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끝>
2025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날이 많이 추워졌지만 마음의 따뜻함은 이전보다 온도가 높아서 체감온도는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는 지난 몇 년을 회복할 수 있었던 뜻깊은 해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쓰러질수록 땅에 파묻히기 전까지 일어서기 싫었고, 손을 내민 누군가에게 괜한 상처를 주었습니다. 부끄러움에 들지 못했던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제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용서받아야 하고, 이해를 원했던 지난 10대와 20대 초반, 분노로 가득했던 20대 후반, 그 후회로 가득했던 30대 초반이 지나갔습니다.
아직 전부 비워내지 못했습니다. 남아있는 무언가가 고개를 들어 방해할 때가 있습니다. 다 긁어내야 진짜 제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몸에 힘을 빼서 흘려보내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방어기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깊숙한 시작점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떠올릴수록 왜곡되고 정화되었습니다. 너무나 깊숙이 숨겨진 흔적들은 들춰 볼 때를 놓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발걸음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 힘이 올라갈수록 안에서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지난 시간을 곱씹고 후회하는 일을 그만두기 시작했습니다. 잔존했던 감정과 생각들을 흘려내고, 방향을 달리하며 새로운 것으로 만들고 채워냈습니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나아가는 발걸음에 힘이 생겼습니다.
이번 주는 월요일부터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멍하니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듯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해보는 일들이 많아서일까요? 일요일은 봉사활동을, 화요일에는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와 밥을 먹었고, 어제는 영화를 봤습니다. 심지어 이직을 위한 몇 번의 면접도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현실을 깨닫는 순간은 오로지 배가 고플 때뿐이었습니다. 땅에 닿는 발의 감각이 흐려지고 붕 떠있는 기분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년이 그리도 기대되는 것인지, 끝나가는 올해가 실감이 나지 않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몇 달 만에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며 놀라운 마음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걷는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나서 잊고 지냈던 친구들의 근황을 듣고 웃었습니다. 외국에서 배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심은경 배우의 연기를 보며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조금 반복되는 삶에 익숙해졌는데, 그 너무나 익숙하고 차분한 삶 때문에 소외되고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길 위의 표지판들이 선명해졌습니다. 이제는 길을 선택하고 나아가야 함을 너무나 잘 아는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이 남아있습니다. 돌아보지 않을 용기도 없고, 다 끌어안고 갈 능력도 없는데.
그래도 내년에 걸어야 할 길을 정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를 원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몇 번의 서류 탈락과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무던함이 있었습니다. 지난날 다양한 곳에서 겪었던 수많은 도전과 실패들이 많은 도움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 깊숙이 숨어있는 게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좋았던 일마저 한숨과 후회로 가득했다고 왜곡해 버린 건 제 자신이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멈춰있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겠습니다. 망설이지 않는 용기를 가져보겠습니다. 내년에는 보다 많은 용기를 가지고 부딪혀봐야겠습니다. 다들, 올 한 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26년에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