으러 잠시 오빠집에 갔다. 오빠는 딸만 둘이다. 첫째는 이제 중학교 3학년이고 둘째는 초등학교 1학년인데 그 조카들을 대하는 마음이 참 다르다. 차별이라기보다는 다른 색의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첫째는 나와 딱 스무 살 차이가 난다. 그래서 나이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나는 몇 안 되는 아르바이트경험이 있는데 그때 번 돈을 전부 첫째 조카 옷을 사는데 썼던 기억이 난다. 또 서울에서 대학교 다닐 때 조카가 보고 싶어서 오빠네를 자주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둘째는 내가 아이를 낳고 바로 태어난 아이라 첫째만큼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제 나에게도 여유가 생기고 우리 아이와 연년생이라 만나서 노는 모습을 보면 참 웃기고 귀엽다. 얼마 전 거울을 봤는데 내 얼굴에서 둘째 조카얼굴이 보여서 놀란 적이 있다. 전혀 안 닮았다고 생각했는 데 닮은 모습을 보게 되어 당황스러우면서도 웃겼다. 그런 생각을 하고 둘째를 만나니 전보다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미술학원을 마치고 오는 둘째를 보고 "고모 닮은 어린이! “라고 하니 활짝 웃으면서 걸어왔다. 잘 웃고 엉뚱한 구석이 참 사랑스러운 아이다. 무엇보다 자신 외모에 대해,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하늘을 치솟는 것도 웃기고 귀엽다. 둘째란 이런 것인가. 고모 닮았다고 하니 좋아하는 모습이 고맙기까지 했다. 아직 둘째 눈에는 내가 괜찮은 가보다. 저녁은 첫째가 먹고 싶다던 갈비를 먹었다. 돼지껍데기를 시키는 첫째를 보며 나에게는 아직도 세 살짜리 아기인데 곧 함께 술잔을 기울일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참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오빠와 나는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이 듦을 느낀다고 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수학학원으로 향하는 첫째의 어깨가 무거워 보여 안쓰러웠다. 하지만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여름에 제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엄마집에 왔다. "아이고 어머니" 계속 소리치시는 할머니는 환자 침대에 앉아 식사를 하고 계셨다. 엄마가 떠먹여 드리고 할머니는 아기새처럼 받아먹고 계셨다. 엄마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엄마에게 왜 요양원으로 모시지 않고 스스로 고생을 하느냐고까지 했다. 직접 상황을 보니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말했던 것처럼 쉽게 결정할,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10 개월 만에 보는 할머니는 더 마르셨다. 뼈가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이 할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죽어간다는 게 마치 나무가 말라가듯 사람이 말라가는 것처럼 보였고 숙연해졌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외손녀라고 알아보셨는데 이제는 누구냐고 물으시며 존댓말을 하신다.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할머니를 생각했던 시간보다 할머니가 나를 걱정하고 사랑해 준 시간이 더 길기에 괜찮았다. 내가 할머니를 잊지 만 않으면 된다. 할머니가 나를 못 알아봐도 내가 할머니를 알아보면 된다. 나에게 존댓말을 하는 할머니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할머니가 주무시는 시간이 되었고 어렸을 때 엄마가 그리워 잠이 쉬 들지 않던 나를 할머니가 등 긁어주던 생각이 났고 이번에는 할머니가 잠드실 때까지 내가 토닥여드렸다. 금세 할머니는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드셨다. 할머니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끝에서 이렇게 편안한 모습으로 잠드시길 바란다.


엄마와 나는 식탁에 앉아 밀린 대화를 했다. 엄마의 근황과 건강이야기를 하는데 새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셨다. 제주에서 사 온 엄마, 아버지 유리컵도 보여드리고 감귤쿠키도 같이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아버지가 부탁하신 망고젤리도 전해드렸다. 예전에는 엄마의 의견만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아버지가 생겨서 아버지의 의견도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다. 나는 최근에 있었던 시아버지 이야기를 했고 아버지는 며느리로서 잘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 조언을 듣고 조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아버지는 함께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진다. 말씀이 없으셔서 그런 걸까. 그저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고목나무 같다. 어찌 보면 내가 의붓딸인데도 정말 아버지의 정이라는 게 이런 걸까 싶을 만큼 잘해주신다. 항상 친정에 다녀갈 땐 양손 무겁게 해서 돌아가는 거라며 직접 농사지으신 감자와 토마토 오이 고추를 아낌없이 싸주셨다. 엄마와 아버지의 사랑은 수화물 중량 초과로 추가요금을 결제했다. 행복한 결제.


1박 2일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고 제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지긋지긋했던 대나무숲의 역할과 함께 딸로서, 동생으로서 거리를 두고 이제 더 이상 세차장일에 관여하지 않으리라 종지부를 찍으러 왔는 데 결국 사랑만 듬뿍 받아 싸들고 왔다. 앞으로도 세차장 이야기는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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