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다행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1년

작은 쓰담 25. 태도를 먼저 선택하기

by 차미레
희망한 학년과 업무를 배정받았다.
그런데 기쁨보다 먼저 나온 말은
“다행이다”였다.


학년과 업무 배정이 발표되었다.


나는 3개의 희망란에 쓴

학년과 업무를 배정받았다.


서류 위의 결과만 보면

충분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환호하지 않았다.

대신 한숨처럼

이 말이 나왔다.


“다행이다.”


기쁨은 선택했을 때 생기고,

안도는 통과했을 때 찾아온다.

오늘의 감정은 분명 후자였다.


학교의 배정은

의지라기보다 구조에 가깝다.

나는 그나마 최선의 희망을 적어냈을 뿐이고,

결과는 내 손을 떠나 도착한다.


그래서일까.

기쁘다기보다

넘어섰다는 기분이 더 컸다.


두 달간 병가에 들어가게 되어

기간제 선생님도 함께 만났다.

잠시 내 자리를 대신 지켜줄 분이다.


그리고

학반 추첨이 있었다.


우리 학년에 전학생이 세 명.

그중 한 아이의 설명은 조금 길었다.

이미 여러 문장이 먼저 붙어 있는 아이였다.

내가 그 아이의 담임이 되었다.


순간 마음이 조용해졌다.

억울함도, 당황도 아니었다.

그저 잠시 멈춤.

그리고 생각했다.


한 아이가

교실의 에너지를 어디로 끌고 갈지

앞서 걱정하기보다,

그 아이를 만나는 나의 태도가

교실의 결을 어떻게 빚어갈지 생각하기로.


학부모와의 관계가

어떤 파장을 만들지 계산하기보다,

처음 마주 앉는 자리에서

나는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지 떠올리기로.


두 달 뒤 복귀했을 때

어떤 장면을 마주하게 될지 상상하기보다,

그 사이의 시간 속에서

아이와 교실이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길 바라기로.


교실은

추첨으로 시작되지만

관계로 완성된다.

그 관계의 중심에는

늘 교사의 태도가 놓인다.


오늘 나는 깨닫는다.


기쁘지 않은 건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일이 얼마나 깊은 일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의 감정은

환호가 아니라

준비에 가깝다.


“그래도 내가 원한 자리다.”

“그래, 여기서 다시 시작하자.”


새로운 1년은

늘 설렘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1년이

가장 단단할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기쁨 대신

태도를 먼저 선택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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