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The Bankers 1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별 Mar 11. 2022

무자식이 상팔자

소설 The Bankers_콩가루에 참가자미회


잔인한 달이었다.     



제안서와 발행이 하루 걸러 하루마다 있었다. 선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해도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을’인지라 공고 확인할 때마다 한숨을 내쉬었고, 유독 발행이 많이 몰려있는 달이었기에 ‘갑’의 간택을 받아도 가슴이 답답했다. 기업별 일정에 맞게 투자자 미팅을 수십 번 준비했고 여러 로펌과 협력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소소한 행정처리부터 해외 거래소에 채권을 상장하고 수수료를 분배하는 뒤치다꺼리까지, 한 달 내내 숨넘어가게 일만 했다. 그래도 일개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능동적’ 일 처리, ‘주인의식’을 가진 업무태도. 다 좋은 말이지만 그저 ‘닥치고 버텨야’하는 날이 대부분인 일개 직장인이다.    


 

어제는 드디어 숨 돌리는 날이었다. 한 달 만에 집에서 저녁을 먹었고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었다. 나도 오랜만에 일찍 잠이나 자자 싶어서 아홉 시 반부터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카톡’, 전무였다.     



강 부장. 내일 나와 경주 좀 다녀오지.
10시 KTX야.
도착해서 점심 먹고 회의 가자.     



경주라면…. 한수원 일정이었다. 김 전무 혼자 가기로 되어있었는데 왜 갑자기 같이 가자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별다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혼자 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고민해 봐야 뭐하나 싶어서 그냥 잠이나 잤다.      






출근 후 김 전무와 함께 서울역으로 갔다. 서울역으로 가는 길에서도, 경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도 김 전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덕분에 일이 바쁜 나는 노트북을 펼쳐놓고 집중했다. 신경주역까지 가는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기차에서 내릴 때쯤 김 전무가 물었다.     



“강 부장. 경주 와본 적 있어?”

“아 네. 최근에 장인어른께서 경주에 작은 텃밭과 집을 하나 마련하셔서… 저희도 자주 오게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강 부장이 경주를 잘 알겠네. 점심으로 뭘 먹으면 좋을까?”

“음…. 장인께서는 가끔 참가자미회를 사 주시더라고요.”

“참가자미회? 좋은데? 아는 식당 있어?”

“여쭤보겠습니다.”     



아차 싶었다. 경주 온다고 말씀도 안 드렸는데. 인사도 못 드리고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괜히 전화해서 뭐 하나 싶었다. 후회는 늦었다. 김 전무가 옆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전화다. 예상대로 얼굴도 안 보여주고 바로 올라가냐고 하셨지만, 식당도 두 곳 알려주셨다. 조만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오겠다 말씀드리 서둘러 끊었다. 김 전무와 택시를 타고 동선에 맞는 식당으로 갔다. 한 상 가득한 음식을 물끄러미 보던 김 전무가 입을 열었다.


    

“소주나 한잔하고 싶네.”

“네??”

“그냥 그렇다고. 회의 가야 하는데 술을 어떻게 마시냐. 자 먹자.”     



술 안 마시는 김 전무가 대낮부터 소주를 찾다니. 콩가루에 초장을 섞으려던 나는 잠시 젓가락을 멈추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김 전무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기차에서도 창밖만 보고 있었다.     



“강 부장….”

“네, 전무님.”

“강 부장 붙잡고 할 얘기는 아닌데 내 속이 너무 답답해서.”

“말씀하세요, 전무님.”

“예전에 보여줬던 우리 딸 기억나?”

“네.”

“걔 때문에 할아버지가 됐어.”

“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김 전무는 결국 소주를 한 잔만 마시겠다며 주문했다. 정말 딱 한 잔만 마셨지만 술기운에 기댔는지 술술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혼전임신이었다. 그것도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딸이. 여섯 해 동안 성실한 기러기를 하며 길러낸 딸이. 목표했던 대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좋은 대학에 합격했던 자랑스러운 딸이. 입학한 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휴학하고 서울에 들어왔다가 클럽에서 만난 남자와 3개월 만에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이었다.


     

김 전무의 아내는 몸져누웠다고 했다. 딸과는 드라마에 나올 법한 전쟁을 꽤 여러 번 했다는 것 같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김 전무 내외는 ‘낳아서 키우겠다’는 딸의 결정을 돌리지 못했다고 했다. 고상하고 깔끔한 김 전무 입에서 코로나 사태에 대한, 코로나 시국에도 영업한 강남의 클럽들에 대한, 딸이 클럽에서 만났다는 그 남자에 대한, 그리고 딸에 대한 육두문자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요즘 같은 세상에 혼전임신이 대수냐고 했다가, 요즘처럼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는 세상에 정신이 나갔다고 했다가, 이제 마음껏 꿈을 펼치고 가장 예쁘게 피어날 나이라고도 했다가, 그동안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데라고도 했다. 김 전무의 분노와 배신감, 허탈감이 애꿎은 자연산 참가자미만 들쑤셨다. 그러던 김 전무의 종착역은 ‘내가 더 일해야지….’였다.     



“강 부장. 요즘은 애 키우는데 돈이 옛날보다 더 많이 든다며…. 그놈도 학생이라는 것 같아. 집안은 평범한 것 같고. 애들이 애를 낳게 생겼어. 제발 멀쩡한 놈이기를 바라는데, 정신 똑바로 박힌 새끼라면 그런 짓을 안 했겠지? 하긴…. 내 딸이 제정신이 아닌데 뭘.”

“전무님….”

“둘이서 얘기가 끝났대. 서로 그렇게 확고하대. 만난 지 3개월 만에 저런 소리 하는 애들을 뭘 보고 믿냐. 그런데 강 부장. 아무리 고민하고 아무리 싸워봐도 별다른 수가 없어 보여. 이제 아내와 오붓하게 지내보려고 했더니…. 강 부장. 옛 어른들 말 틀린 거 하나 없어. 자식 농사가 가장 어렵다. 아니야, 무자식이 상팔자야.”     



미역국을 들이켜는 김 전무를 보며 나는 뭐라고 해 줄 말이 없었다. 만약 내가 저 입장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와 아이들 성교육 문제에 대해 깊 대화를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할 뿐이었다. 딸도 아들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해야 하나 싶었다. 요즘은 첫 경험 시기도 자꾸 빨라지고 있다던데…. 휴대폰으로 야동도 그렇게 쉽게 접한다던데….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놈 부모나 빨리 만나봐야겠지…? 날짜를 잡든지 말든지…. 박 이사 다음 타자가 최 대리가 아니라 우리 딸이 되겠어….”     



매사에 분명하고 여유 있던 김 전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자식 농사…. 그래, 부모 노릇이란 참 어렵다는 것을 나도 조금씩 배우는 중이었다. 갑자기 상견례 때 장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딸을 둔 부모는 조심스럽습니다. 부족한 자식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이 말을 들으며 그때의 나는 속으로 생각했었다. 아니 왜 저런 말씀을 하실까. 뭐가 조심스럽고 뭐가 부족하다는 것일까. 왜 ‘딸을 둔 부모’라고 굳이 붙이실까. 그랬는데…. 딸을 키우는 부모가 되어보니 그 마음을 아주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잘 모르겠기도 하고….


     

“그래도 성인들의 결정이고 무엇보다 전무님 따님이니. 따님 안목을 믿어보세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내가 겨우 골라낸 말이었다. 김 전무가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우리는 그 뒤에 일어날 수많은 일을 알잖아. 걔들은 모르고. 부모는 평생 자식을 믿으려고 노력해야 한다지. 아닐 것을 알아도 믿어줘야 하지. 부모가 안 믿어주면 누가 믿어주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때 왜 나를 뜯어말리지 않았냐 원망하는 소리를 듣더라도, 아마 분명히 그렇겠지, 지금 부모로서 할 일은 믿어주는 것이겠지.”     



김 전무는 소주잔에 물을 채워 마셨다. 회의 전에 부지런히 물이나 마셔야겠다고 했다. 나는 접시 가득 채소를 덜어 콩가루와 초장을 듬뿍 섞 후에 김 전무 앞 밀어주었다. 경주에서는 참가자미회를 이렇게 채소와 함께 먹더라며 알려주었다. 김 전무는 이상한 조합이라고 했지만 새콤하면서도 고소하다며 곧잘 먹었다.



물을 두어 컵 더 마신 후에 우리는 회의 장소로 갔다. 그들이 사전에 문의한 내용에 대해 자문을 제공고 향후 진행할 투자자 미팅 방향을 논의했다. 최근에는 예전처럼 현지에서 대면으로 하려는 움직임도 있어서, 컨퍼런스콜이 좋을지 미국과 유럽은 직접 가는 편이 좋을지 쉽게 의견이 모이지 않았다. 다음번 회의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김 전무와 나는 다시 서울행 기차를 타러 나왔다.     



“강 부장. 결혼식은 가족끼리만 해야겠지? 괜히 여기저기 청첩장 돌리면 뒤에서 말만 많겠지?”

“전무님, 뭐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왜 전무님 답지 않게 눈치를 보세요. 어쨌든 좋은 소식이잖아요. 가족분들과 상의하셔서 정하세요.”

“우리 때와는 세상이 다르긴 하지?”

“그럼요.”

“그 애는 또 아내가 키우겠지…. 아내딸 대학은 졸업시켜야 한다고….”

“전무님, 분명히 엄청 예쁠 거예요. 태어나면 마음이 또 다르실 거예요.”

“그럴까…? 가족끼리 얼굴 보고 웃으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 같냐. 나는 잠이나 좀 자야겠. 요즘 통 못 자서. 도착하면 깨워줘.”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김 전무는 휴대폰까지 무음으로 바꾼 후에 잠이 들었다. 애 둘을 겨우 다섯 살과 세 살까지 키워낸 아내와 나의 지난 순간들이 생각났다. 물론 방긋방긋 웃는 천사의 모습과 가슴을 벅차게 했던 천사의 향기가 가득한 날들이긴 했다. 하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눈물의 시간이었다. 그 길을 김 전무 내외가 걸어가려 하다니. 다 키워낸 딸을 위해서. 아, 아찔했다. 부모란.     



사무실에 들러서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하니 아이들이 모두 잠들어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아내에게 애들 성교육을 철저히 시켜야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다윤이가 나중에 공부는 안 하고 남자친구나 만나러 다닐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아내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며 웃었다.     



“요즘은 유치원 때부터 연애하는 거 몰라? 다윤이 좋다는 애들도 있어.”

“정말??”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래? 내가 얼마 전에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 ‘십 대 딸을 둔 아빠들이 딸의 남자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는 모두 한때 누군가의 남자친구였기 때문이다.’ 딱 자기 마음이? 하하하.”     



아 어려운 길이다. 역시 무자식이 답이었나. 이미 늦었다.




본 소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사진은 오마이뉴스의 2020년 7월 27일 기사, [조금만 늦어도 '완판'... 아무 때나 못 먹습니다]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10화 Pricing Call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