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건 아이가 아니라 나라였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설명되지 않은 규칙에 대하여

by 차미레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기묘한 환상 동화로 읽힌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다시 보면, 세계를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은 규칙들이다.


이유 없는 명령과 맥락 없는 분노 속에서
앨리스는 끝까지 묻는다.
“왜요?”
이 동화는 이상한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설명을 생략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앨리스는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모든 것이 뒤틀린 세계였다.


몸의 크기가 제멋대로 변하고,

논리는 비틀리고,

어른들은 이유 없이 화를 내고,

규칙은 설명되지 않은 채 강요된다.


그곳에서 앨리스는

끊임없이 묻는다.

“도대체 왜?”


나는 그 장면을 읽으며

문득 교실을 떠올렸다.


어떤 아이는

앉아 있으라는 말이 왜 중요한지 모른다.

왜 줄을 맞춰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왜 조용히 해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그 아이는 정말 ‘이상한’ 걸까.


혹시 그 아이는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또 하나의 앨리스는 아닐까.


학교는

어른들에게는 익숙한 구조다.

시간표가 있고, 종이 울리고,

정답이 있고, 평가가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학교는

갑자기 떨어진 세계일지도 모른다.


설명되지 않는 규칙,

맥락 없이 요구되는 태도,

질문보다 순응을 먼저 배우는 공간.


우리는 아이가 적응하지 못하면

아이를 고치려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앨리스는 고쳐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이상한 세계 속에서

자기 감각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아이였다.


교실에서 만나는 어떤 아이들도 그렇다.


자꾸 질문하는 아이,

규칙에 토를 다는 아이,

“왜요?”를 멈추지 않는 아이.


그 아이는 문제일까.

아니면 이 나라의 균열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존재일까.


나는 이제

조금 다른 눈으로 아이를 본다.


“왜 저 아이는 저럴까.” 대신

“이 나라는 아이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묻는다.


앨리스는 끝내 그 세계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교실의 아이들은

쉽게 깨어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덜 설명되지 않은 공간이 되기 위해

교실의 문을 연다.


아이를 바꾸기보다

이 세계의 규칙을

한 줄이라도 더 설명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래야

누군가는

덜 이상한 나라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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