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달리는가
EP.01 나는 왜 달리지 않지? - 나는 왜 달리는가
세상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혹은 이유를 붙여야 한다.
‘나는 왜 달리는가.’ 이 명제를 써 놓고 깜박깜박 거리는 흰 바탕을 팔짱 끼고 잠시 응시하여 본다.
좋아서.
끝
머리를 배배 꼬지 않고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단어가 정답일 것이다.
맞다. 이 이상 설명할 게 없다기보다는 간략한 단어로 우선 정의해 보아야 할 것이고 이후 다음 질문을 이어가 본다.
내 몸이, 마음이 달리기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달린다는 마음을 상상하면 수년이 지난 지금도 작은 흥분이 여전히 존재한다. 무언가가 뇌에서 분비되는 것이겠지?
초기 달리기가 몇 차례 진행된 후 직감적으로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
‘이것은 평생 간다.’
음악 듣기 이후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몸에 착 감기는 평생의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고, 이 마음은 현재도 꾸준히 유효하다.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아마 잠시 홀로 외따로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 아파트에는 마침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헬스장이 있었고. 슬슬 주변에서 들려오는 운동해야지? 라는 추임새라거나 건강검진에서 경고하는 붉은색 딱지 같은 클리셰도 배경을 깔아줘야 한다.
어느 날 천천히 걷는 정도로 이용했던 트레드 밀의 속도를 문득 올려 보고 싶었다. 주변에서 뛰는 누군가가 트리거를 당겼을지도 모르겠다. 남들도 그 정도 하는 것 같아 9-10km/hr 정도까지 속도를 올렸을 것이다. 한 1분 정도 달렸나? 죽는 줄 알았다.
말 그대로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 처음으로 달렸던 것 같다. 도대체 그 쌓여 있던 억겁의 시간 동안 왜 달리지 않았을까? 이유를 찾는 것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난이도가 높았다. 달려야 할 이유도 없지만 달리지 않게 된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왜 내가 고작 이것 가지고 힘든지를 골똘히 생각하며 무작정 달려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달리는 시간이 천천히 늘어날수록, 헬스장의 실내에서 바깥으로 나가서 달려보기를 시도해 보면서부터 달려야 할 이유는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 같다.
나는 달리기가 좋다.
그 근본적인 이유를 얘기했으니 좀 더 짚고 넘어가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잘 맞았을 것이다.
테니스, 배드민턴처럼 누군가와 시간과 호흡을 맞출 필요도 없고, 축구, 농구처럼 일정한 규모를 결성할 필요도 없고, 야구처럼 여러 가지 장비와 공간을 예약할 필요도 없다.
어떤 장소든 (한국 아닌 외국에서든) 운동화 한 켤레로 무심히 달려 나가면 되는 매력이 있다.
어떤 시간이든, Come rain or Come shine 이든 달리고 싶으면 달리면 된다.
비가 오면 맞고 달리고, 추우면 모자 쓰고 달리고, 따뜻함이 그리우면 헬스장에서 달리면 된다.
남과의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만 들여다 보며 달리는 운동이다.
누군가는 몸의 건강을 위해서 달린다고 한다. 좋다.
마음을 위해서 달린다면 더 좋다. 달리기는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항우울제이다. 의사 선생님들이 고객 떨어지기 때문에 1급 비밀을 공표하지 않는 것일 뿐. (거짓말이다.)
달리기를 하면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사실 이게 가장 근접하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에는 정말 내 몸 상태만 집중하게 된다. 내가 언제 나를 이렇게 지극히 돌아본 적이 있는가?
정신없이 몰아치는 광풍 속에서 울퉁불퉁한 길을 반사적으로 스캔하여 살 길을 찾아가고, 끊임없이 호흡이 적절한지, 내 심박이 나를 지탱해 주는지, 손, 발, 몸 어디 결리는 데는 없는지 살아남기 위해 집중하는 내가 있다. 내가 이런 놈이구나 라는 명제를 털끝 하나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여기 거짓말과 허영, 외피가 존재할 지점은 없다. 난 나를 이렇게 소중하게 돌아본 적이 이제껏 없었다.
터질듯한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살려는 몸짓이 있다.
바보야, 회사에서 하루하루 쳐내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달리라는 거냐, 퇴근하고 나서 애들 하교시켜야지, 식사 준비해야지, 청소하고 빨래 돌리고, 내일 아침 준비해 놓고, 애들과 그림책, 자장가로 놀아주고 나면 이제 나도 핸드폰 좀 하다 자야 하는데 어떻게 달리라는 거냐. 손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우울인데 어떻게 달리기를 시작하라는 거냐.
…나도 시작은 잘 모르겠다. 아마 다음장에서 시작에 대해 써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달리기에 대한 열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말의 작은 시간을 이용하든 해 보고 싶은 작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속는 셈 치고 달리기의 주문에 넘어와 보는 것도 앞으로의 인생에서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달리지 않는 이가 있다면 가만히 각 잡고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나는 왜 달려야 하지? 가 아니라
나는 왜 달리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