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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May 21. 2024

한국인이 카페에서 물건을 훔쳐 가지 않는 이유

#14번째 단상 - 강제에 대하여

#13번째 단상 - 인생의 방향성을 잃은 이들에게

수업이 끝난 나른한 점심시간, 졸업반인 내가 학교에서 머무를 곳은 도서관이 유일하다. 도서관에 도착한 나는 항상 앉는 자리에 가방을 던져두고, 커피를 사러 지하로 내려간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장면을 마주한다.


 점심시간의 카페는 앉아 있는 사람보다 가방과 노트북이 더 많다. 사실 한국에서 세 달만 살아보면, 이 장면이 크게 놀랍진 않을 것이다. 텅텅 비어있는 카페의 책상엔 핸드폰과 노트북, 심지어 지갑까지 제가 자리의 주인인 것처럼 대 자로 누워있다. 쯧쯧, 이런 안일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자신의 소지품으로 자리를 맡아놓는 게 아무리 대한민국의 카페의 불문율이라고 하더라도 누가 훔쳐 가면 어쩌려고. 커피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그 순간 흠칫 무언가 떠올랐다. 앗! 내 가방!


왜 대한민국의 카페에선 물건들이 사라지지 않는가. 카페를 비롯한 공공장소에 개인의 물건으로 자리를 맡아두는 것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신기해하는 장면 중 하나라고 한다. 역시 한국은 정(情)의 나라! 멋있어요 코리아! 아니요... 실은 그게 아니라... 저기 천장에 달린 씨씨티비 보이시나요...?



 


대한민국은 씨씨티비(CCTV)가 가장 많이 설치된 나라 중 하나다. 서울 기준 단위 면적 당 씨씨티비 128.2대나 설치되어 있고, 이는 전 세계 기준 11위의 상위권이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백여 가지의 내 모습이 씨씨티비에 기록되는 것이다.


 씨씨티비와 같은 장치나 건축물들은 사회학적 용어로 ‘아키텍처’라고 불린다. 대표적인 예로 과속방지턱과 스크린도어 등이 있으며, 이는 법은 아니지만 법의 성격과 유사한 강제력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아키텍처는 우리의 삶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은 꽤나 위험한 물건이다. 한 번 아키텍처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이를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고, 강제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실생활에 자리 잡은 아키텍처를 보며 위반할 수 있다는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높이가 제한된 굴다리를 생각해 보자. 터널의 높이보다 차량의 높이가 더 크다면, 그 차는 굴다리를 통과할 수 없어 다른 길로 우회해야 한다. 고속도로에 있는 차선규제봉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끼어들 수 있는 거리더라도 차선규제봉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직진을 해야 한다. 이같이 아키텍처는 우리의 행동을 강제하지만, 우리는 이를 위반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법은 ‘위반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급하게 운전해야 할 때, 우리는 신호를 위반하거나, 과속을 하는 등의 선택을 할 수 있고, 그에 맞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키텍처는 애초에 사용자가 위반할 수 없게 설계되었다. 과속방지턱과 같은 아키텍처 앞에서 시속 80km 상태 그대로 달린다는 선택지는 존재할 수 없다.


아키텍처의 이러한 간접규제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스크린도어와 과속방지턱 등의 아키텍처로 인해 우리 사회가 더욱 안전해지고, 안정적으로 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행위의 강제성과 이를 위반할 자유에 대한 문제에 대해선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과연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촘촘하게 씨씨티비를 설치해 법을 위반할 가능성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까? 우리는 수많은 아키텍처를 통해 누군가의 의도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장에 대롱대롱 달린 시시티브이가 든든하면서도, 한순간 섬뜩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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