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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Bankers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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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Mar 08. 2022

Pricing Call

소설 The Bankers_너의 잘못이 아니다.


‘Conglatulations. You are priced!’     



새벽 두 시 반. 발행일의 마지막 회의인 Pricing Call이 드디어 끝났다. 올해 첫 번째 카드사의 외화채 발행이 마무리된 것이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여러 번 미루다가 겨우 발행일을 정했었다. 발행사도 주관사도 걱정이 많았다. 어쨌든 목표한 6억 불 발행은 달성하였다.     



“이제 집에 가자 얘들아.”

박 이사가 말했다. 나와 최 대리가 컴퓨터를 끄고 일어설 때였다. 최 대리의 휴대폰이 울렸다. 최 대리는 이 새벽에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며 받지 않았다. 같은 번호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머뭇거리던 최 대리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네? 강남 세브란스요?”     



전화를 끊은 최 대리는 멍하게 서 있다가 갑자기 눈물을 툭 떨어뜨렸다. 박 이사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최 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경찰인데 엄마가 강남 세브란스에 있대요. 갑자기 연락이 안 돼서 씨티 직원이 경찰에 연락하고 같이 집으로 찾아갔었나 봐요. 지금 가 봐야겠어요.”

“같이 가자, 최 대리.”     



함께 따라나서려는 박 이사에게 내가 상황을 봐서 연락하겠다고 했다. 휘청거리는 최 대리의 팔을 잡고 택시를 탔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최 대리는 말이 없었다. 새벽의 도로는 한산했다. 금방 도착했다. 병원에서는 보호자 한 명만 병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중환자실이라고 했다. 최 대리를 다독여서 들여보냈다. 나는 건물 밖에서 기다렸다. 구급차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부장님….”

한참 뒤 최 대리가 등 뒤에서 나를 불렀다.

“어떠셔?”

“다행히 아침에는 깨어날 것 같대요. 고맙게도 그 직원과 경찰 덕분에 일찍 발견했나 봐요. 엄마가 우울증이 있었대요. 얼마 전에는 유방암도 발견되어서 치료 방향을 논의 중의였다고 하네요. 그랬대요…. 엄마가…. 하나도 몰랐어요…. 저는….”     



최 대리가 울먹이며 띄엄띄엄 말했다. 최 대리를 안아주었다. 울어도 된다고 했더니 최 대리는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두려움, 걱정, 분노, 자책…. 여러 감정이 뒤섞인 울음일 것이었다. 병원 편의점에 들러 음료와 간식 몇 개를 사서 최 대리의 손에 쥐여 주었다. 출근할 생각은 하지 말고 나중에 전화해 달라고 했다. 집에 오니 여섯 시 반이었다. 씻고 사무실로 다시 나갔다. 김 전무가 앉아있었다.     






“새벽에 박 이사에게 메시지는 받았어.”

“최 대리 어머니께서 병원에 계십니다.”

“강 부장은 알고 있었지? 최 대리 엄마?”     



김 전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눈빛으로 물었다. 역시 그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네. 예전에 최 대리가 말해줬습니다.”

“그랬구나. 최 대리가 강 부장을 유독 잘 따르더라고. 윤 전무가 우울증을 앓은 지는 꽤 되었어. 아들에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 미안한 것이 많은 모양이더라고. 윤 전무와 종종 만났었거든. 윤 전무 부탁으로 최 대리에겐 모르는 척했어. 서울로 돌아와서 잘 극복해보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최근에 결국 이혼 서류에 도장 찍고 훨훨 날아갈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는 일도 재미없고 삶을 뒤돌아보니 남는 것도 없는 것 같다길래 으레 하는 말로 생각했지. 윤 전무 같은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떡하냐고 그냥 서로 웃고 말았었는데…. 암도 발병하고 해서 힘들었나 봐. 그래도 강 부장 표정 보니 한시름 돌렸네. 나도 밤새 한숨도 못 잤어.”

“네…. 윤 전무님도 걱정이고 최 대리도 걱정입니다.”

“최 대리에겐 한동안 출근하지 말라고 해. 강 부장이 잘 좀 챙겨줘.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바로 알려주고.”     



김 전무도 나도 한동안 말없이 각자의 책상에 앉아있었다. 김 전무는 커다란 잔에 커피를 가득 받아놓고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모니터만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김 전무 말처럼 그래도 다행이었다. 윤 전무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하다가 나는 최 대리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최 대리가 감당하고 있을 죄책감의 무게. 밥은 먹고 있어야 할 텐데.     



곧이어 출근한 박 이사에게 대충 설명해 주었다. 최 대리의 이야기를 알게 된 박 이사는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박 이사도 병원에 가서 최 대리를 만나고 싶어 했다. 나는 최 대리와 직접 통화해서 물어보라고 했다. 예상대로 최 대리는 박 이사의 방문을 부담스러워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최 대리가 좋아하는 나초와 부리또를 사 들고 병원으로 갔다. 내 메시지를 본 최 대리가 터덜터덜 병원 밖으로 나왔다.     



“부장님…. 엄마 깨어났어요.”

“그래. 정말 다행이야.”

부장님…. 엄마가 많이 아프대요. 는 엄마를 하나도 몰랐던 것 같아요….”     



어제 출근할 때의 양복을 그대로 입고 밤을 꼬박 새운 최 대리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옷도 눈도 퉁퉁 부어 있었다.      



“부리또 사 왔어. 먹고 힘내서 병실 잘 지키고 있어. 며칠 지나면 말씀하시기 시작하실 거야. 이야기 많이 나눠.”

최 대리 손에 음식 봉투를 건네주었다.     

“일이 많으실 텐데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전무님께서 나오지 말라고 하셨어. 또 연락할게. 들어가 봐.”     



최 대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병실의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빨리 들여보내야 할 것 같았다. 돌아서는 최 대리의 뒷모습을 보다가 하지 못한 말이 생각났다.     



“준우야.”

“네…?”

네 잘못 아니야. 자책하지 마. 힘내.”

….”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최 대리를 다시 달랬다. 병원을 뒤로하고 큰길로 나왔다. 내 은 도시의 소음으로 가득한 길거리만큼이나 복잡했다. 엄마에게 전화했다.     



“어디야?”

“이 시간에 어디긴, 집이지.”

“엄마…. 엄마 잘못 아니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엄마 잘못 아니라고. 아빠 저렇게 된 거.”

..... 그래….”     



엄마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사람들은 엄마를 비난했었다. 아버지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어떻게 모를 수 있었냐고 했다. 건강검진도 제대로 안 보냈냐고 했다. 더 험한 말들도 들었을 것이었다.      



“엄마, 우리 전무가 부탁이 있대.”

“전무가?”

“그림 하나 그려 줘. 사무실 벽에 걸 거야.”

“... 생각 좀 해 보고 다시 이야기하자.”     






이 좁은 업계에서 윤 전무의 이야기는, 최 대리와의 모자 관계와 함께 밝혀지며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윤 전무는 워낙 사생활 보호를 철저히 했던 터라 씨티 쪽에서도 최 대리가 아들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무엇이 되었든 사자들에게는 비수처럼 꽂힐 수도 있는 말들이 오갔다. 김 전무는 공적인 자리에서든 사적인 자리에서든 최 대리와 윤 전무에 대해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김 전무의 노력이 무색하리만큼 다들 남의 이야기를 쉽게 했다. 시간이 흐르자 수그러들기는 했다.     



그로부터 몇 주 후에 박 이사의 결혼식이 있었다. 최 대리는 고민 끝에 참석하지 않았다. 우리 팀은 모두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최 대리는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윤 전무의 집으로 들어갔다. 윤 전무는 씨티에 사직서를 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로 했기 때문에 일선에 나설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했다. 윤 전무가 항암치료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삶에 대한 의지가 생긴 것으로 들려서 나는 반가웠다. 이 말을 전하는 최 대리의 마음도 나와 같아 보였다.     



박 이사는 보름간의 휴가를 냈다. 워킹머신답게 결혼식 전에 일을 다 처리하겠다고 더 바빴다. 남겨질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은 고마웠지만, 나는 새신랑에게 팩도 붙이고 잠도 좀 자야 하지 않겠냐고 잔소리를 했었다. 박 이사는 결국 전세 끼고 학군지에 빌라를 샀다. 신혼집은 그 근처 재개발을 앞둔 어느 아파트에 월세로 마련했는데 결혼식 이틀 전에 배관이 터져서 물난리가 났다고 했다. 어쨌든 결혼식장에서 박 이사의 얼굴은 좋아 보였다.     



최 대리는 김 전무에게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다. 마음 잡기가 어렵다고 하자 김 전무는 그 이유라면 더 기다려줄 수 있으니 좀 더 다녀보라고 했다. 엄마에게 자주 전화하고 필요하면 일찍 퇴근하라고도 했다며 최 대리가 말해주었다. 최 대리와 면담을 한 다음 날 김 전무가 갑자기 내게 따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우리는 콩나물국밥집으로 갔다. 둘 다 기본 메뉴인 콩나물국밥으로 주문했고 음식은 금방 차려졌다. 뜨끈한 콩나물국밥 한 숟가락에 뭔가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강 부장, 요즘 힘들지?”

“아닙니다.”

“다 알아. 조금만 더 버텨보자. 올해는 업계 1위  내려놓지 뭐. 내년에 보너스 왕창 깎여도 괜찮지?”     



김 전무가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놀랐다. 농담이라고 해도 김 전무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팀이 풀가동할 수는 없는 상황이잖아. 나는 강 부장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최 대리도 박 이사도 시간이 필요하고.”

“네….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1위 지키는 거 어려웠어. 별로 재미도 없고. 내가 이 회사에 올 때 15위였어. 1위까지 쫙 끌고 올라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지. 그런 거잖아? 목표를 두고 정신없이 올라갈 때가 뒤돌아보면 참 좋잖아.

“네. 지키는 것도 중요하니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하. 강 부장 덕분에 내가 잘리지는 않겠네. 어쨌든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식사 후에 김 전무는 일정이 있다며 나보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전설의 김 전무는 홍콩의 아시아태평양 본부장뿐 아니라 글로벌 헤드로부터도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 신임 덕분에 팀원에게 무리하지 말라는 말도 해 줄 수 있는 걸까 싶었다. 가족이든 팀원이든 내 사람을 지켜내려면 내가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어쨌든 따로 불러 국밥 한 끼 함께 해주는 김 전무의 배려가 고마웠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꺼내는데 문자가 왔다. 엄마였다.     



사무실 벽에 붙인다는 그림 한 번 그려볼게.
혹시 전무가 원하는 내용이 있는지 물어보고 알려줘.     



나는 한참 동안 서서 엄마의 문자를 쳐다보았다.





본 소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사진은 Pexels에서 검색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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