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마음의 깊이를 모른 채 누군가를 그리워한 적이 있었다.
서툰 감정이 한없이 맑기만 했다.
또 다른 만남은 공허한 익숙함이었다.
사랑이라 부르지 못했던 날들.
이별 뒤에야 비로소 그날들이 남긴 흔적이 사랑임을 깨달았다.
어떤 사랑의 얼굴은 불안이었다.
감정이 불꽃처럼 치솟아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조급함은 마치 끝을 정해둔 듯 날 몰아쳤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불안이 나를 잠식했던 사랑.
사랑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잃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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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곁을 내어 찾아온 사랑은 부드러운 색을 하고 있다.
같은 관심에 서서,
같은 온도로 서로를 향했다.
서두르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으며
천천히 서로의 두근거림을 마주한 시간.
가벼움이나 부담, 불안이 없다.
무미건조한 편안함이 아닌
서로의 모습을 그대로 보일 수 있다는 안도이다.
그의 시선이 나의 쉼이 되고
각자의 삶에
서로가 자연스럽게 스민다.
모든 사랑을 지나온 이유가 생긴 기분이다.
하나의 온도가 된 시간에 닿았다.
그 사람 곁의 내 모습이 맘에 든다.
Rollei35 | Kodak ColorPlus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