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째 단상 - 억압에 대하여
휴학한 뒤로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도파민을 끊어냈다. 어떻게든 의미 있는 휴학 생활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20대가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20대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했다. 나는 ‘왜?’라는 물음 없이 그 말을 받아들였고,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모두 지워내기로 했다. 그리고 나에게 강박증이 찾아왔다.
인간은 불안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방어기제는 정신분석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자녀인 안나 프로이트가 아버지의 이론을 정리한 것으로, 프로이트의 성격 구조론에 따르면 본능을 추구하는 원초아와 이를 억제하는 초자아, 그리고 중재하는 자아 간의 갈등으로 인해 불안이 발생한다고 한다.
방어기제는 몇 가지 단계가 있으며, 현대에는 복합적인 방어기제가 생겨나고 있어 그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방어기제는 부정과 투사, 그리고 합리화가 있지만, 나에게 가장 파이가 큰 방어기제는 바로 ‘억압’이다.
어렸을 땐 게임을 참 좋아했다. 친구들과 같이 피시방에 가는 것도 좋았고, 주말에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좋았다.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것보다 게임의 시스템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너무 흥미로웠다. 나의 어렸을 적 꿈은 게임 시나리오 작가였다.
하지만 그 당시, 게임은 사회악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게임으로 내 진로를 잡는 것이 굉장히 안 좋게 보였고, 나 자신도 불안했다. ‘게임으로 직업을 삼겠다고? 너무 철없는 거 아냐?’
타인의 시선에 무척 민감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처럼 불안함을 유연하게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익숙한 방어기제인 억압을 사용해 단숨에 게임을 끊었다. 게임에 대한 들끓는 욕망. 그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게임뿐만이 아니다. 웹툰, 유튜브, OTT, 인스타그램, 새벽까지 술 마시기, 소비의 즐거움 등 원초아로부터 발생하는 충동을 대부분 거부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하나둘씩 끊었던 것이, 점차 ‘이것들은 안 좋은 거야’라고 하며 싹 끊어내 버렸다. 아, 이런 재미없는 삶이라니. 참 불쌍하다 불쌍해.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무리 싹 끊어냈다고 하더라도 나 역시 사람인지라 가끔 웹툰을 보거나, 유튜브 다시 깔곤 하는데, 그때마다 엄청난 자책감과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 나약한 자식, 결국 욕망에 잠식되었구나! 남들이 봤을 땐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에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고통받는 대상도, 고통을 주는 대상도 모두 나 자신이다.
스스로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곤 하지만, 어느 인간이 욕심 없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조금 벌고 조금 쓰는 게 더 나아’ ‘나는 세상의 보편적 가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눈에 보이는 건 다 의미 없어’라고 말하는 나는 억압된 자아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내 모습이다.
나도 돈 좋아하고, 옷도 많이 사고 싶다. 권력을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사회에서 인정도 받고 싶고, 하루 종일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어느 순간 꽉 조여버린 억압의 벨트에 나는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다. 배는 뽈록 나왔지만 억지로 스몰 사이즈를 입다 보니 내게 맞는 사이즈인 것처럼 느껴진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삶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나약한 마음을 키운다. 느끼지 않아도 될 고뇌와 괴로움, 강박과 자책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이제는 배에서 힘을 조금씩 빼며 편안한 바지를 되찾아야겠다. 갑자기 확 놓아버리면, 바지가 빵하고 터질 수 있으니 천천히 사이즈를 늘려가보도록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