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하 May 19. 2024

나는 당신을 애증합니다

#12번째 단상 - 애증에 대하여

애증(愛憎) :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말인가. 사랑은 좋아하는 마음을 뛰어넘어 열렬히 갈구하는 마음이 아닌가. 그러한 대상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감정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자신의 영역을 떡하니 지키고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죽도록 사랑하면서도, 죽도록 미워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사랑하면서도 밉다. 존경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싫어하지만 묘하게 끌린다. 이렇듯 우리는 가끔 상반되어 보이는 감정을 동시에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서문에서 이러한 감정을 아이러니하다고 표현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감정은 복합적이다.




순도 100%의 감정은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행복하더라도 그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까 불안함을 느낀다. 아무리 우울한 날이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리고, 아무리 사랑하는 내 가족이더라도 가끔은 너무나도 미울 때가 있다.


나는 그 무엇보다도 가족이 소중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가끔씩 밀려오는 미운 감정을 외면할 순 없다. 나 좋으라고 한 말인 걸 분명히 알고 있지만, 잔소리가 듣기 싫어 문을 쾅 닫기도 하고, 언제나 나를 아이처럼 바라보는 그 시선이 얄밉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미움의 끝은 항상 후회다.


이렇듯 인간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미워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면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고작 몇 시간 미워한 걸 가지고 가족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는 나처럼 우리는 애증이라는 감정을 마주할 때, 불효자와 나쁜 부모가 되었다고 생각하곤 한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괴리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필요한 죄책감이다,




이러한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 번째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싫은지도 좋은지도 모르겠으면 그냥 그런 감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눈을 감고 애써 부정해도 감정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벗어날 수 없으면 받아들여야 한다.


두 번째는 모든 감정은 복합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항상 좋은 감정만 갖고 싶다는 강박을 버리는 것이다. 감정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다. 절대적 기준도, 정답도 없는 난제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가 다르듯 오늘의 좋음 구성요소와 내일의 좋음 구성요소도 다르다. 아리송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감정이란 원래 그런 놈이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 속에는 항상 몇 스푼의 미움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몇 퍼센트 사랑하고 어제는 몇 퍼센트 미워했는지 굳이 따지지 않아도 좋다. 사랑함과 동시에 미워하는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축복이니까. 그러니 죄책감 느끼지 말고 떳떳하게 (속으로) 말해보자.


“나는 당신을 애증합니다”

이전 11화 장기판을 없애지 말아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