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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Feb 28. 2024

행복은 나누면 다섯 배가 되나요

<행복한 두더지> 김명석

아이와 함께 할 때 전혀 관심 가지지 않았던 어떤 것들이 단단한 껍질을 뚫고 다가올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그림책의 존재이다. 아마 충분히 수긍하실 분들이 많으실 것 같다. 아이에게 읽히기 위해 잡았던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어 나가는 와중 자신이 오히려 감동을 받는 순간 말이다. 그건 작은 축복 같은 일이다. 또 다른 소중한 존재를 알아가는 것 말이다.


여기, 많지 않지만 가려 뽑은 그림책 몇 가지를 소개하는 시즌을 진행해 보고자 한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숟가락 하나를 얹는 정도가 될 수는 있겠다. 개인에게 크게 다가 온 발자취를 바탕으로 시작한 글쓰기에서 한 가지 길어 올릴 수 있는 심상이 있다면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단,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 별책부록을 연결하여 조금 색다른 잉크를 떨어뜨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림책은 전적으로 아내가 아이를 위해 고른 것인데 내가 뺏어 읽으며 감동받은 형국이다. 지평을 넓혀 준 아내에게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






<행복한 두더지> 김명석 글. 그림

여기 밤이면 땅굴에서 나와 세상 속에서 자신이 속할 곳이 있는지 찾아다니는 두더지가 있다. 땅 속에서만 살아서 눈은 침침하고, 소극적인 성격에 가는 곳마다 이력서는 허공으로 떠 다닐 뿐이고. 세상의 복잡함은 바닥에 촘촘하게 깔린 벽돌과도 같아 그 속을 파고들 자신이 없다.

우울한 마음을 안고 돌아온 곳은 깊디깊은 자신의 땅굴.

혼자서 해 먹는 밥, 무심히 켜 놓은 TV 화면, 자신도 모르게 곯아떨어지면 다음날 다가오는 똑같은 혼자만의 시간. 바깥은 소란스럽고 정신없는데, 60도로 기울어진 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려가야 다다를 수 있는 공간에서 그는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행히 두더지는 힘을 내어 자신의 공간을 이쁘게 꾸미기로 결심한다. 집을 보수하고, 아름다운 꽃과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며 행복을 맛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 아름다운 공간에서 혼자일 뿐인데.


그 순간 문득, ‘똑똑똑’ 소리가 들린다.

추운 겨울을 날 준비를 못한 여러 동물들이 자신에게 한 켠 공간을 내어줄 수 없는지 머리를 긁적인다. 곰이 찾아오고, 개구리가 찾아오고, 토끼와 구렁이도 문을 두드린다. ‘똑똑똑’, ‘똑똑똑’, ‘똑똑똑’.

두더지는 친히 동물들을 자신의 집으로 들이고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지원한다. 따뜻한 방과 욕조를 내어주고,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며 자신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아, 곁에 누가 있다는 이 순간.

꿈같은 시간, 과연 두더지는 행복할 수 있을지.



이 풍경 낯이 익지 않은지? 나의 젊은 시절에도 그런 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음날 똑같이 다가오는 혼자만의 시간 말이다.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행복해하려고 발버둥 치지만 우리는 또다시 세상 속의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작가는 어두운 방 안에서 스탠드에 의지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판화 작업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 느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이를 잘 다독여 햇빛에 내어 놓는 과정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림책에서 보기 드문 판화 형식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고무판화로 검정색 먹을 찍은 후 거기에 다채로운 색깔로 세련됨을 더했다. 때로는 그 거친 질감이 황량한 느낌을 자아내기에 두더지 내면의 마음을 표현해 내는 것도 같다. 아이가 이 책을 좋아할까?

괜찮다. 그림책은 아이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행복한 두더지’ 라니 왠지 함의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다. 권선징악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도 필요한 시대이지만 쉽게 편한 길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야기 내내 행복하지 않았던 두더지의 모습이 반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상상을 보태야 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 밖으로 나가는 첫눈 발자국을 찍는 그림을 그려본다면 이 책은 행복하게 완성될 것이다. 그런 판타지는 없어 라고 외친다면 이 또한 누군가가 감내해야 할 시련일지도.

단지, 이 책은 무언가 아릿하다. 그 감정이 이야기하고픈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혼란이 가득한 세상, 누군가가 당신에게 다가가 질문을 걸듯이.

‘똑똑똑’



[별책부록]

Earth Design Works란 이름의 스튜디오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준 시각 디자이너 작가는 원작의 본 <행복한 두더지> 그림책을 가져다 4분여의 애니메이션 동화로 만들어 낸다. 나직한 음악이 천천히 흐르는 가운데, 발자국 소리, 두더지의 한숨 소리, 물방울 소리, 누군가가 두드리는 마음의 소리가 아름답게 융합되어 책과 조금은 다른 결의 작은 시로 탄생한다. 아름다운 본 작품은 안타깝게도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여러 가지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는 작가 본인의 홈페이지에서도 본 작품만 삭제가 되어 있다. 아마 누군가에게 판권을 팔았던 건지도.

단지, 그냥 가기 아쉬움에 그의 여러 좋은 작품들 중에서 하나를 꼽아 별책부록으로 남기고 싶다. 우리에게 Lucia 루시아란 예명으로 잘 알려진 심규선의 음악이 삽입된 소품이다.

벚꽃이 지는 이유를 아시는지....



감독 : 김영준

제목 : 벚꽃나무 코끼리 숲 (Cherry Blossom Elephant in Forest)  2011년

음악 : Lucia 심규선 [자기만의 방] 2011년 <꽃처럼 한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

https://youtu.be/LiB9ZnEG9Uw?si=XuZb_WXsTdccCL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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