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베를린 03화

독일 사람들의 중고 사랑 - 베를린 3

동네 중고판매점



KakaoTalk_20250923_200704207.jpg?type=w773 Rumpelbasar Zehlendorf


일주일에 단 두 번, 화요일 오전과 목요일 오후에만 문을 여는 곳이 있다. 그래서 나는 늘 요일을 확인하며 그날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 적이 많다. 오전과 오후가 엇갈리다 보니 종종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가면 어김없이 길게 늘어선 줄을 보게 된다.


이곳은 룸펠바자르 젤렌도로프(Rumpelbasar Zehlendorf)이다. 이 비영리 단체는 수요일마다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건을 기부받는다. 그리고 화요일은 오전, 목요일은 오후만 문을 여는데 항상 문전성시다. 이렇게 모여진 수익금으로 어린이, 장애인, 노인들을 위해 쓰인다고 한다.


화요일은 오전 9시에 문을 여는데, 이날은 남편이 전날 회식을 하는 바람에 전철역까지 태워주느라 조금 늦었다. 한 시간 늦은 10시쯤 도착했더니 벌써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 들고 나오는 모습이었다. 좋은 물건 다 팔렸을까 봐 걸음을 더 빨리 움직여서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장바구니를 슬쩍 보니 대부분 크리스마켓 장식품으로 가득했다. 아! 맞아! 이제 겨울이 다가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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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mpelbasar Zehlendorf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풍경


1층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서 무거운 철문을 열자, 눈앞에 풍경이 짠 하고 펼쳐졌다. 바깥공기는 제법 쌀쌀했지만 안은 사람들로 북적여서 따뜻했다. 바쁘게 오가며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괜히 들떴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그릇 코너로 쭉 들어갔다. 그런데 그동안 눈에 띄지 않던 한쪽에는 벌써 크리스마스의 시작을 알리는 장식품이 가득 진열돼 있었다. 유럽 사람들은 역시 1년에 한 번 있는 크리스마스를 위해서 벌써 준비를 하는구나. 반짝이는 장식품들을 바라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설레었고, 계획에도 없던 물건을 구매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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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을 알리는 장식품들 / 내가 좋아하는 그릇 코너


한참을 구석구석 둘러본 끝에 나는 유리컵 다섯 개(5유로), 타파 통 세 개(6.5유로), 패브릭 플레이스매트 네 장(4유로)을 샀다. 플라스틱 통은 사실 그동안 몇 번을 가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물건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우리 집에서 오래 써온 것보다 흠집도 훨씬 적었다. 깨끗이 씻어내면 다시 반짝일 것 같아 결국은 집어 들었다. 친구는 휘슬러 압력솥도 15유로를 주고 샀다. 압력솥은 스테인리스라 정말 깨끗한 상태였다. 이렇게 소소하게 하나씩 사 온 물건들은 그날 하루의 일과를 즐겁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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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판매점에서 사온 아이들- 매트 깔고 혼자 주말 점심 즐기기

이때가 가장 행복하다. 저렴하게 사 와서 깨끗하게 씻고 다듬으면 마치 원래 내 것이었던 것처럼 정겹다. 그리고 원래 우리 집에 있던 물건들이랑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큰 것을 산 것처럼 뿌듯함도 들고, 과소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모습도 보여서 또 대견하기도 하다. 사 온 것들을 하나하나 펼쳐서 눈앞에 두면 새로운 기분도 든다. 그래서 자꾸 가나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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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유로 컵을 정성스레 포장해주시는 봉사자 할머니

생각해 보면 유럽은 벼룩시장도 많고 중고판매점도 많은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구는 아마도 ‘오래된 전통’ 덕분일 거라고 말했다.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유럽 사람들은 빈티지를 즐긴다. 오래된 가구와 그릇, 낡은 옷과 책을 정말 소중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마도 이런 태도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시장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매주 열리는 벼룩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공동체가 모여 교류하는 장으로, 또 새로운 역사의 장으로 느껴진다.


한국에 있을 때 세컨드핸드숍(Second-hand Shop)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시리얼 하나를 사 먹어도 포장되어 있지 않고, 자신의 통을 직접 들고 와서 원하는 만큼 사가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면서 ‘참 실용적이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 소개한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었다.


나는 베를린에 오자마자 정말 그런지 한 번 찾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내가 가는 동네 에데카(Edeka)에서는 내가 화면 속에서 보았던 장면이 그대로 진열되어 있었다. 실용적인 생활 태도, 그리고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까지 더해져서 중고품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중고 시장을 둘러볼 때면 단순히 물건을 고르는 재미를 넘어, 그 속에 담긴 누군가의 시간과 이야기를 함께 건네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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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Stichkanal 2-4, 14167 Berlin,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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